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완벽한 하루>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03.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들의 곁에서 모든 상황을 보조하는 의료진들이 다학제(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해결책을 마련하는 접근법) 진료를 통해 긴밀히 서로 협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성직자와 일반적인 생활을 돕는 이들까지 모두 포함된 다학제의 구성원들은 주기적인 회의를 거쳐 환자와 가족들 모두에 대한 상황과 의견을 교류한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상황을 한 사람이 모두 전담할 수는 없으니 그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돌아가면서 확인하고자 함이다. 물리적 치료와 심리적 안정을 위한 활동을 구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은 가늠하기 힘들다. 평소에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내려놓은 듯이, 이제는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나쁜 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환자들도 정작 특정한 상황을 마주하면 마음이 바뀌는 경우가 잦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음이 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여서다.
삶이라는 것이 포기한다고 해서 쉽게 포기되는 것도 아니고, 죽음 또한 오롯이 마주한다고 해서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신체적 관리만큼이나 심리적 관리가 중요하게 생각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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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다음으로 가장 어려움에 놓이는 것은 역시 보호자다. 환자의 보호자로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들은 호스피스 병동을 바로 찾지 않는다. 그 의미는 보호자들이 이곳에 오기까지 오랜 시간을 환자를 돌보는 역할을 하며 지내왔다는 뜻이다. '보호자 소진'이라는 말은 그런 보호자들의 상태를 보여주는, 현실적이면서도 안타까운 용어다. 물론 보호자들이 소진돼 환자들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오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보다는 말기암 환자들의 더 나아질 수 없는 상태가 계기가 된다.
말기암 환자는 치료를 받아도 고통만 다시 시작될 뿐인 경우가 많다. 환자의 가족들도 방법만 있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지만, 결국 반복되는 고통의 과정을 지켜볼 수 없어 호스피스 병동을 선택하게 된다.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서다.
무너진 마음으로 인한 비명 소리,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 먹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소리 등 암환자들의 절규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아픔이다. 되레 호스피스 병동에서 완화 관리를 받는 동안 환자와 가족들은 전에 하지 못했던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환자에게는 물론 보호자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시간이다.
▲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완벽한 하루> 스틸컷EBS국제다큐영화제
05.
환자들이 겪는 고통이나 의료진과 보호자가 겪는 어려움 말고도 부족한 인프라나 복지로 인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 힘겹게 여겨지는 때도 있다. 현재 환자가 병동형 호스피스 한 곳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최대 60일로 설정돼 있다. 환자가 건강한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집중적인 케어를 계속해서 받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에는 약물로 통증 조절이 가능하기에 병원에서 퇴원을 권유받게 되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환자들도 존재한다. 이후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다.
현실적으로 보호자가 없고 지지가 되지 않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 문제는 결코 쉽지 않다. 제한된 의료 자원을 최대한 동등하게 분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현재 퇴원을 권유받는 환자들 역시 결국 말기 암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냉정하게 굴기만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호스피스 병동의 원장은 아이를 출산할 때 여러 혜택이 주어지듯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갈 때도 임종 돌봄을 하는 가족에 대한 사회적 지지나 복지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말기암의 특성상 어쨌든 남은 날들보다는 지금이, 오늘이 가장 좋은 때이기에 그 이후의 예후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06.
이 작품의 마지막에는 러닝타임 내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환자들의 임종에 대한 문구가 놓인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내 웃으며 말을 걸어오던 그들의 모습이 잔상처럼 흩날리듯 떠오르는 지점이다. 아마도 그들의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직접 관계를 맺어왔던 호스피스 병동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큰 잔상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환자들에게는 마지막 기억의 공간이 될지도 모르는 이곳을 사진처럼 남게 되는 기억 하나만 만들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따뜻함과는 별개로 뜨겁게 느껴진다.
다큐멘터리 <완벽한 하루>는 변화를 촉구하거나 대중을 깨우치고자 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저 인생의 한 지점에 다다른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평소 마음을 두지 못했던 자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꽤 커다란 울림을 전달한다. 우리 사회가 생의 마지막 자락에 선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게 만들고, 그런 이들에게 장소를 할애하고 돌보는 일의 가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어쩌면 호스피스의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는 그들 모두가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었으며, 마지막까지 함께 책임질 것이라는 단단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돌봄으로 시작된 우리 모두의 마지막이 다시 돌봄으로 끝나는 일이 조금도 이상하지는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 작품의 마지막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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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