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올림픽'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과거 유명했지만 더 이상 활동하고 있지 않은 스타들을 수소문한 끝에 찾아내 인터뷰한다. 말 그대로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근황을 묻고 듣는 콘텐츠로 구독자가 80만 명 가까이 된다.
해당 채널을 예전부터 구독하고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시청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거의 보지 않는다. 화려했던 과거에 비해 비교적 평범하게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반가움도 잠시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물갔다고 해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각자의 사정으로 무대를 떠나야만 했을 그들의 심정을 떠올리면 속삭한 마음이 든다. 스스로 더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떠난 거라면 팬으로서 진심으로 응원하는 바다.
아무래도 잘 풀리지 않아서 직업을 바꾼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잘 헤아려 보지 않아서 그렇지 왕년의 스타들 중 정말 잠깐 반짝이고 사라진 이들이 꽤나 많다. 해당 채널을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게 된다. 이렇게나 많은 스타들이 있었는데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혔구나 하면서.
아담은 살아있다
▲ 1998년 1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사이버가수 아담 시사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며칠 전 참 오랜만에 근황 올림픽 채널에 올라온 영상을 보게 됐다. 무심결에 스쳐 지나치려는데 섬네일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영상을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근황 올림픽의 주인공은 '아담'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최초 인류 아담이 아닌 우리나라 최초의 사이버 가수 아담 말이다. 1998년 한창 IMF로 힘들었던 시기임에도 그의 1집 앨범은 20만 장이라는 적지 않은 판매고를 올렸다.
사이버 가수라는 호칭이 붙긴 했지만, 소위 얼굴 없는 가수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아담의 모습은 당시 최고의 미남 배우였던 원빈을 모티브로 제작됐고, 노래는 실제 가수가 더빙을 한 것이었다.
당시의 CG는 지금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편이라 입 모양 싱크조차 잘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초로 나온 사이버 가수가 신기하기도 했고, 생각보다 노래들도 좋았다. 특히 시원시원한 가창력은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1집 앨범 대표곡인 '세상엔 없는 사랑'은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유행하던 락발라드 장르와 아담의 목소리를 더빙한 가수의 보컬 색깔이 정말 찰떡이었다. 레몬 음료 CF를 찍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를 했으나 당시 기술상의 한계로 큰 활동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일반 가수와 달리 방송에 한번 출연하려면 기술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비용과 시간이 꽤 많이 부담됐을 것이다. 거기에 2집이 생각처럼 흥행하지 못하면서 사이버 가수 아담은 그렇게 대중 속에서 사라져 갔다.
아담이 활동을 중단하자, 온갖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군대에 갔다는 둥,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했다는 둥 여러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담 목소리의 실제 주인공이 밝혀진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사이버가수
▲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 올라온 사이버 가수 아담의 근황 ⓒ 근황올림픽
아담의 실제 보컬을 맡았던 가수는 제로(본명 박성철)다. 몇 해 전, JTBC 예능 프로그램인 <슈가맨>에도 나왔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일본에서 지내고 있다.
영상을 보니 너무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그는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얼굴 없는 가수 아담이 아닌 제로라는 이름의 뮤지션으로서 음악을 놓지 않고 있었다. 비록 국내가 아닌 일본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긴 하지만, 그가 아직 노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 반갑다.
가수 데뷔 때부터 얼굴은 물론 자신의 이름조차 알릴 수 없었던 그였다. 인기를 끌었던 자신의 타이틀 곡명 '세상엔 없는 사랑'과 비슷하게 그는 아담의 뒤편에서 '세상엔 없는 사람'으로 노래해야 했다. 완벽하지 않은 그래픽과 제한적인 활동 범위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주었던 그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술이 발전했다. AI가 커버곡을 부르고, 인기 걸그룹 에스파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나이비스(naevis)' 등 버추얼 아이돌이 인기를 끄는 세상이 됐다. 아담은 사실상 이들의 시조 격인 셈이다. 아담 프로젝트는 너무 시대를 앞서간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절에 아담이 잠시나마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원빈을 닮은 비주얼도, 한국 최초의 사이버 가수라는 타이틀도 아닐 것이다. 애절함이 잔뜩 묻은 진짜 사람의 목소리가 우리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진짜 사람이기에 전해지고 느낄 수 있는 감성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믿는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이 소유한 내밀한 감정까지 모두 담아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아주 똑같이 목소리를 흉내는 낼 수 있게 되더라도 사람 목소리에만 실릴 수 있는 감성은 재현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당분간 아담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 계속 들을 예정이다. 귀를 울릴 뿐 아니라 가슴도 울려주는 그의 목소리에 흠뻑 취할 생각이다. 근황을 알려준 아담, 아니 제로의 건승을 기원하며,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얼굴을 보면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 일본에서 여전히 음악을 하고 계신 가수 제로(사이버가수 아담). 사진은 유튜브 '근황올림픽' 화면 갈무리. ⓒ 근황올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