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3.
이 영화의 연출상 가장 큰 특징은 중심인물 계나가 서울을 떠나 뉴질랜드로 향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와 1년 전 아직 한국을 떠나기 직전의 시간이 교차되면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교차가 시작되고 난 이후 영화는 한국에서의 이야기와 뉴질랜드에서의 이야기에 의도적으로 대비의 장치들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따뜻한 분위기의 톤을 가진 한국을 떠난 이후의 삶과 차가운 분위기의 톤을 가진 한국을 떠나기 이전의 삶의 대비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북반구와 남반구라는 지리적 위치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계절적 요인도 영향을 주지만, 각각의 시간 속에서 계나가 느끼는 심리적 반향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야기의 마지막 자리에 놓이는 이미지에도 차이는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의 시퀀스가 끝나는 자리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뉴질랜드에서의 시퀀스 마지막에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놓이는 모습. 다만 이런 서로 다른 이미지의 교환이 의미하는 바가 단순히 공간의 의미적 분할에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교차 진행으로 이루어지는 양쪽의 이야기를 서로 더 밀접한 자리에, 계나의 심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시키는 부분이 있다. 현재의 계나(뉴질랜드)를 형성하고 있는 많은 부분이 과거의 계나(한국)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이 지금 말하는 이미지의 교환으로부터 획득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차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의 구성이 어느 한쪽을 절대적인 선(善)의 공간으로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 상의 계나가 마주하게 되는 뉴질랜드라는 공간 역시 처음에 뜻했던 대로 성공하고자 했던 바를 모두 쉽게 이룰 수 있는 곳으로는 그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곳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삶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여러 개의 직업을 전전해야 하고, 인종차별주의자를 만나게 되기도 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쌓이기도 하는 공간. 조금 옅은 농도이기는 하지만 어느 곳에나 그 삶을 짊어지기 위한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영화는 잊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다.
04.
"참고 기다리면서 이 악물고 살다 보면 결국 다 보상받게 되어 있어. 그게 인생이야."
엄마와 계나가 서로 마주 앉아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계나라는 인물이 어떤 계층을 대변하고 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이야기 위에서 왜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하는지 역시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장면이다. 시대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모두 끊임없이 일만 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담보해야 했던 부모 세대와 올지 안 올지 알 수도 없는 보상을 기다리며 현재의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현재 세대의 차이가 이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그런 세대 간의 간극 사이에서 여러 문제를 껴안고 있다.
극 중에서 등장하는 펭귄 파블로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 그리고 자신이 싫어하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이야기 속 펭귄 파블로의 모습은 그래서 계나의 모습과 온전히 닮아 있는 듯 보인다. 자신이 싫어하는 현재의 한국을 피하기 위해 다시 나아가고자 하는 그녀. 그래서일까? 두 번째 출국에 해당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원작과 다른 느낌이지만, 그 역시 끊임없이 자신의 환경을 바꾸고자 노력하고 끝까지 모험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고자 하는지 그 기저의 심리만큼은 유사한 결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