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열녀박씨 계약결혼뎐>, <밤에 피는 꽃> 속 조선 여성들

<연인>, <열녀박씨 계약결혼뎐>, <밤에 피는 꽃> 속 조선 여성들 ⓒ MBC

 
여성의 성(性)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조선시대 때 남편이 죽은 후에 수절하거나 외간 남성으로부터 정조를 지키기 위해 죽은 여성은 열녀라 칭했다. 정절을 지키는 것이 여성의 의무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이 사회 질서의 일환이었던 시대, 순결한 것이 여성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던 세상에서 조선 여성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최근 방영된 사극 <연인> <열녀박씨 계약결혼뎐>과 방영 예정인 <밤에 피는 꽃>까지 세 드라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여성의 정절이다.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한 여성 캐릭터들이지만, 차별적인 시대성에 맞서 싸우며 21세기에 조선 여성의 주체성을 다시금 상상하게 했다. 순결을 잃었으니 자결하라고? 남편이 죽었으니 따라 죽어야 한다고? 알맹이 없는 사회적 강요에 여성들은 "내가 왜?"를 외쳤다.
 
왜 죽어야 돼? 난 살아서 좋았어
 
 <연인> 메인 포스터

<연인> 메인 포스터 ⓒ MBC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MBC 드라마 <연인>의 주인공 길채(안은진 분)는 친구와 함께 피난을 떠나다가 오랑캐와 마주한다. 오랑캐가 친구를 겁탈하려 하자, 길채는 은장도로 그를 찌른다. "여인이 오랑캐에게 욕을 당하면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친구의 말에 길채는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라며 결연하게 몸에 묻은 피를 씻어낸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여성들은 '환향녀(還鄕女)'라 불렸다. 직역하면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이지만, 청나라 오랑캐들에게 정절을 잃어버린 여성이란 비하가 담겨있었다. 환향녀가 된 여성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가족에 의해 살해되었고, 남편에게 이혼을 강요받거나 외면당한 채 생을 마쳤다. 전쟁통에 힘겹게 목숨을 보전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절개를 잃었다는 손가락질이었다.

환향녀를 향한 차가운 시선, <연인>의 길채도 벗어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소중하게 키운 딸이 환향녀로 살아가며 마주할 지옥에 차라리 제 손으로 죽이려 하고, 동네 사람들은 오랑캐에게 더럽혀진 몸이라며 혀를 찬다. 남편마저 길채를 감싸기보단 '그곳에서 무슨 일이 없었냐'며 길채가 정절을 지켰는지 의심한다.

그러나 길채는 주눅 들지 않았다. 남편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하며 꺼낸 한마디는 정절 이데올로기에 시달린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 일로 이혼을 요구하셨다면 전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길채의 올곧음은 자신만을 구하지 않았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는 한 여성을 붙잡고 길채는 말한다. "내가 살고 싶다는데 부모님이 무슨 상관이야? 일전에 강화도 때 다 뛰어내리는데 우리는 살았어. 난 살아서 좋았어." 순결을 잃었다는 이유로 사회가 버린 여성들, 그들을 구한 건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서로를 향해 뻗은 손이었다.
 
나는 남편 없이 잘 살아
 
 <열녀박씨 계약결혼뎐> 메인 포스터

<열녀박씨 계약결혼뎐> 메인 포스터 ⓒ MBC

 
MBC 드라마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의 연우는 '호접선생'이란 예명으로 직접 디자인한 한복을 팔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조선 여성이다. 집에서 홀로 자수를 두는 것보다 한복을 팔러 바깥세상에 나서고, 혼인보다 지금의 삶이 더 좋은 연우에게 세상은 혹독하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내 이름 석 자로 살고 싶다. 그게 죄는 아니지 않냐'는 연우의 꿈에 어머니는 차가운 현실을 끼얹는다.
 
"아니 죄다. 여인이 뭔가 하겠다고 꿈을 꾸는 것, 그 자체가."

결국 연우는 한 남성과 혼인하지만, 그는 첫날밤 이유 모를 병으로 사망하고 연우는 과부 신세가 된다. 죽은 것은 남편이지만, 책망받는 이는 연우다. 시어머니는 그의 뺨을 치며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했냐"고 책잡고, 홀로 상복을 입고 신혼집에 앉아있던 연우는 누군가에게 납치당해 우물가에 던져진다. 마치 수절을 위해 죽음을 택한 여성처럼 우물가에는 가지런히 놓인 연우의 신발만이 남았다.

우물가에 빠져 죽는 대신, 21세기로 타임 슬립한 연우. 그곳에서 당당히 한복 디자이너로 일하며 조선 여성의 씩씩한 기개를 보여준다. 조선시대에선 과부가 되어 오직 수절을 위한 생을 살아야 했지만, 이젠 '박연우'라는 이름이 박힌 한복을 선보이는 당당한 여성이 되었다.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에 이어 방영되는 <밤에 피는 꽃> 속 주인공 역시 과부다. 낮에는 꼼짝없이 집에 갇힌 과부지만, 밤에는 담을 넘는 '여화(이하늬 분)'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험난한 과부의 삶을 살아가며 죽은 남편을 향해 "이게 다 너 때문이다"라고 탓할 줄 아는 여화. 조선시대 여성들은 과부가 될지언정,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
 
어차피 허구, 사실과 다른 드라마 아니냐고요?
 
 <밤에 피는 꽃> 메인 포스터

<밤에 피는 꽃> 메인 포스터 ⓒ MBC

 
물론 <연인> <열녀박씨 계약결혼뎐> <밤에 피는 꽃> 모두 허구다. 실제로 환향녀들이 길채처럼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을까. 과부들이 연우와 여화처럼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고증보다 중요한 건 이 드라마를 제작하고, 시청하는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의 마음이다.

이미 정해진 역사를 바꿀 수는 없어도, 주체성이 담긴 조선 여성을 새롭게 그려내는 것. 비록 기록에 담기지 않았으나, 그 시대에도 꿋꿋히 삶을 개척했을 여성들에 대한 예우이자 새조선 여성들의 바람이 담긴 일이다. 여성들은 언제나 수동적이지 않았다. 분명히 존재했을 길채, 연우, 여화를 이제서야 새조선 여성들이 발견한 것뿐이다.

여전히 여성의 삶은 개인적이지 않다. '환향녀'는 '화냥년'이 되었고, 저출생 시대에 여전히 출산과 육아는 여성만의 몫으로 여겨지지만, 그래도 어쩌랴. 더 나은 조선을 꿈꾸며 살아갈 터인데.
연인 열녀박씨계약결혼뎐 밤에피는꽃 길채 연우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