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를 지나며 국내 영화 콘텐츠 중 두 작품이 대중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하나는 류승완 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속편인 <베테랑2>이고, 다른 하나는 <쳥년경찰>로 잘 알려진 김주환 감독의 신작 <무도실무관>이다. 강렬한 액션과 주인공들의 고군분투 및 서사가 담긴 작품이라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지만 이런 장르 특성을 빼면 두 작품은 오히려 상반된 성격을 가졌고, 여기서 꽤 논쟁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플랫폼의 특성이다. <베테랑2>는 100억 원대 이상 대형 상업영화 중에선 유일하게 추석 대목을 겨냥하고 극장 개봉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영화는 개봉 일주일이 안 된 시점에 445만 관객을 돌파했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파묘> <범죄도시4>에 이어 올해 세 번째 천만 관객 돌파를 점쳐볼 수 있는 시점이다.
<베테랑>의 경우 순제작비만 130억 원 이상이 들어갔기에 안정적인 수익성만 고려했다면 현 시점에서 극장 개봉을 고집하는 건 다소 위험한 선택일 수 있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좋고, 극장에 가서 표를 사서 본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품격을 부여하고 스스로도 품위를 얻는 것 같다"며 나름의 철학을 설파했다.
물론 개봉 직후 상영 점유율이 60% 중후반대에 이르며 스크린 독과점 양상이라는 비판이 있다. 류승완 감독도 이를 우려해 개봉 전 기자와 인터뷰에서 <장손> 같은 독립영화를 언급하며 "다양한 영화들이 나와야 극장에 활력이 생길 텐데 의도치 않게 (대형 대중영화 중에선) 홀로 개봉하게 됐다"며 "찾아가시면 극장에 영화들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다. 극장 영화들의 신뢰 회복이 중요한 만큼 무게감을 느끼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무도실무관>의 경우 넷플릭스에서 투자한 오리지널 영화다. 마찬가지로 국내 극장가를 주 무대 삼아 경력을 쌓아온 김주환 감독은 근 5년 사이 급부상한 제작사인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와 손을 잡았다. 해당 제작사가 영화나 OTT 플랫폼 드라마 가리지 않고, 국내 굴지의 투자배급사와도 협업을 해 온 만큼 이번 작품도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빠른 이야기 전개와 노골적인 폭력 묘사 등이 지상파나 여타 국내 플랫폼에선 걸림돌이 될 수 있겠으나, 글로벌 OTT 플랫폼에선 비교적 자유도가 높기에 창작자 입장에서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주환 감독은 지난 2023년 6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을 통해 한 차례 OTT 플랫폼을 경험한 바 있다. 물론 영화가 아닌 8부작 드라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당시 제작 과정에서 느꼈던 한계점이나 부족함을 이번 작품에서 상당 부분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인지 <무도실무관>은 9월 18일 기준 전 세계 넷플릭스 영화 중 4위에 올라 있고, 한국을 비롯해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 타이완 등 아시아 주요 국가에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플릭스 패트롤 기준)
'베테랑2'와 '무도실무관'의 결정적 차이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주제의식에 있다. 알려진 대로 <베테랑2>는 재벌 권력을 일망타진했던 서도철 형사(황정민) 팀이 해치라는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마약 거래와 연관돼 있긴 하지만 이 영화가 주목하는 건 정의를 과연 누가 정의할 수 있느냐라는 근본 질문이다. 공권력이 쉽게 처단 못 하는 여타 범죄자들을 찾아가서 똑같은 방식으로 잔혹하게 살인하는 해치를 두고 관객에게 질문하게끔 한다.
또한 영화 곳곳에 '정의부장'을 위시한 사이버렉카들을 배치해 놓는다. 이들 또한 공권력의 무능함을 조롱하면서 자신들이 진실과 정의를 수행하는 존재라며 사적 이익을 취한다. 언론의 기능을 자처하는 사이버렉카, 수사 및 사법 기관을 무시한 채 살육을 벌이는 해치를 두고 고전하던 베테랑 팀은 결국 전세를 역전시킨다. 영화 말미, 죽음의 목전에 놓인 해치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서도철 형사의 행동이 곧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다.
류승완 감독은 "그게 바로 서도철의 정의"라고 설명한 바 있다. 류 감독은 "그 장면을 찍을 때 뭉클했다"고 말하면서 "너무 밉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존재지만 형사로서 그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는 원칙을 지킨다. 이런 전문가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분명한 생각을 밝혔다.
<무도실무관>도 겉보기엔 공권력의 부재를 보완하는 이들의 활약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술 도합 9단의 능력자인 주인공인 이정도(김우빈)가 애초에 재미가 우선인 캐릭터로써 점차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깨닫고 자경단을 자처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살인, 강간, 아동성폭생 등 끔찍한 범죄자를 관찰하는 보호관찰관들이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결국 몇몇의 재범을 막지 못한다는 영화 속 묘사는 공권력의 무능력을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는 이정도 및 그의 친구들이 자경단으로 나서게끔 하는 촉매제가 되는데, 서사적으로 매우 흥미롭고 재밌는 설정이지만 결국 사적 제재를 옹호한다는 비판에선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사적 제재,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
특히 일부 범죄 장면에선 굳이 노골적으로 표현했어야 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수위가 높기도 하다. 아동 납치 및 성폭력 범죄자는 캐릭터적으로 매우 건장하고 흉악하게 등장하는데 화면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강한 묘사들이 몇몇 등장한다.
물론 이정도나 그 친구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순수하고 순박하기까지 한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총동원해 범죄자를 일망타진하고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은 개인정보 도용, 사칭, 불법 드론 비행 등 현 제도에 반하는 일들을 저지른다.
이 지점에서 관객에 따라 서로 다른 의문이 들 수 있다. '베테랑2' 서도철 형사는 본인의 역할인 수사 및 체포에 집중했다. 후반부에 사적 감정이나 어떤 대의 명분을 들면서라도 해치의 숨통을 끊을 수 있었지만, 기어코 살려낸다. <무도실무관> 속 이정도가 한 다른 선택이 우려되는 이유기도 하다. 흉악범을 잡는다는 목표나 그 결과는 정의로웠지만, 이정도 및 친구들의 행동이 <베테랑2> 속 해치나 사이버렉카들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두 작품이 생각할 거리를 던지게 한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사적 제재를 허용할 수 있는지 등 말이다.
기성 세대 및 어른들의 반성하는 태도도 두 작품으로 가늠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베테랑> 1편 때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친구와 싸우고 오자 서도철은 "게임값(치료비 및 위자료)을 물어주더라도 쥐어 터지는 것은 못 참는다"며 애써 위로한다. 그랬던 그 아들은 2편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자, 서도철은 "아빠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미안하다"며 사과한다.
<무도실무관> 속 청년 이정도에게 주변 어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설정상 엄마와 일찍 이별한 것으로 보이는 이정도는 아버지의 치킨 가게를 도우며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다. 무도실무관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다가도, 각성한 이정도가 끝내 자경단을 꾸린다며 시스템 밖으로 향하는 건 끝내 막지 못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극장가와 OTT 플랫폼에서 서로 활발하게 토론할 작품이 등장했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