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이 있다. 나누고 싶고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가슴 속에 몽글몽글 피어나는 사람들, 장난처럼 시작했다가 제대로 한방 먹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멈추긴 뭔가 좀 어정쩡할 것 같다는 사람들.

안산줌인(이하 '줌인')은 영화 보는 걸 좋아하던 평범한 사람들이 2015년 결성한 영상 제작 동아리다. 회원들이 주로 사는 지역인 안산과 사람 그리고 삶을 모토로 나와 우리 이웃의 삶과 노동, 이주민, 지역 문제 등 다양한 소재를 다큐로 제작했고 2015년부터 매년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도 직접 우리의 영화를 만들어볼까?

 2019년 제2회 우리동네 깐영화제

2019년 제2회 우리동네 깐영화제 ⓒ 안산줌인


'줌인'의 시작은 영화술사 뒤풀이에서였다. 맨날 모여서 영화만 보지 말고 우리도 직접, 우리의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누군가 제안했고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영상제작 동아리 '줌인'이 만들어졌다.

영상 제작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던 그야말로 생초짜였던 회원들이었기에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줄 스승을 찾던 중 당시 이주 노동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던 김수목 다큐감독과 인연이 닿게 되었다.

진짜 다큐 감독을 스승으로 모셨으니 영화제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그렇게 '제1회 우리동네 깐영화제'가 출발했다. 회원들의 첫 작품 9편으로 2015년 <제1회 우리동네 깐 영화제>를 시작, 올해 벌써 제10회 영화제가 열린다.

평범한 회사원, 공단 제조업부터 건설 현장 노동자, 글 쓰는 작가, 시민단체 활동가, 주부, 부부 회원까지 하는 일도, 일하는 환경도, 나이도 다양한 줌인 회원들. 그만큼 할말도 많고 개성도 넘치고 만들고 싶은 영화도 많다.

영화제를 앞두고 지난 21일 반장 그니와 수목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줌인의 얼굴, 그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맨발에 아디다스 '삼선 쓰레빠'를 신고 등장하는 그니,
삼선 슬리퍼는 그니의 시그니처와도 같다. 그니가 지금까지 줌인과 함께 할 수 있었던 데는 그니를 신뢰하고 지지해주는 든든한 줌인 회원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줌인 반장, 그니

줌인 반장, 그니 ⓒ 안산줌인


-반장을 맡게 된 계기는?
그니 : "처음엔 회원들끼리 한 달 두 달 돌아가면서 반장을 했는데, 어느 순간 이 사람들이 작당을 해서 나를 반장으로 만들었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수목 : "2년 전에 더는 반장 못하겠다고 그니가 반란을 한 적이 있어. 너무 완강하니까 우리는 당황해서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언니들이 딱 나서서 바로 반란을 제압했지. 그니가 눈만 끔벅끔벅하다가 바로 복귀하더라고. 역시 그니를 사랑하는 우리 누나들의 파워를 실감한 사건이었지(웃음)."

줌인의 캐릭터, 회원들

줌인 단톡방은 늘 좀 시끄럽다. 밑도 끝도 없이 그니가 갑자기 아재개그를 하나 던지면, 이사람 저사람 댓글이 이어지며, 조용하던 단톡방이 살아난다(그냥 그렇게 아재개그로만 끝나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그 안에도 보석은 또 존재하는 법. 그 자유로움이 바로 줌인의 캐릭터, 줌인 만의 매력이다.

- 줌인 만의 분위기가 있다면?
그니 : "희한한 게, 지역사회에서는 어른이고 형님이고 스승님 역할을 하는 분들도, 줌인만 오면 다들 막내아들이 되는 것 같아. 줌인은 정해진 회칙이 따로 없어, 그냥 자유롭게 서로 눈치를 안 보고 막,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그게 결국은 영화를 만들 때 도움이 되니까."

