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파이어>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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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파이어>는 동명의 단편 영화를 장편 영화로 확장했다. 러닝타임은 20분에서 82분으로 늘어났지만, 줄거리는 단편 영화와 마찬가지로 단순한기 짝이 없다. 몇 명의 여성이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미치광이 광대 아트 더 클라운으로부터 도망친다는 내용이 전부다. 캐릭터 개발도, 살인마의 동기도, 재미있는 대사도 전무하다. 하위 텍스트나 사회적 논평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영화는 오직 1970~1980년대 슬래셔 무비의 형태로 순수한 악을 탐구할 뿐이다. 그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여성, 총을 쏘지 않는 살인마 등 과거 슬래셔 무비의 전통을 깨버리는 파격을 선보인다.
고어 수위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씨즌에 올라온 영상은 82분으로 IMDB에 표기한 오리지널 러닝타임 86분과 4분가량 차이가 난다. 그러나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톱으로 신체를 반으로 절단하고 목을 치고 피부를 벗기고 얼굴을 뜯어먹는 등 나올 장면은 다 나온다. 단지 삭제판이라 직접적인 묘사가 적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영등위의 심의를 통과한 작품들 가운데 고어 수위로 본다면 <쏘우> 시리즈, <호스텔> 시리즈와 함께 최상위 레벨에 해당하는 건 분명하다. 지금도 충분히 폭력적이기에 굳이 무삭제판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은 안 든다.
하얀 분칠로 상징되는 독특한 메이크업, 색깔이 있는 가발, 커다란 신발, 기이한 의상을 갖춘 광대로 분장한 사람이나 그와 비슷한 그림을 보면 알 수 없는 무서움을 느끼는 현상을 전문 용어로 '광대공포증(Coulrophobia)'이라 일컫는다. 그만큼 광대에 두려움을 갖는 사람이 많다는 소리다. 당연히 많은 영화에서 '광대'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존재로 그려지곤 했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옮긴 <그것> 시리즈의 광대 '페니와이즈'가 대표적인 사례다.
<할로윈>에서 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의 어릴 적 광대 복장,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 <폴터가이스트>(1982)의 광대 인형도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 광대들이다. 이밖에도 <여대생 기숙사>(1983), <만우절>(1986), <외계인 삐에로>(1986), <클라운하우스>(1989), <살인마 가족> 시리즈, <드라이브 쓰루>(2007), <100 티어스>(2007), <킬러 광대>(2012), <피의 삐에로>(2015), <클라운 타운>(2016), <클라운 돌>(2019), <킬 조이> 시리즈 등 살인마 광대가 나오는 영화는 하위 장르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숫자가 엄청나다.
▲<테리파이어>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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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살인마 광대들 사이에서도 <테리파이어>의 아트 더 클라운은 단연 돋보인다. 단편 영화부터 시작해 장편 영화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자신만의 호러 아이콘을 만들려는 감독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리메이크와 리부트가 판치는 시대에 현대 공포 영화의 새로운 슬래셔 무비 아이콘을 만나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다.
팬터마임을 전문으로 배운 데이빗 하워드 쏜턴이 분한 아트 더 클라운은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나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부히스처럼 대사라곤 한 마디도 없기에 불안과 위협의 분위기를 더한다. 데이빗 하워드 쏜턴은 오로지 눈빛과 표정, 몸짓만으로 미친 살인마를 보여줄 뿐이다. 그의 연기는 마치 연극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여기에 메이크업 아티스트 출신인 데미안 리온 감독은 자신의 장점을 아낌없이 발휘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트 더 클라운의 소름 끼치는 분장은 기괴한 팬터마임과 만나 오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한편으로 아트 더 클라운은 호러 장르의 상징적인 아이콘들을 결합한 결과물 같기도 하다.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부히스, <그것> 시리즈의 페니 와이즈를 기본으로 하여 초현실적인 능력과 괴상한 장난기는 <나이트메어> 시리즈의 프레디 크루거를 덧붙인 형상이다. 빌리 인형처럼 세발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장면과 고문 포르노 장르에 가까운 고어함, 그리고 직쏘처럼 게임을 즐기는 측면에선 <쏘우> 시리즈에 대한 사랑도 엿보인다.
▲<테리파이어>영화의 한 장면JBS
1970~1990년대엔 슬래셔 무비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컨저링> 시리즈나 은유로 가득한 <겟 아웃>(2017) 같은 호러물이 대중에게 사랑받는 시대다. <13일의 금요일>(2009), <나이트메어>(2010), <사탄의 인형>(2019) 등 과거 슬래셔 무비를 부활시키는 리부트는 실패로 돌아갔고, <할로윈> 시리즈만이 극장에서 개봉하는 슬래셔 무비로 살아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10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놀라운 고어 효과, 매력적인 살인마 캐릭터, 오래된 슬래셔 무비에 대한 애정을 담은 <테리파이어>는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슬래셔 무비와 고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할로윈: 살인영상>과 <테리파이어>는 시간을 들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참고로 공포 영화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제작한 속편 <테리파이어 2>는 북미에서 지난 10월 6일 개봉하여 2주 연속으로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로튼토마토의 신선도 87%, 메타크리틱의 리뷰 점수 66점으로 준수한 편이다. 호러 영화론 이례적으로 러닝타임이 140분 가까이 된다는 사실도 놀랍다. 국내 극장 개봉은 분명 힘들 것이고 영화제 상영 또는 다운로드 서비스로 <테리파이어 2>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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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