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30분간 76곡에 달하는 곡을 라이브로 선보인 칸예 웨스트

2시간 30분간 76곡에 달하는 곡을 라이브로 선보인 칸예 웨스트 ⓒ 칸예 웨스트 유튜브


지난 23일,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 대중음악 팬의 시선이 경기도 고양시의 고양종합운동장에 몰렸다. 세계적인 음악가 칸예 웨스트(Kanye West, 아래 칸예)의 리스닝 파티 '예 x 타이 달라 사인 벌처스 리스닝 익스피리언스(Ye x Ty Dolla Sign Vultures Listening Experience)'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공연을 앞두고 기대와 의심, 우려가 공존했지만 14년 만의 내한 공연은 역사적인 성공이 됐다. 우선 시각적인 스케일부터 남달랐다. 고양종합운동장 한가운데에 트럭 40대 규모의 흙으로 언덕을 쌓았다. 칸예는 하얀 말을 타고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하얀 말을 타고 등장하는가 하면, 100여 명의 댄서를 동원해서 함께 달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시각적으로 볼거리를 선사했다. 그의 앨범 < Vultures > 시리즈를 함께 만든 타이 달라 싸인, 딸 노스 웨스트도 무대에 올랐다.

이번 공연이 역사적인 순간이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칸예가 마이크를 잡았기 때문이다. 칸예의 리스닝 파티는 본디 콘서트가 아니다. 단어 그대로 성대한 음악 감상회다. 칸예가 최근까지 해왔던 리스닝 파티는 음원을 틀어놓고, 복면을 쓴 칸예가 무대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이번 공연 역시 두 장의 < Vultures > 시리즈 음원을 재생하면서 끝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칸예는 < Vultures > 시리즈의 순서가 끝나고 백스테이지로 들어가더니, 마이크를 잡고 등장했다. 그가 마이크를 잡은 것은 약 3년 만의 일이다. 그 순간 이 공연은 칸예의 단독 콘서트로 변모했다. 칸예는 데뷔 앨범 < The College Dropout >의 수록곡 'All Falls Down', 'Jesus Walks'를 시작으로 자신의 디스코그래피(뮤지션과 아티스트 등 특정한 목적 아래 정리한 레코드 기록 - 기자 말)를 연대기 순으로 헤집기 시작했다.

'Touch The Sky', 'Stronger', 'Power' 'All Of The Lights', 'Devil In A New Dress', 'Ultralight Beam' 등, 대중음악의 역사를 수놓은 명곡들이 관객들의 혼을 빼 놓았다. 특히 인트로의 신스 사운드만으로 모든 관객을 단합하게 만든 'Runaway'는 이 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칸예는 이 곡을 시작하자마자 마이크를 내려놓고 3만 관객의 떼창을 만끽했다(이날 칸예는 150분 동안 < Vultures > 시리즈의 27곡, 그리고 메들리 51곡을 합쳐 총 78곡을 들려주었다).

세계 어디에도 없던 공연

 지난 8월 23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리스닝 파티를 통해 내한한 칸예 웨스트(Kanye West)

지난 8월 23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리스닝 파티를 통해 내한한 칸예 웨스트(Kanye West) ⓒ 넥스티스


이날 칸예는 < Jesus Is King >, < DONDA 2 >를 제외한 커리어 모든 앨범의 주요 곡을 직접 불렀다. 한 노래의 1절만 부르는 메들리 형식이었지만 칸예가 이번 공연처럼 커리어를 총망라하는 공연을 펼친 것은 데뷔 후 처음이다.지난 2021년 수많은 팬이 모인 < DONDA > 리스닝 파티 때도 이와 같은 구성을 취한 적은 없다.

칸예의 공연은 현장의 관객들은 물론,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이 공연을 지켜본 전 세계의 음악 팬을 놀라게 했다. 그의 메들리에 20년의 커리어가 눌러 담겨 있었다. 동시에 그가 지금까지 축적해 온 문화적 레거시(Legacy,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사용되고 있는 것 - 기자 말)에도 새삼 감탄했다. 칸예의 이번 공연은 그가 21세기 대중문화의 구세주로 추앙받은 가장 반짝이는 순간들을 소환해 냈다.

이는 힙합의 고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음악을 세밀한 단위로 해체하면서 장르의 벽을 넘나들던 아방가르드의 천재, 자신의 무너진 내면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한 천재, 동시에 패션과 시각적 예술을 그 음악과 절묘하게 결합할 줄 알았던 감각 등이었다.

얼마 전 칸예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종종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린다"고 평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칸예를 둘러싼 뉴스는 아름답지 않았다. 음악 외적인 발언과 행동 때문에 실망을 주는 순간도 많았다. 양극성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칸예는 끊임없이 윤리적인 선을 넘었다. '노예제는 흑인의 선택'이었다는 발언, 유대인 혐오, 나치 옹호, 극우적 음모론 등 여러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 그의 천재성이 이런 발언을 옹호할 수단이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칸예가 만들어놓은 세상에 살고 있다. 이번 공연은 이 사실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무대에서 열심히 임하는 모습도 팬들을 놀라게 했다. 최근 칸예는 최근 수년간 불성실한 태도 등으로도 빈축을 샀다. 이탈리아에서 열 예정이었던 리스닝 파티는 일주일을 앞두고 갑자기 취소되기도 했다. 대행사의 책임으로 알려졌지만, 한국 공연 바로 이전 일정이었던 대만 공연이 취소되면서 팬들의 우려도 커져 있던 상태였다.

이번 공연에서 칸예는 한국팬들을 향해 사랑한다는 감사 인사와 축복의 기도를 보냈다. 그는 "We gonna be okay, we gonna be okay(우린 괜찮을 거야)"라는 가사를 반복하는 노래 '24'를 부르며 무대를 떠났다. 이것은 칸예가 관객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인 동시에, 관객들이 그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칸예가 다시 구설수에 휩싸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다음 한국 방문 때도 이처럼 멋진 공연을 보여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가장 빛나던 시절의 자신을 소환한 칸예를 보며, 앞으로는 더 멋진 소식을 기대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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