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모든> 스틸컷
JIFF
PMS와 공황장애... 서로를 지지하는 두 환자
직장을 옮겼다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도시의 대기업에서 외딴곳에 있는 작은 업체로 이직했지만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다.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PMS로 인한 문제도 돌출되게 마련, 마침내 문제가 드러난다. 그녀 딴엔 억울한 것이 이번만큼은 잘해보자고 노력한 결과였던 일이다. 간식으로 크림이 잔뜩 든 빵을 사 와서는 동료들에게 돌렸는데, 옆자리 직원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 분)만이 그것을 거절한 것이다. 매일 아무 맛도 첨가되지 않은 탄산수를 마시는 그 사내는 후지사와의 거듭된 권유에도 빵을 받아 들지 않는다.
월경이 다가온 어느 날이었나. 마침내 후지사와가 폭발한다. 피식, 탄산수 병을 따는 소리에 제발 탄산 좀 그만 먹으라며 발작에 가까운 성질을 부려댄 것이다. 된통 꼬장을 부리는 여자와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던 남자 사이에서 잠을 번쩍 깨우는 긴장이 빚어진다. 그로부터 영화는 진짜 속내를 꺼내놓는다.
영화는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며 연대하는 이야기다. 후지사와는 PMS를, 야마조에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후지사와가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린 반면, 야마조에는 이를 감추고 있다. 그들은 서로가 가진 질병과 그 증상을 공유하고, 차츰 삶 가운데 같은 적을 맞아 싸우는 일종의 전우애를 쌓아나간다.
감독은 상영 뒤 관객들과 가진 자리에서 이 두 캐릭터가 제게 각별히 다가온 이유를 전했다. 하나는 두 캐릭터가 어떤 선입견도 없이 자문자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또 하나는 물러나 포기하는 대신 무언가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 끌렸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러하여서 두 인물은 그와 같은 문제를 지녔다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편견 없이 저의 문제에 맞선다. 나는 지난 경험을 통해 그것이 거의 환상에 가까울 만큼 이례적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미야케 쇼가 그 같은 설정에 반한 이유를 알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대체 누가 그와 같은 이에게 반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새벽의 모든현장 사진김성호
우리도 자유롭지 못한 이야기
이는 그대로 영화의 단점이자 장점이 된다. 장애와 질환을 갖고, 그 때문에 수차례 좌절하면서도 어떠한 편견이나 소극성도 갖지 않은 캐릭터는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가. 그러나 그 설득력 없음을 관객 앞에 설득해내기만 한다면, 그대로 관객을 매료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와 관련해 <새벽의 모든>이 얼마쯤의 성취와 얼마쯤의 실패를 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누구는 코를 골고 누구는 눈물을 흘렸다는 뜻이다.
한편 영화는 연기와 연기지도에 있어 기록할 만한 순간을 여럿 거친 듯 보인다. 감독은 공황장애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 마츠무라 호쿠토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연기지도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통상 현장에서 연기지도는 감독이 배우를 독려해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이뤄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만큼은 감독이 배우를 제어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 촬영현장에 의사가 배석한 상태에서 배우가 공황장애 및 발작 연기를 제한적으로 수행했다고 전한다.
배우가 배역에 몰입하고 심지어 저와 배역을 동일시하는 것이 일상화된 현대 영화예술의 연기방법론은 정신질환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경우에 과몰입으로 인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 예비해 공황장애 연기가 실제 미칠 수 있는 후폭풍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이야기다. 적극 활용했다면 영화를 보다 극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었을 공황장애란 설정을 상대적으로 적게 그린 연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PMS와 관련해, 감독은 한국 관객들에게 제가 가진 월경 관련 증상을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남다은 평론가가 나서 저도 그렇고 한국에선 월경 관련 이야기를 편히 하는 분위기라 답했으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대신 곁에 앉은 여성통역가가 제 세대엔 그렇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남 평론가가 돌아보면 자신은 저항적인 마음으로 더욱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 자유롭게 한 것 같다 부연하기도 했거니와, 여전히 월경과 관련한 증상을 자유롭게 내놓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한국사회에 조성돼 있다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PMS에 대한 낮은 인지도부터가 그를 방증하지 않은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은 프로그램 진행에도 불구하고 미야케 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가 담고 있는 문제의식이 한국 관객에게 그대로 공명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영화 속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슬픔을 이 땅의 아무개들도 겪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우리는 왜 이와 같은 담론을 갖지 못했는가. 한국이라 해서 공황장애와 PMS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갖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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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