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이라이트>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3.
배우의 호연이 시각적인 지점에서 이 극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관계적 긴장감은 내러티브 전체를 지지하는 축을 담당한다. 환자들의 정숙과 숙면을 관리해야 하는 간호사와 몰래 축구 경기 시청을 시도하려는 남자의 병실 내 사람들 사이의 긴장감이다. 사실 이들이 사적으로 갖는 관계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당장 내일이라도 전혀 모르는 사이가 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다. 이들 사이가 팽팽한 긴장을 형성하는 것은 '소음을 내어서는 안 된다'는 하나의 규칙 때문이다. 한쪽은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다른 한쪽은 소리를 내지 않도록 몰래 행동하고. 애초에 이 상황과 긴장의 형성은 남자를 포함한 일부 환자들이 조용히 잠들기만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다.
두세 번 정도 높은 긴장을 유발하는 이들의 관계는 경기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결정적인 상황을 완성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한 남자의 재채기로 시작된 소음이 연쇄적으로 다른 소리를 일으키며 경기 내내 잘 유지되던 소음의 수준과 양측 사이의 균형이 일순 무너지면서다. 텔레비전을 끄고 간호사에게 발각될 위기를 겨우 벗어나지만, 후반 44분이라는 결정적인 순간, 마지막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남자는 끝내 경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04.
사실 이 영화 전반을 차지하는 것은 일련의 소동이지만, 의미적으로는 남자의 플롯 전체를 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축구 경기의 중요한 순간마다 오버랩되며 나타나는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장면들. 그리고 그 시절의 치기와 과욕으로 인해 눈앞의 변수를 끝내 관리하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게 된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남자가 이렇게까지 축구경기에 매달리는 이유가 되고, 영화 내내 의구심이 들었던 끊임없는 기록에 대한 해답이 된다.
영화의 이야기는 모두 병렬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제 더 이상 그라운드를 누빌 수 없는 남자도, 소음을 관리하고자 하는 병실 환자들의 모습도, 심지어는 지고 있는 경기의 마지막 휘슬을 몇 분 남겨두지 않은 저 먼 나라의 축구 선수들의 모습도 그렇다. 이들 모두는 통제가 필요한 변인을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다. 결과적으로 그렇다.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남자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 살아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고, 아직 끝나지 않은 경기의 결과가 어떠할지는 모르지만, 소동이 벌어지고 난 뒤에도 숨겨둔 라디오를 꺼내드는 남자의 태도로부터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나머지 두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병렬의 형태로 놓인 이야기는 대체로 닮아가기 마련이다.
▲영화 <하이라이트>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5.
관리와 통제의 실패가 언제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더 빛날 수 있는 이야기의 결말을 우리는 종종 만나게 된다. 이때, 예상하지 못한 상황은 운이 되고, 돌발적인 사건은 기회가 되며, 실패는 극복으로 모습을 바꾼다. 김영석 감독의 영화 <하이라이트>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자신의 빛나는 미래를 잃게 된 한 남자. 그의 모습 위에서 여전히 상반된 단어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목표인 병실 안에서 적막의 붕괴를 노리는 여러 소음과 경기를 이기는 것만이 염원인 경기장 안에서 점차 다가오는 종료 휘슬과 뒤처진 스코어는 그런 그에 대한 은유이자 비유와도 같다.
남자의 기억, 지나온 시간만 생각하자면 그의 삶에서 하이라이트란 벌써 지나가버린 아련한 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역시 내일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운과 기회는 포기하지 않는 삶의 어느 순간에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그런 시간의 축적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힘을 내어줄 것이다. 마지막 남자의 모습에 과거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한 빛으로 채워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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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