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왓챠,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티빙, 웨이브, 애플TV플러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범람하는 시대입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볼까 막막한 분들을 위해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추천하는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 영화 포스터

▲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 영화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젊은 여성 브린(케이틀린 데버 분)은 마을에서 동떨어진 곳에서 혼자 지낸다. 이따금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은 어떤 이유인지 그녀를 적대시한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브린은 대부분 시간을 집에 틀어박혀 수집한 인형의 집을 보거나 죽은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보낸다. 어느 날, 아래층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이 깬 브린은 자기 집에 침입한 외계인과 맞닥뜨린다. 신체를 빼앗으려는 괴생명체에 맞서 사투를 벌이던 브린은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의 지우고 싶은 과거와 마주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서비스 중인 영화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2023)는 작은 마을을 공격하여 사람들의 신체를 강탈하려는 외계인(들)에 맞서는 여성을 그린 SF 호러물이다. 각본과 연출은 <제인 갓 어 건>(2014), <인서전트>(2015), <사탄의 베이비시터>(2017), <러브 앤 몬스터>(2020), <언더 워터>(2020) 등 다양한 장르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미국의 학교 총기 사고를 코믹 호러로 은유한 <터지기 전에>(2020)로 감독에 데뷔한 브라이언 더필드가 맡았다.

미국은 1950년대에 들어서며 UFO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냉전 시대의 두려움이 사회에 만연했다. 할리우드는 시대에 발맞춰 <괴물>(1951), <지구 최후의 날>(1951), <우주전쟁>(1953), <화성으로부터의 침략자>(1953), <신체강탈자의 침입>(1956) 같은 다양한 외계인 침공 영화를 선보이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고전과 참신함 사이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 영화의 한 장면

▲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는 고전적인 외계인 침공 영화들이 구축한 침공과 강탈의 설정을 따르되 외계인의 모습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하는 외계인이나 UFO의 모습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 괴생명체의 정체를 마지막에 보여주었던 <싸인>(2002)이나 독특한 UFO가 나온 <놉>(2022)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굳이 정의하자면 <나홀로 집에>(1990)를 SF 호러로 변주한 느낌이다.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의 가장 큰 특징은 '말하는' 영화가 아닌, '보여주는' 영화란 점이다. 영화는 인물의 대화, 내면의 독백, 도움을 주는 설명을 일절 하지 않는다. 대부분 장면에 주인공 브린은 등장하지만, 러닝 타임을 통틀어 대사는 2개의 짧은 문장(총 5단어)에 불과하다. 다른 등장인물들의 대사 역시 없다시피 한다. 지나치리만치 대사가 많고 모든 걸 친절히 설명하는 요즘 영화들과 결을 달리 하는 파격적인 연출이다.

영화의 '침묵'은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를 연상케 한다. 소리에 반응하는 외계생명체를 다룬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 침묵은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규칙이었다. 반면에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의 침묵은 인물의 슬픔과 고립된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장법에 가깝다. 말이 지워진 영화는 액자에 담긴 사진, 노트에 적힌 글, 집 안에 놓인 인형의 집, 브린의 표정, 카메라의 움직임, 공간과 조명의 활용 등 화면을 통해 보이는 것만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물의 감정을 표현한다.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 영화의 한 장면

▲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의 대다수 장면을 책임졌으나 다른 배우들의 도움이나 제대로 된 대사 한 줄 없이, 심지어 혼잣말도 부재한 채로 1인극을 이끌어간다는 건 배우에게 엄청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북스마트>(2019)와 넷플릭스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2019)로 친숙한 케이틀린 데버는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에서 다양한 순간에서 브린이 느끼는 단순한(주로 생존에 해당), 때론 복잡한(대부분 죄책감과 관련) 감정을 대사 없이 표정과 몸짓만으로 훌륭히 소화한다. 그녀는 기획에 참여했을 정도로 작품에 열의가 대단하다. 아마도 케이틀린 데버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본다.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는 <더 몬스터>(2016), <호스틸>(2017), <이스케이프 큐브>(2020), <아무도 없다>(2020) 등 고립된 상황에서 미지의 존재 또는 정체 모를 남성에게 공격받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아 과거나 억압을 극복하는 영화들의 계보에 속한다. 브린이 외계인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사투는 곧 그녀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외계인의 공격은 상징적으로 문자 그대로 외계인의 공격일 뿐만 아니라 브린이 느끼는 죄책감과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형상화한, 달리 말하면 그녀의 삶에 대한 은유로 읽어야 한다. 

의외의 코믹함

제목도 중의적이긴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브린이 처한 실제 상황으로 본다면 외부의 공격로부터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란 말이다. 브린이 처한 심리적 상황으로 풀이하면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 그러니까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스스로 맞서야 한다'는 조언이 된다. 브린이 인형의 집을 좋아한다는 설정엔 지금과는 다른 이상향을 소원한다는 의미와 어린 시절(과거 혹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 동시에 투영되어 있다.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 영화의 한 장면

▲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는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관객에게 주는 정보가 최소한에 그쳐 외계인이 어떤 목적으로 침공했는지, 그들이 왜 브린에게 집착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알아서 짐작할 뿐이다. 결말도 각자의 몫으로 남겨 해피 엔딩인지, 새드 엔딩인지 모호하다. 미국의 소셜 커뮤니티 '레딧'에선 엔딩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중이다.

할리우드는 2022년에 <펄>, <스마일>, <바바리안>이란 걸출한 호러 영화가 내놓았다. 2023년엔 <메간>, <이블 데드 라이즈>, <톡 투 미> 그리고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로 장르의 굵직한 물길이 이어지고 있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을지라도 장르의 새로운 면을 개척한 수작임은 분명하다. 장르의 익숙한 것들을 모아 탁월한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활용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결과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말은 다소 이상할지라도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강렬한 영화적 체험이자 흥미로운 캐릭터 탐구이기에 강력히 추천한다. 게다가 상당히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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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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