수목 : "보통 2월에 기획안 이야기하고, 각자 본업 하면서 퇴근 후에 촬영 하고 편집도 하고, 기획안 나오면 그때부터 만드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정말 줌인 회원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2019년 제9회 우리동네 깐영화제

2019년 제9회 우리동네 깐영화제 ⓒ 안산줌인


그니 : "우주 엄마의 성장기(2018) 같은 경우, 어린 아이를 데리고 촬영하고, 편집 하고, 저렇게 힘들게 영화를 찍는구나, 영화에 진심이구나 느꼈어.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특히 줌인 회원들의 재능이 나오는데, 줌인의 살림살이부터 여러 공모사업, 든든한 서포터즈 역할까지 모두가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역할을 다 해주고 있어. 매년 영화제 준비하는 게 진짜 힘들어. 작년 9회 때는 영화제 전날부터 꼴딱 밤을 새우고 당일 아침까지 일했지... 그래도 또 해내고.. 그렇지만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역시, 점점 더 어려운 수준을 요구하는 수목 감독님이 아닐까(웃음)."

줌인의 자부심, 수목

제10회 깐영화제를 앞두고 회원들은 고민이 많았다. 뭔가 더 특별하게 갈 것인지, 지금까지 만드느라 고생했으니 올해는 제작을 쉬고 출품작 중에 골라 재상영을 할지.

그러다 10회 차인 만큼 특별히 그동안 줌인의 역사를 담아 수목 감독이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안산줌인의 미디어 교육 담당 김수목 감독

안산줌인의 미디어 교육 담당 김수목 감독 ⓒ 안산줌인


한국GM 비정규직 투쟁을 다룬 <니가 필요해>로 인디다큐페스티벌 관객상을 받았던 수목 감독. 그는 줌인 뿐만 아니라 지역의 투쟁 현장과 노동관련 분야에서 늘 함께하고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 정신을 몸소 실천해왔다. 최근 영상제작 교육에도 집중 하고 있다. 줌인의 깐영화제가 더해진 만큼 수목 감독에 대한 관객의 팬심이 점점 두터워지고 있는 이유다.

- 줌인의 영상교육을 맡아오면서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수목 : "줌인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그해가 끝나면 그냥 끝이 아니라, 계속 다음에 뭘 만들고 싶은지 이야기하고, 그걸 또 진짜로 내년에 만들어 낸다는 거다. 매년 영화제를 여는 곳들도 이렇게 해마다 자신들이 만든 영화를 전부 상영하는 곳은 없지.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말로만 했던 영화제라는 것을 결국 이렇게 만들어 냈고, 회원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로만 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것은(상상 이상의 스트레스인데도) 진짜 줌인만의 특별한 점이다."

줌인의 힘, 관객

제1회 때는 무려 관객모독이라는 평도 들었고, 너무 힘드니까 2회는 절대 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는데 벌써 10회차를 맞이한 우리동네 깐영화제.

마지막으로 수목 감독에게 영화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깐영화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함께 해주는 관객이 있어 가능했다고 생각해. 이웃이라는 관객이 항상 같이 있어 준다는 거, 이게 정말 대단한 거지. 영화제를 지속하는데 거의 큰 의미를 주지 않았나.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했지만, 줌인이 줌인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더 넓은 세상과 이웃으로 뻗어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 그리고 언젠가 줌인에서 누군가 진짜로 칸 영화제에 가버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

올해도 뜨겁게 또 한번 응원해본다. 안산줌인 화이팅.

제10회 우리동네 깐영화제 제10회 깐영화제가 8월 31일(토) 오후 2시, 안산시 단원구청 단원홀에서 개최된다.

▲ 제10회 우리동네 깐영화제 제10회 깐영화제가 8월 31일(토) 오후 2시, 안산시 단원구청 단원홀에서 개최된다. ⓒ 안산줌인



안산줌인 우리동네깐영화제 제10회우리동네깐영화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이웃들의 따뜻하고 건강한 뉴스를 전달하겠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