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인> 스틸컷

영화 <괴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노가다들 돈 돈 거리는 거 정말 빡세다. 조금만 늦어도 전화 오고 문자 오고…"

기홍(박기홍 분)은 목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목공소에서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아니라 현장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직접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그런 목수. 전문 인테리어 업자처럼 작은 공사들을 맡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고, 나머지 일은 다른 인부들을 불러 해결하는 식이다. 현장에서 직접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힘이 들어서 그런 걸까? 그의 태도는 꽤 거칠다. 함께 일하는 인부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다. 임금을 제때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유다. 직장 부하 직원에게도 이렇게 하대하지는 않을 것만 같다.

이런 모습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자신에게 일을 맡겨준 피아노 학원 원장 아영(이소정 분)에게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고 퇴근길 마트에서 만난 일면식도 없는 여성에게는 순서를 양보하기도 한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을 대하는 모습의 차이가 큰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그의 말처럼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직업의 특성상 서로에게 하대를 하고 고성이 오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걸까?

영화 <괴인>은 인물을 그려내는 방법부터 기존의 영화적 문법에서 탈피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다. 한 인물을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해 캐릭터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형식으로 인물의 면모를 쌓아나간다. 특정한 사건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게 되는 극의 구조에서도 다소 벗어난 느낌이다. 기홍의 자동차와 관련한 사건이 하나 주어지기는 하지만 이 상황이 영화 전체를 이끄는 동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영화의 선재물에 놓인 표현을 빌리자면, '이상한'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고민스럽다.

02.
기홍이라는 인물이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앞서 설명했던 것들이 그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행동만 보면 업계에서 오래 일해 온 경험 많은 목수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하고 목수 일로 넘어온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 정도 경력이면 다른 사람 밑에서 한창 일이나 배우고 있어야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기홍은 벌써 현장 작업에 필요한 장비들을 모두 구비해 자신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 인테리어 업자가 아니더라도 자신과 같은 목수들에게 바로 연락이 오기도 하고 자재도 많이 남길 수 있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한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부풀려져 있는 것 같다.

완전히 거짓인 부분도 있다. 디자인 일까지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들을 훔치고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디자인 작업도 자신이 직접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일감이 부족한데도 자신을 찾는 연락이 많이 온다는 허세도 부린다.

처음 만나는 여성에게 자신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의 외관 사진을 보여주며 잘 나가는 사업가처럼 이야기하는 건 조금 귀엽게 봐줘야 하는 걸까. 그의 남은 이야기를 모두 꺼내놓자면 아직도 차고 넘치지만 영화가 처음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괴인'처럼 보인다. 사람의 외면을 놓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만, 덥수룩한 수염과 곰처럼 한 덩치 하는 그의 겉모습을 모두 함께 놓고 보면 더욱.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런 그의 모습이 나쁘거나 밉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 인물에게서도 악의라고는 한 점도 보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 역시 불편하거나 격앙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 사소하지만 이상한 일 하나가 그에게 던져진다. 피아노 학원의 시공이 모두 끝난 어느 날, 자신의 작업 차량 천장이 움푹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차량의 블랙박스에서는 누군가 차 위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확인된다. 피아노 학원의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기간 중에 벌어진 일이며, 피아노 학원의 창문으로부터 누군가 도망쳐 나오다 벌어진 사건임이 확실하다. 다만 밤중에 일어난 일이다 보니 블랙박스의 영상 만으로는 범인을 특정하기가 어렵다.
 
 영화 <괴인> 스틸컷

영화 <괴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03.
일반적으로 영화의 사건이라는 것이 인물들 사이의 대립을 강화시키고 직접적인 극의 동력이 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의 사건은 관계를 시작하게 만드는 계기로만 작용한다. 기홍의 작업 차량에 일어난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에 영화가 인물의 면면을 소개하는 볼륨에 비해 너무 사소하고 보잘것없다. 이 사고로 영화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은 기홍을 중심으로 한 관계다. 여기에는 기존에 존재하던 관계가 해체되는 것,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 그리고 얕게 존재하던 관계가 두터워지는 것 등의 모든 양상이 포함된다.

