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와일드 다이아몬드> 스틸컷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와일드 다이아몬드>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프랑스 남부 출신의 19살 소녀 리안(말루 케비지 분)은 온라인 플랫폼의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 꿈이다. 이미 수천 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유명한 인물이 되기 위해 성형과 메이크업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문제는 아직 다다르지 못한 미래의 성공에 대한 멈출 줄 모르는 욕심이다. 자신을 유명한 인플루언서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더 자극적인 영상과 사진을 생산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매일 밤 파티를 즐기고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물건을 훔쳐 판매해야 하는 일상. 익명의 대중 앞에 내던져진 한 소녀의 모습을 영화는 그려내고자 한다.

영화 <와일드 다이아몬드>는 아가트 리딩거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단번에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하게 된다.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는 주제 의식은 성차별주의와 리얼리티 TV 속 소비주의에 대한 경계와 비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극 중 인물인 리안을 둘러싼 환경과 개인의 꿈까지 특정한 잣대로 판단하거나 재단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고 현재의 가난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스스로를 자본주의 욕망에 던져 넣을 수 있다고 믿는 한 소녀의 모습으로부터 내면을 꺼내보고자 할 뿐이다.

02.
"저는 평범하지 않아요."

유명 TV 프로그램의 오디션에 섭외되면서부터 리안의 욕망은 더 거세게 타오른다. 아직 출연이 결정된 것도 아닌데 그는 벌써 출연이 확정되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한다. 심지어 오디션을 보는 동안 프로듀서는 리안에게 사고를 치면 칠수록 더 유명해질 것이고, 일단 유명해지고 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달콤한 말을 건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욕구가 연결된다. 항상 꿈만 꿔왔던 자리에 곧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과 성급함. 그리고 이제서야 떠나보낼 수 있게 된 자신과 연결된 과거의 유물들에 (동네와 가족, 그리고 친구까지 모두) 대한 기쁨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친구 디노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하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잠시 지냈던 쉼터 출신인 그는 리안에게 과거의 모든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존재와도 같다.

이런 배경 안에서 리안이 자신에게 주어진, 동아줄과도 같은 오디션 기회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도 중요하다. 프로듀서인 페레르는 그에게 있어 절대적 권위를 가진 대상과도 같다. 이 장면 이전까지 자신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도전 앞에서 조금도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리안은 이 장면, 프로듀서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동안에는 자신의 모든 면을 내려놓고 통제하는 태도를 갖춘다. 심지어 페레르는 카메라 뒤에서 목소리로만 지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팔로워 수를 올려주는 수단이던 익명의 플랫폼 사용자 앞에서도 순순하던 그가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프로듀서 앞에서는 무엇인들 하지 못했을까.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와일드 다이아몬드> 스틸컷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와일드 다이아몬드>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03.
영화는 리안이라는 인물의 행동을 뒤따르면서도 배경에 대한 최소한의 설정을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 가정 문제와 관련된 부분이다.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집으로 남자만 들이는, 아직 어린 동생을 돌보는 일조차 리안에게 맡기는 엄마. 어떤 방법으로든 이 공간을 떠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는 어린 시절 자신의 양육권을 포기하며 쉼터에까지 보냈던 존재로 인해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자신의 곁을 내어주고자 노력하는 동생의 존재만이 그의 안식처이지만, 그 또한 아직 자신의 삶이 진창에서 허덕이고 있는 동안에는 무거운 추처럼 여겨진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는 온라인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폭력과 견디기 소속된 공간으로부터의 학대, 스스로에 대한 소비적 행위로 인한 거대한 에너지를 동력 삼아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본다면, 그 안에서 (방식과는 무관하게) 어떻게든 나아가기 위해 꼿꼿한 태도로 자신을 태워가는 리안의 모습은 일면 현실에서 토해내지 못한 울분을 터뜨리기 위한, 그 에너지로 내일의 기적을 꿈꾸고자 하는 절박함처럼도 느껴진다. 몇 차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팔로워들의 댓글이 화면을 뒤덮는 것은 어쩌면 그를 가리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04.
눈여겨볼 점 하나는 이 작품의 프레임이 내내 4:3 비율로 유지되다가 영화의 마지막 지점, 캐스팅 확정 연락을 받고 난 후에 동생과 만나 포옹하는 장면에서 가로로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관객들에게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마미>(2014)에서의 활용과 유사하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용법도 거의 같다. 어딘가에 갇힌 듯한 답답하고 불안한 감정을 대중적인 구도보다 가로가 짧은 프레임을 활용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4:3 비율의 프레임 속에 담겨있는 의도다. 동생을 만나는 장면에서 가로로 프레임이 확장되는 부분은 역으로 그런 억압된 심리가 조금 해소되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물리적 활용은 리안이 어떤 순간에도 마지막 경계는 결코 넘어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가능하다. 온라인을 통해 유명세를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도, 후반부에 놓이는 낯선 남성 3명과의 거래에서도 마찬가지다.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자면 이 인물에 대한 평가는 복잡하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포기하는 지점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이 하루하루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준 셈이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와일드 다이아몬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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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분명히 쉽지 않은 소재다. 이에 대해서는 감독 본인도 각본을 쓰는 단계에서부터 조심스러운 부분이 여럿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쉽게 비난하고 지나가기 쉬운 지점에 놓인 인물과 환경이기에 어느 쪽에서도 전형적으로 비치거나 쉽게 만들어졌다고 여겨지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과 유사한 내용의 단편 작업이 지난 2017년에 있었고, 현재의 모습으로 장편화가 되기까지는 4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고 한다. 일부 관객들에게는 감독의 이런 조심스러운 접근이 일부 정확하고 딱 들어맞는 개입이나 판단으로부터 멀어져 있다고 여겨질지는 모르겠으나, 이 글의 처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일방적으로 따뜻하거나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모든 영화에는 이야기의 안팎이 함께 존재한다. 작품에 따라 양쪽 모두를 균등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어느 한쪽만 강조해서 드러내기도 한다. 이 작품 <와일드 다이아몬드>는 후자에 속한다. 후자의 두 가지 경우 중에서도 이야기의 안쪽, 내면의 내러티브가 어느 정도 감추어져 있기에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느냐에 따라 관객마다 그 깊이가 큰 폭으로 달리 전해질 것도 같다. 모두에게 이 영화가 깊이 전해질 수 있기를, 극 중 리안의 모습이 외적인 행동으로만 전달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 부산국제영화제 와일드다이아몬드 아가트리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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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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