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미세리코르디아>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2.
장례식이 끝난 후, 장 피에르의 미망인 아내 마르틴의 환대와 제안으로 그녀의 집에서 조금 더 머물기로 하면서 감춰져 있던 마을 인물들의 욕망이 투영되기 시작한다. 빈센트는 오래전의 동창이자 아버지 가게의 직원이었던 제레미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어떤 불순한 의도와 감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오랜 친구 월터는 그들 사이에서 모종의 질투심을 느낀다.
마을의 수도원장 필리프 사제에게도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야욕이 내재돼 있다. 그리스도의 교리에 위배되는 동성에 대한 이성적인 감정은 곧 제레미를 향하기 시작하고, 곧 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만 같은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던 이들 모두의 속내는 아무런 의도도 없는 마르틴의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세상을 떠난 남편 장 피에르의 빵집을 다시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다.
문제는 아들 빈센트가 아닌 옛 직원 제레미를 향했다는 것 정도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크게 몸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빈센트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제레미는 그를 깊은 산 어딘가에 깊이 파묻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갈등과 살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이 영화에서는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알랭 기로디 감독이 더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오늘 여러 번 이야기하게 되는 인간의 내재된 욕망이다. 어쩌면 누군가의 죽음보다 더 어둡고 음산한 갈구. 영화는 이제 살인을 저지른 제레미와 그 살인을 빌미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자 하는 수도원장의 관계로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한다.
03.
"영원히 침묵하며 사랑할 수 있어요."
영화의 중반부를 지나면서 이 작품이 동력으로 삼는 건 갑자기 사라진 빈센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의문과 사실을 감추는 과정에서 제레미가 경험하는 아노미(무법, 무질서의 상태)적 심리 상태와 괴리다. 그런 제레미를 돕기 위해, 아니 교환적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돕는 수도원장의 말과 태도는 끊임없이 자신의 종교적 믿음과 사회적 규범을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이내 곧 감독은 이 지점을 작품의 유일한 유희로 삼는다.
살인에 처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하는 제레미를 대하는 필리프 사제의 태도가 그렇다. 그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 필리프 사제는 그것이 천성이 아니라면 잠재적 범죄자는 될 수 없기에 장기적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양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하는 그에게 누구나 다 죽음을 맞이하고 우리에게는 죽음이 필요하다는 말로 빈센트의 죽음을 정당화하려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 더 이상 어떤 논리적인 태도도 견지할 수 없을 때 결국 내뱉게 되는 속마음은 자신을 위해 살아달라는 감정을 향한 호소뿐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가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미세리코르디아', 자비에는 역시 그가 견지해 왔던 일종의 비틀림이 존재한다.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미필적 고의라고도 볼 수 있는 사망 사고, 살인에 대한 용서가 어디까지 주어져야 하는지 파헤쳐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수도원장이 주장하는 자비에는 분명 어긋난 부분이 있으며, 알랭 기로디 감독 역시 두 사람의 베드신을 통해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가 신의 대리에 해당하는 직업에 위치될 때부터 이미 이 모든 구조는 의도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