가령, 이 사건으로 인해 피아노 학원 원장인 아영과의 관계는 완전히 해체된다. 범인이 피아노 학원의 창문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다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당일 저녁 술을 마신 기홍과 경준(최경준 분)이 그녀의 허락도 없이 학원 문을 열고 무단 침입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범인을 잡기 위해 다시 피아노 학원을 찾은 기홍과 정환(안주민 분)이 재차 무단 침입을 한 행동 역시 함께다. 반면 함께 범인을 쫓는 정환과의 관계는 두터워지는 쪽에 속한다. 사실 범인을 찾으러 가자는 제안 역시 직접적인 피해자인 기홍이 아닌 정환의 쪽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식으로 영화의 중심 사건처럼 보이던 차량 문제는 기홍을 중심으로 한 인물 관계를 완성하는 정도의 동력만을 제공한 뒤에 자신의 역할을 인물들 사이의 관계로 그 힘을 넘긴 뒤에 이탈한다. 지금까지 영화를 이끌어가던 유일한 힘이자 궁금증이었던 사건의 숨겨진 부분을 빠른 시점에서 영화 스스로 밝히면서다(범인의 존재는 함께 밝혀지지 않지만 영화의 중후반부를 지나며 이 지점 역시 완벽히 해소된다). 이 순간부터 영화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나 인물들의 행위는 그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뿐, 영화를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에너지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감독이 왜 처음부터 인물을 표현하고 그를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04.
영화가 중후반부를 지나면서 기홍을 중심으로 한 관계에 대해 깊이 이야기 시작할 때 핵심이 되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와 상황에 따라 또 해당 인물이 어느 집단 속에 놓이느냐에 따라 행동과 태도가 달라지는데, 이는 처음에 이야기했던 그의 여러 면모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조금 더 보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누구에게나 양면의 모습이 존재할 수 있고 다른 모양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집단 속에서 어떤 지위와 역할을 부여받느냐에 따라, 어떤 심리로 대상을 마주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아 무슨 얘기, 그냥 잘 지내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관계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쓰였던 것은 가족 안에 존재하는 기홍의 모습이었다. 이 영화에서 기홍의 가족이 등장하는 장면은 가장 짧은 관계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학원 원장인 아영과 함께 나오는 장면보다 더 짧다) 가장 가까운 대상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딱딱하다. 그 사이 경준과의 실랑이가 일어나는 장면이 놓여 있기는 하지만 그 만남조차 자주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부분을 고려하면 다른 핑계를 대기는 어렵다. 하지만 집주인이자 최근 가장 친하게 지내는 정환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어떤가? 낮술을 같이 하자는 제안과 오밤중에 피아노 학원을 가자는 말, 뜬금없이 테니스를 같이 치자는 권유까지 싫은 내색을 표하면서도 그의 모든 요청을 받아들이는 기홍이다.

인물에 대한 이와 같은 표현은 기홍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정환은 얼굴도 한번 본 적 없고,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문제의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이기쁨 분)는 궁금해하고 만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인 현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이는 현정 또한 마찬가지. 사랑할 자신은 없지만 좋은 아내는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로 정환의 결혼 제안을 승낙했다는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집에 세를 들어와 살고 있는 기홍에게 더 마음을 여는 듯한 모습으로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물론 이 작품에서 인물들에 대한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은 그 위에 가치 판단의 기준이 놓여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또한 '괴인'처럼 보이는 기홍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이 불편하거나 격앙되어 있지 않다고 했던 부분과 그 궤를 함께하는 부분이다.
 
 영화 <괴인> 스틸컷

영화 <괴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05.
특별한 사건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는 사건조차도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마는 이 이야기가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영화 특유의 묘한 긴장감과 호흡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처음 등장하는 기홍과 그를 설명하는 영화의 여러 구성들이 영화의 초반부에서 그를 '괴인'처럼 보이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홍보물의 '당신도 나처럼 이상하잖아요'라는 문장을 통해 이 작품을 '이상하다'는 단어에 가깝게 놓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 속 기홍을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그는 생각보다 훨씬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물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입체적인 면모도 없는 인물이고 특별한 기질을 갖고 있어 드라마틱하게 발산하지도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는 여러 지점에서의 다른 모습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이 업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느 정도의 벌이를 하는지를 말하는 과정에서 실제보다 훨씬 더 부풀려서 말하는 것은 아직 공고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스트레스와 자격지심으로 보기에 조금도 무리가 없고, 가까운 사람에게 무심하고 지금 당장 자신에게 효용이 되는 사람에게 더 잘하게 되는 것도 지극히 계산적인 인간의 한 면모일 뿐이다. 과연 우리에게 그의 일면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신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격을 갖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것은 아닐까?

괴인(怪人)과 범인(凡人)의 경계를 오가던 그를 완전히 평범한 사람으로 안착시키는 장면이 하나 있다. 자동차 수리 업체 사장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사장은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출받고 빛을 내면서까지 수입차를 타고 다니는 젊은 세대를 일갈한다.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욜로나 워라밸과 같은 단어에만 매달려 사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 과정에서 기홍을 가리켜 그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극소수라고 말하는 장면이 핵심이다. 이전의 장면까지 그의 모습을 지켜봐 온 관객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사장의 그 말에 뭔가 오해가 있다는 것을. 이 장면에서 감독은 극 중 두 인물(기홍, 사장)과 스크린 밖의 관객, 세 지점을 연결하여 그동안 벌여왔던 기홍의 있는 척과 허세, 직업이 주는 이미지 같은 것들이 소용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짚어낸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듯이, 그 역시 조금도 다를 것이 없으며 전체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괴인> 스틸컷

영화 <괴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06.
영화의 후반부에서 중요한 인물로 다뤄지는 하나에 대해 깊이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 역시 이 영화가 다른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지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로 다양한 면모를 가진 인물이고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을 보인다. 극에 등장하는 그 어떤 인물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이기에 그 변화를 알아차리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가 모두 끝나고 나면 관객들은 모두 한 쯤 '괴인'이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괴인'에 해당될 수 있는지, 또 우리는 이상한 사람으로 태어나 평범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 그런 점에서 영화의 끝자락에서 기홍을 대하는 현정의 모습에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거의 처음으로 기홍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 그녀는 자신의 첫인상이 이상하지 않았냐고 묻는 그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준다. 나는 사실 이 장면에서 그의 모습이 가장 수상하고 이상해 보였다. 이전까지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던 그의 또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평범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인정과 따뜻한 시선 안에서 '괴인'이 되는 것인지도.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영화의 '괴인'은 너무도 평범하고 또 보통인 사람에 불과하다.
영화 괴인 이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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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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