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판 3.0>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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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로 제기된 기후소송이 마지막 공개변론을 마치고 재판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청소년 19명이 낸 기후소송을 포함해 시민단체와 영유아 등의 이름으로 제기된 소송 4건을 묶어 함께 심리하고 있는 상태다. 법으로 명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이행계획이 미래세대를 포함한 시민 기본권을 보호하지 못해 위헌이란 게 소송의 이유다.
아시아 최초라고는 하지만, 세계적 시각에서 보자면 기후소송은 하나의 트렌드라 해도 좋을 정도다. 2015년 전 세계 195개국이 조인한 파리협정 뒤 유럽과 미주 등에서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는 소송전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정경대 그랜섬 기후변화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현재까지 제기된 기후소송만 2300여 건에 이른다.
특히 2013년 네덜란드에서 제기된 이른바 '우르헨다 소송'은 전 세계적 기후 및 환경소송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2015년 첫 판결을 받아낸 우르헨다 소송은 6년여의 법정싸움 끝에 2019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판결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법원은 네덜란드 정부에게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25% 감축할 것을 명령했다. 구속력 있는 구체적 감축목표를 법원이 정한 것이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법조계에선 이 재판을 지난 반 세기 전 세계 모든 재판 중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는 이가 많았다. 소송을 수행한 변호사 로저 콕스가 일약 세계적 유명인사로 떠오른 건 물론이다.
국경을 넘어 대동소이한 법 원칙이 유지되는 세상이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사적자치 등의 원칙을 공유하는 국가들에서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은 건 자연스런 일이다. 우르헨다 소송의 논리를 그대로 빌려다 파리협정 등을 근거로 국가가 보다 실효성 있는 변화를 보이길 촉구했다. 옆 나라 벨기에를 시작으로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유사 소송이 제기됐다. 한국도 그중 하나다.
기후재판의 시대, 법으로 세상을 바꾸다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ESG: 자본주의 대전환' 섹션을 마련해 <기후재판 3.0>을 초청 상영했다. 역사적인 기후 재판을 이끈 변호사 콕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환경문제에 관심이 깊은 벨기에 기후활동가 닉 발타자르가 연출했다. 57분의 중편 다큐멘터리는 2015년 있었던 우르헨다 소송 첫 판결부터 대법원 최종 승소, 벨기에와 프랑스 등 주변국의 유사 소송 등의 사례를 함께 담아 이들의 선구자적 행적을 기록해나간다.
발타자르는 저의 무력감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이 시대 많은 기후활동가들이 그러하듯 그 또한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로부터 환경문제에 눈을 떴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많은 이들처럼 좌절을 겪는다. 제가 무엇을 하더라도 파멸을 향해 질주하는 인류에게 제동을 걸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그가 실의에 빠진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네덜란드 변호사 콕스와 대면했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술회한다. 그의 생각이 깊이 잠들어 있던 열정을 깨울 만큼 신선했다는 것이다.
콕스의 생각이란 바로 이것이다. 그는 법률가답게 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인류가 처한 암담한 상황 또한 법률적 관점으로 타개해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직접 저술한 < Revolution Justified >이란 책에서 법을 통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실제적 변화를 이끌 수 있음을 주장한다. '지금 법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는 이유'란 부제는 그의 이 같은 생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환경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