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개봉되는 한국영화 작품을 소개합니다.[기자말]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옷깃을 스치는 바람, 흩날리는 꽃, 푸른 산, 흐르는 맑은 물, 흔들리지 않는 믿음, 최선의 삶, 타인을 향한 마음과 배려에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묻고 생각하며 깨닫는다.

영화 <문경>은 우리가 말하는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신동일 감독의 전작처럼 청산과 유수가 배경에 타인을 향한 배려와 아픔을 달래는 위로가 채워진다. 그리고 계속 우리를 향해 멈춰서 쉬어보라고 권하는 작품이다. 먼저 쉬고 온 이가 전하는 편지와 같다. 우린 그 편지에 응당 다시 쉼으로 답하면 된다. 시간이 된다면 당신의 영화로 인해서 아주 잘 쉬었다고 작게라도 말하면 그게 답장인 것이다.

우리는 왜 떠나야만 하는가

 영화 <문경> 스틸컷

영화 <문경> 스틸컷 ⓒ 비아신픽쳐스


<청산, 유수> 이후로 난 신동일 감독의 작품 세계의 변화를 감지했다. 작품 속에 인물들이 머물지 않고 떠나고 있다. 그것은 도시에서 자연이 내뿜는 공기로 가득한 시골로의 떠남이다. 그 변화의 시작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청산, 유수>가 4대강 사업의 중심지였던 공주를 배경으로 한다면 <문경>은 제목 그대로 문경으로 향하고 있다. 전작보다 더 자연을 깊이 있게 그렸으며 그곳에서의 이야기의 결은 단단해졌다.

그 쉼이 필요했던 인물이 문경(류아벨)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특별해 보인다. 문경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계약 직원 초월(채서안)로 인해서 문경을 방문하게 된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위장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초월을 자기 직원으로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감을 가진다.

그런 정신적, 육체적 피로에도 불구하고 그는 쉬지 않고 전진한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쉬라고 말하지 않는다. 초월이 자신의 손을 떠나 직장을 떠나고 문경은 본인에게 스스로 쉼을 주어야 한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문경이 된다.

신동일 감독의 작품엔 유달리 쉼표가 있는 제목이 많다. 두 번째 작품인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네 번째 장편인 <컴, 투게더>, 그리고 전작이었던 <청산, 유수>까지, 그의 작품명은 낱말과 낱말 사이에 쉼표로 연결된다. 그 쉼표가 가지는 생각의 여지를 고려해 보면 두 개의 낱말은 묘한 공통 선상에 있다.

이번 작품명에는 쉼표는 없지만 이야기 자체로 쉼을 향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문경이 문경으로 떠나는 여정은 쉼과 같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쉼을 얻게 된다. 서울에서의 초월과 문경의 관계는 쉼을 통해 문경에서의 문경과 비구니 스님 가은의 관계와 연결된다. 그 떠남의 여정에서 길을 안내하는 길순까지 만나며 우리가 혹은 문경이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비우고 비우면 다른 삶이 시작될까

 영화 <문경> 포스터

영화 <문경> 포스터 ⓒ 비아신픽쳐스


<문경>은 아름다움을 향한 작품이자 비움의 영화이다. 영화는 문경과 가은의 여정을 통해 비움의 미학을 보여준다. 비우고 비우더라도 다시 살아나는 삶의 욕심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다.

여동생과 친구의 죽음이란 상처를 가진 두 인물을 통해 그 상처를 비우기까지 욕심을 비우는 과정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그들은 마음의 양식을 나누고 길손을 통해 배려의 마음을 되살리며 유랑할매(최수민)와 유랑(김주아)을 통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것이 아주 어렵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아픔들은 물질적인 치료를 통한 것이 아닌 나눔과 배려, 또 그것들을 닮은 자연이란 영혼에 의해 치유할 수 있음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마음의 상처가 자연이란 영혼에 치유되기를

누군가가 마음의 상처가 있다면 이 작품을 그들 머리맡에 두고 가고 싶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이고 싶다. 쉬어도 된다고. 우리 모두 자연에서 나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자연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쩜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맑은 영혼이 있다. 푸른 산, 흐르는 물, 타인을 향한 마음과 배려가 있다. 아픈 이들에게 누군가가 길손이 되고 유랑 할매가 되며 비구니 가은과 문경이 된다.

우리는 뛰어가기만 하면 된다. 숨이 차 오를 때 다시 지금의 내게, 내가 나이기를 바라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분명.
영화문경 신동일감독 힐링영화 환경영화 한국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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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2022~ 유네스코 세계시민교육 중앙연구회 에듀무비공작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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