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처럼 대충 아무런 맥락에서 널리 또 편의적으로 활용되는 용어도 드물다. '악의 평범성'이란 말을 쓰기 위해 꼭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아렌트가 생각한 개념은 염두에 두는 게 좋다. 그는 행위주체인 개인과 개인의 행위를 규율하는 사회체제 사이에서 '사회'의 우위를 강조했다. 고도로 억압적이고 강력한 체제하에서 구성원은 체제를 스스로 또는 자발적으로 내재화함으로써, 악을 행한다는 자각 없이 악을 행할 수 있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악이라는 게 진부하고 시시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 개념은 오히려 악인의 평범성을 말하는 듯하다. 악은 언제나 평범하지 않다. 아무리 사소한 악도 악이다. 물론 인간은 일상적으로 사소한 악을 저지르긴 한다. 평범한 인간이 그렇다. 다만 평범한 인간이라면 사소한 악을 저지르곤 어떤 식으로든 괴로워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