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울음> 스틸컷

영화 <귀울음>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귀에서부터 두개골까지 염증이 급속도로 번지는 귀울음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백신과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못했다. 감염자들의 철저한 격리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감염이 되지 않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청정구역을 따로 만들어 생활하도록 하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종식이 요원하기만 한 이유는 제대로 통제를 따르지 않고 숨어 사는 이들로 인해서다. 이에 정부는 귀에서 진물이 나고 청력이 감퇴되는 귀울음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은 즉시 신고하라며 의무 사항으로까지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감염자와 사상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는 신고된 감염자들을 비밀리에 사살하기로 결정한다.

진희(김예은 분)는 감염된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청정구역에서 감염된 사실을 숨기고 몸을 숨긴 채로 살고 있는 이들을 적발해 내는 일이다. 이들에게도 감염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동료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바이러스에 노출이 되면, 그 즉시 관계된 모든 인원이 감염청으로 끌려가 감염 여부를 가려내기 위한 테스트를 받게 된다.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진희에게는 감추고 있는 비밀이 하나 있다. 자신이 귀울음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모습을 감추고 사는 감염자를 찾으러 다니는 숨은 감염자다.

02.
영화 <귀울음>은 바이러스로 감염된 시대, 그로 인해 통제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타인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색출해야 하는 한편 자신의 자리는 감추고 숨겨야 하는 시간.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가 중심인물인 진희의 전후에 서로 다른 장면을 놓아두는 이유다. 동료 희경(장하란 분)과 그의 딸 서윤(양하율 분)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타인에 대한 감각을 다시 조금씩 깨워간다. 물론 시대의 요구로부터 이탈해 다른 자리로 나아가는 일에는 그만큼의 감당해야 할 책임과 무게가 놓인다.

박소영 감독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완성해 내기 위해 선택한 것은 감염병이다. 조금 더 정확히는 귀울음, 이명이다. 신체 기관으로 따지자면 귀에 해당된다. 감염된 이들의 모습 위로 이따금씩 들리는 '삐-' 하는 날카로운 효과음은 관객의 불안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자칫하면 시각적 자극에만 편중될 수 있었던 극의 균형이 이 선택으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청각이 감퇴된다는 설정으로 인해 다른 장치의 외부적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청음을 할 수 없다는 부분 또한 흥미롭다. 감염을 피하기 위해 방호복을 입고 접촉이 차단된 상황에서 '소리'는 가장 빠르고 직관적으로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 감각이다.

03.
"진희씨, 감염자죠?"

보청기로 귀울음을 멈추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굴면 자신의 문제를 들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던 진희에게 희경의 물음은 청천벽력과도 같다. 다만 다행인 일은 희경 또한 감염자로, 이 사실을 고발하거나 신고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곧 앞두고 있는 정기 검진을 통과하기 위해 진희의 보청기를 잠시 빌리고자 한다. 정부의 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은 감염자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귀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감염자임을 들키게 된다면 죽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는 진희를 동료 희경의 문제로부터 조금도 빠져나갈 수 없도록 이중의 장치를 마련한다. 두려움으로 인한 위협이기는 하지만 혹 자신도 휘말려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근본적인 두려움이 하나다. 사실 금지된 구역에서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일보다 혼자인 경우에 발각될 확률이 낮아진다.

희경의 딸 서윤이 두 번째 장치다. 엄마의 감염으로 인해 딸 역시 감염된 상황. 희경의 죽음 이후에 서윤 역시 처분을 당할 것이 자명하다. 조금 뒤의 일이지만, 실제로 희경이 끌려가자마자 서윤이 감염 의심자가 되어 도시 전체에 수배 전단이 뿌려진다. 엄마와 달리 아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진희의 마음을 붙든다.

04.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요원들에 의해 희경이 끌려가고 감염자라는 것이 적발되자 남은 사람들에게도 그 여파가 전해진다. 예상했던 대로 같은 팀 동료였던 진희와 딸 서윤에게 감염의심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고, 24시간 안에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의무가 생기게 된 것이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검사를 회피할 경우 감염자로 간주된다는 경고도 함께다.

문제는 두 사람 모두 감염자라는 사실이다. 검사를 무사히 넘기게 해 줄 보청기는 진희의 것 한 세트뿐. 두 사람은 주어진 시간 동안 함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연습한다. 완벽한 호흡만이 검사를 통과하게 해 줄 것이다.

이 장면에는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동안, 타인과 만나 교류하며 삶을 영위하는 동안 필요한 태도가 담겨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감각할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는 시대가 반영된 이야기 속에서 서로를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이 부여되며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삶과 죽음의 경계를, 그 경계를 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타인을 가엽고 불쌍하게 여기고,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태도. 현시대에 필요한 그런 모습들이 오히려 고려되지 않아도 좋을 이 이야기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실제 사회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 <귀울음> 스틸컷

영화 <귀울음>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5.
영화의 후반부에는 서로의 비밀을 간직한 두 사람이 어쩌면 자신을 죽이려고 들지도 모르는 이들 앞에서 청력 검사를 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작품의 장르적 구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지점이자 그동안 쌓아온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부분이다. 단순히 미장센과 감각의 자극을 통해서만 얻어지지는 않는다.

귀울음 바이러스가 청력을 악화시키고 이명을 듣게 한다는 점,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는 한 사람만 외부와 소통이 가능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그 차이는 직접 소통을 하기 전까지 외부적으로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 마지막 장면의 톱니를 완벽히 맞춰낸다.

소리를 생각하면 언제나 의문이 생긴다. 같은 문장을 교환하며 대화를 나누고, 동일하게 들려오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소리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자극을 받아들이지만, 과연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이 소리의 모습과 타인이 듣게 될 소리의 모양이 과연 같은 것일까 하는 문제다. 물론 이 물음은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확인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영화 <귀울음> 속의 이명 역시 동일하다.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사람들은 감염자들끼리 동일한 증상을 겪게 된다고 여겨지고, 정부 또한 그런 판단 가운데 모두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바이러스와 감염, 이명, 그 어느 곳에도 타인을 이해하고 감각하고 제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이 영화가 말하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자리, 공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지점이다.

어떤 시기에 우리가 경험했던 시간과 언젠가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될지 모르는 시대의 모습이 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우리는 우리를 무엇으로 지켜낼 것인가. 과거에도 미래에도 이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귀울음은 들릴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운영 중인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는 2024년 2월 15일(목)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선정작 92편(장편 22편, 단편 70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열 번째 큐레이션인 '흐르다보면'은 7월 1일부터 7월 15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인디그라운드 귀울음 박소영 김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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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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