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부터 방송한 tvN 드라마 <감사합니다>는 제목 때문에 훈훈한 드라마로 오인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감사'는 '고맙다'의 의미가 아니다. 첫 방송 때 주인공 신차일(신하균 분)이 회사 임원들의 견제를 받으며 JU건설 '감사'팀장으로 부임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성격을 보여준다. '감사합니다'는 회사 내의 비리 세력을 긴장케 하는 선전포고다.  

부패한 기업들을 찾아 감사하며 대형 비리들을 적발해 내는 것으로 명성을 날린, 아니 악명이 높은 신차일은 JU 사장 황세웅(정문성 분)의 전폭 지원을 받으며 타워 크레인 붕괴 사고의 실체를 추적한다. 그는 다 끝난 일을 들쑤신다는 주변의 험악한 분위기를 강력한 카리스마로 억누르며 일을 진행한다.
 
결국 그는 강풍이 사고의 원인이 아니라 부실한 크레인의 사용이 진짜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에 얽힌 회사 내부의 비리를 찾아낸다. 그러다가 황세웅의 이복동생인 부사장 황대웅(진구 분)의 부패를 맞닥트린다. 이 회사의 기존 감사 시스템으로는 처리될 수 없었던 문제를 그의 뚝심이 해결한 것이다.
 
한국 대기업의 커넥션
 
 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 감사팀장을 맡은 신하균(좌)과 이정하(우)

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 감사팀장을 맡은 신하균(좌)과 이정하(우) ⓒ SBS 갈무리

 
이 드라마에서 묘사된 기업 감사 시스템의 부조리는 한국 대기업들의 고질병이었던 정경유착과도 관련이 있다. 재벌기업과 정치권력의 검은 커넥션은 기업 내부의 감사 시스템을 저해하는 핵심 원인이 됐다. 정권과 관련된 기업 부조리는 신차일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감사팀장의 힘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감사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하게 작동하는 속에서 재벌기업과 정치권력은 상호 '땡큐'하는 유착관계를 이어갔다. 박정희 정권에 관한 종합 보고서인 미국 의회의 <한미관계 보고서>는 대기업의 차관 도입이나 해외 투자가 그런 유착관계를 매개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박 정권 몰락 1년 전인 1978년에 일명 '프레이저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발행된 이 문건은 "민주공화당의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해외차관과 해외투자로부터 자금을 뽑아내는 것은 박정희 정부의 일상화된 관행이 되었다"고 한 뒤 이렇게 기술한다.
 
"개별 차관은 정부 승인과 지불 보증이 필요했기 때문에 차관을 받는 한국의 당사자는 필요한 보증을 얻기 위해 일정한 퍼센트(대개는 10~15%이지만 때로는 차입금의 20%)를 지불해야 했다." - 프레이저 보고서
 
기업에 들어가야 할 해외차관의 10~15%가 중간에서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한데도, 박 정권 당시의 기업 감사 시스템은 이런 현상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신차일 감사팀장 같은 인물은 서울 남산의 중앙정보부 건물로 끌려가 빨갱이로 매도될 각오를 해야 했다. 다른 시기의 독재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경유착이 낳은 비극적 사건 중 하나로 502명이 희생된 1995년 6월 29일의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들 수 있다. 백화점 건설 과정에서부터 생겨난 굵직한 비리들이 이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불법 용도변경, 내부 구조의 임의 변경, 부실 시공 등은 1989년에 세워진 건물이 불과 6년 만에 붕괴되는 원인이 됐다.

그해 7월 8일자 <조선일보> '삼풍 대참사 로비 어디까지'는 중앙정보부 창설 멤버인 이준 회장의 경영 및 로비 스타일을 거론하면서 "조사 결과, 이 회장이 비자금을 철저히 단독 관리하면서 폭넓은 로비 활동을 펴온 것으로 드러났다"는 검찰 관계자의 전언을 전했다. 그러면서 "구청장급 이상과 정관계 고위 인사"는 이준 회장이 직접 로비했다고 보도했다.

