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와 혜진은 함께 하면서 각자의 삶에 투사되었던 욕망으로부터 '졸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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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크게 다툰 직후, 준호는 자신이 그동안 공들여 만든 교재를 모두 버려 버린다. 그리고 혜진과 부딪히면서까지 이렇게 주장한다.
"흔해 빠진 방식으로는 아이들이 찜찜함을 없애줄 수 없어요. (...) 읽는 방법을 가르칠 거예요. 텍스트랑 일대일로 맞장뜰 수 있는 근육을 키울 수밖에 없어요. 이런저런 문제풀이 스킬 없이 본질로 가야 해요." (11회)
준호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치성'을 원하는 강한 심리적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 '일치성'은 마음 속 느낌과 생각, 그리고 행동과 말이 일치되는 것을 말한다. 감정과 생각, 행동이 일치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고 느낀다.
아마도 준호는 '모든 것을 떠 먹여주는' 부모의 양육에 질려있었고, 이를 거부하는 자신이 아이들을 '떠먹여 주는' 방식으로 가르치면 안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그런 강사가 되고 싶었을 테다. 즉, 독립적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자신의 마음과 강사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일치시킨 것이다.
청미(소주연)도 이런 인물 중 하나다. 준호의 입사동기인 청미는 매사에 열정을 다하고 세심하게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청미를 답답하게 여기는 채윤(안현호)이 "좀 대충해도 된다"고 조언하자, 청미는 이렇게 답한다.
"노력을 폄하하진 마세요. 그런 태도로 어떻게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칠 수 있어요. 무슨 권리로 아이들한테 미래를 걸라고 할 수 있어요?" (13회)
이는 청미 역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언행에 진심을 담는 '일치성'을 추구하는 인물임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시우(차강윤)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현실적인 제안을 거절한 혜진 역시 일치성을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04).
나는 이런 '일치성' 있는 태도가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말의 내용보다도 태도에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가 잘 살아가길 바란다면 아이의 삶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획득하길 바라는 태도를 직접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태도는 배우고, 삶의 내용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채워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아이 역시 '일치성'을 지니고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삶을 책임지지 않기
▲혜진은 달라진 자신의 수업방식을 설명하면서 "1등급을 약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 tvN
"약속 못하죠.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결과까지는 약속 못 드린다는 뜻이에요. 공부는 제가 아니라 애들이 하는 거니까."
준호와의 스캔들이 터지고 위기에 몰려있던 혜진은 14회 자신을 찾아온 학부모들을 만나 달라진 자신의 수업방식을 설명한다. 이에 한 학부모는 "1등급을 약속할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러자 혜진은 위처럼 답한다. 학부모들은 '책임지지 못한다'는 말에 분노하지만, 나는 혜진의 '책임지지 않는 태도'야말로 부모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아이의 삶=부모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물론 부모로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돌봐줄 '책임'은 져야 한다. 하지만, 아이의 삶은 오롯이 아이의 것이다. 학교도, 전공도, 직업도 아이 스스로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이를 선택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아이들이다.
함께 고민해주고, 조언해줄 수는 있지만, 최종 선택은 아이의 몫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아이의 몫이다. 아이를 지켜봐 주고 지지해주며, 힘들 때 함께 견뎌주면서 어른으로서 부모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인 것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삶을 책임지느라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고 아이와 갈등을 겪는다. 상담실에서 나는 이런 부모들을 너무도 많이 만나왔다. 나는 우리가 아이들을 혜진처럼 대했으면 좋겠다. 옳다고 여기는 걸 가르쳐주지만, 그것을 해내는 건 아이들임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이제야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졸업'이었는지 알 것 같다. 드라마는 준호가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혜진이 '돈'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길을 향해 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졸업'의 의미는 아마도 두 주인공이 투사된 욕망으로부터 '졸업'한다는 의미였을 테다.
동시에 분명히 보여줬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부모 세대의 욕망으로부터 '졸업'하는 것임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른들이 먼저 어떤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고, 어떤 것이 주입된 욕망이었는지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드라마 속 괜찮은 어른들이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일치성을 실천했듯 말이다.
16회 혜진의 제자였던 하율(김나연)은 이렇게 말한다.
"진짜 감사했다고, 저더러 뭐든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애라고 해주셨던 거. 꼭 기억하겠다고."
우리 아이들 모두도 그렇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이제는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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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