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천국이야."
"평생 가장 편한 이발을 했어요."
"난 분명히 죽으러 여기 왔는데, 내가 이렇게 편안해도 돼요? 내가 이렇게 아프지 않고 잘 지내도 돼요?"
"편하게 아무 걱정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여기 와보니 많네"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이 나눈 대화다. 이 호스피스 병동에 어머니를 모셨던 한 딸은 사회복지사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취미는 뭔지' 등 상대에게 호감이 있을 때 하는 질문을 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말을 많이 하고 많이 웃었다"고 했다.

존엄한 삶과 죽음
 다큐 갈무리

다큐 갈무리 ⓒ EBS


지난 5월 13일부터 20일까지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3부작이 방영됐다. 1부 '완벽한 하루'는 호스피스 병동에 머무는 사람들의 삶을 다뤘다.
 
호스피스 병동의 자원봉사자는 "아무리 좋은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라도 오랫동안 목욕 한 번 못 한 경우가 많다"며 "세수 한번 하길 바라는 작지만 절실한 바람을 실현해 주는 게 곧 병동에 있는 환자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말기 암 상태의 할머니에게 의사가 다가와서 불편한 것이나 바라는 것은 없는지 묻고 살피자 할머니는 "침대를 내려가 다니지 못해서 불편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의사는 "어디 가고 싶으신 곳이 있나 보다"고 하자, 할머니는 "그립던 (고향) 산천을 좀 돌아보고 그러면서 다녀보고 싶다"고 마음속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 말은 들은 의사는 "도와드릴게요"라며 할머니의 고향 여행을 준비한다. 할머니의 건강을 고려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준비하며 가족 여행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차 안에서 자녀들과 찐빵을 나눠 먹고, 현철의 '봉선화 연정'을 부르며 고향으로 향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지만, 죽음까지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도 하고... 그냥 사는 거죠. 여기도 똑같아요."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의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죽기 전까지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인간답게 나답게 사는 것, 그리고 그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존엄한 삶과 죽음을 위한 길일 것이다.
 
'죽기 좋은 나라'라는 별명이 있는 영국은, 호스피스 제도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한다. 이들은 자신이 죽음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에 상대적으로 죽음 가까이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타인을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죽음 앞에 선 자들인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연대 의식이 있는 듯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민의 기본적 삶과 죽음을 책임지려는 국가, 애정과 전문성으로 존엄한 삶과 죽음을 돕는 전문가, 한 사람의 죽음의 과정은 공동체가 함께 도울 일이라는 생각으로 기꺼이 기부와 봉사를 하는 시민. 이들 덕분에 영국은 죽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말기 암 환자의 95%가 호스피스를 이용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영국의 호스피스는 대표적인 '국민시설'인 셈이다.

삶의 마지막에도 필요한 돌봄
 
우리나라는 어떨까. 중앙호스피스센터의 '연도별 호스피스 서비스 이용률'에 따르면, 지난 2020년 한 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 8만 2204명 가운데 단 23.0%인 1만 8907명만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했다.
 유럽완화의료협회에 따르면,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인구 100만 명당 최소 50개의 병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병상보다 시급한 일이 많다. 애초에 호스피스 입원 자격(?)을 얻기도 힘든 데다, 설령 자격이 되더라도 '입원 대기 중 사망'에 이르는 환자도 많다.
 
다큐멘터리 속 호스피스 병원의 원장은 "병원에 입원 후 임종하기까지 대개 3주 미만이 걸린다. 어떤 경우는 1주 이내"라며 "생명이 1주일 남은 사람이 헐레벌떡 호스피스로 와 자기 인생을 잘 정리하고 마감할 수 있겠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의 말처럼, 삶의 시작이 돌봄 없이는 불가능하듯 삶의 마무리 역시 따뜻한 돌봄 없이는 초라하고 비참하다. 의존과 돌봄은 특별히 문제 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특별 조치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약한 존재인 인간을 살게 해주는, 우리 삶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제목이 왜 '완벽한 하루'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호스피스 병동 사람들의 삶에는 개인의 작은 바람이 함부로 취급되거나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보였다. 내가 손을 내밀면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리라는 믿음, 그리고 차마 내밀지 못하는 손을 먼저 잡아주는 손이 있었다. 따뜻하게 서로를 살피는 눈길과 내미는 손길이 환자들의 하루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묘약이 아닐까 싶었다. 
 
이 묘약은 병상과 시설과 인력이 부족한 우리 상황에서 특별한 개인들의 헌신만으로 지속될 수는 없다. 문득 책 <드라이빙 미스 노마>의 주인공 노마가 생각났다. 노마는 90세의 나이에 자궁암 진단을 받고 아들 부부와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시간을 여행하다가 캠핑카에서 호스피스의 돌봄을 받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읽는 내내 나에게 감동과 기쁨과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미스 노마의 완벽한 하루들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갖춘 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가와 전문가와 사회 구성원 전체가 각자의 위치에서 돌봄의 뿌리를 든든하게 내릴 때, 우리 삶의 마지막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완벽한하루 내마지막집은어디인가 EBS다큐프라임 호스피스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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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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