1995년 9월 15일자 <경향신문> 22면을 보면, 서초구 인근의 송파구에서 짜장면 한 그릇은 2000원에서 2500원이었다. 이런 시절에 이준 회장이 수억에서 수십억 원의 비자금을 운용하고 있다고 검찰은 추정했다. 이런 정경유착이 삼풍백화점 참사의 유력한 원인이었다.
 
 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는 부실한 크레인을 통해 회계비리가 적발된다.

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는 부실한 크레인을 통해 회계비리가 적발된다. ⓒ SBS 갈무리

 
정경유착은 노동자보다는 대기업 쪽으로 기울기 쉬운 국가권력을 더욱 더 대기업 편이 되게 만들었다. 재벌기업이 주는 정치자금을 '감사'해 하는 국가는 기업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저임금을 강요했다. 경찰력을 회사 구사대처럼 파견해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또 노동자들과 정권이 서로 고마워하는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게 막는 제도적 장치가 작동했다. 한국전쟁 중인 1953년 3월 8일 제정된 노동조합법 제24조는 "노동조합원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징수할 수 없다"(제1항)라며 "노동조합 기금은 정치적 자금에 류용할 수 없다"(제2항)고 못 박았다. 노동자들의 정치자금이 정치권에 흘러 들어갈 수 없게 해놓은 것이다.
 
이 법은 박정희 쿠데타 이후인 1963년 4월 17일 개정됐다. 이때는 위 조문이 제12조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내용이 편입됐다. "노동조합은 공직선거에 있어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제1항이 되고, 원래부터 있었던 위의 두 조항은 각각 제2항 및 제3항이 됐다.
 
이 같은 억압적 구조를 발판으로 박 정권은 재벌기업과 유착하며 서로 고마워하는 관계를 이어갔다. 이는 기업 내부의 감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게 만드는 한 가지 원인이 됐다.
 
정권이 기업이나 전경련(한경협)의 정치자금을 수수하지 못하게 막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을 위한 정치자금만 철저히 봉쇄했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자격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정치활동을 금전적으로 후원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이는 노동자의 정치활동을 억제할 뿐 아니라, 노동자와 국가권력을 이간질하는 기능도 함께 수행했다. 국가권력이 재벌기업에 감사를 표하는 것은 막지 않으면서도, 노동자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것만큼은 철저히 차단한 것이다.
 
이런 구도 때문에도 노동자와 국가권력은 가까워지기 힘들었다. 권력이 노동자의 후원금을 받지 못하게 막는 시스템은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국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차갑고 냉랭한 국가를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치권력이 노동자의 돈을 받지 못하게 한 목적이 노동자와 정치권력이 깨끗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노동자와 정치권력의 협력적 관계를 차단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위의 노동조합법 규정은 재벌기업의 이해관계를 상당히 많이 반영한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11월 25일, 헌법재판소는 노동조합법 제12조가 헌법 제11조의 차별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이랬다.
 
"민주주의에서 사회단체가 국민의 정치의사 형성 과정에 있어서 가지는 의미와 기능의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단체는 다른 사회단체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서 같게 취급되어야 하는데, 이 사건 법률 조항이 다른 이익단체, 특히 사용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이나 사용자단체의 정치헌금을 허용하면서 유독 노동단체에게만 정치자금의 기부를 금지한 것은 노동단체로 하여금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활동의 영역을 다른 사회단체와 달리 차별대우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동자도 정치권력을 정당하게 후원하고 정치권력이 노동자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일찍부터 정착됐다면, 노동자 대 국가의 관계는 훨씬 바람직한 방향으로 형성됐을 것이다. 그러지 못해 재벌과 국가권력 사이에서만 후원금이 오가고 이들끼리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정경유착이 굳어지고, 이것이 한국사회와 재벌기업 모두를 병들게 했다.
감사합니다 기업감사 정경유착 정치자금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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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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