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서는 촬영이 끝난 후 1년 이상 개봉을 하지 못하는 영화들을 흔히 '창고영화'라고 부른다. 지난 여름 514만 관객을 동원하며 여름 극장가의 최종승자가 된 류승완 감독의 <밀수>는 2021년 10월에 촬영을 마치고 2022년에 개봉할 예정이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전후에 촬영을 마치고 개봉이 밀린 한국영화가 워낙 많아서 2023년 여름으로 1년 가까이 개봉시기가 밀리고 말았다.

반면에 특정시즌을 노리고 제작에 착수한 영화들은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기간을 최소화하고 곧바로 극장에 걸리기도 한다. 지난 21일 개봉한 <가문의 영광>의 6번째 시리즈 <가문의 영광 리턴즈>가 대표적이다.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지난 7월 초 촬영을 시작해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28회차 만에 촬영을 마치고 다시 한 달이 지난 9월에 개봉했다. 손익분기점(100만)이 높지 않은 만큼 추석연휴의 관객몰이를 노리고 만들어진 영화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추석특수'를 노리고 급하게 영화를 만들 만큼 그 위상이 다소 낮아졌지만 1편부터 4편까지는 무려 1660만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시리즈 영화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2005년 추석 시즌에 개봉했던 2편 <가문의 위기>는 주요배우들이 모두 교체되고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었음에도 오히려 전편을 능가하는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극장가에 이변을 일으켰다.
 
 <가문의 위기>는 출연배우와 세계관이 모두 바뀌었음에도 전편을 능가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가문의 위기>는 출연배우와 세계관이 모두 바뀌었음에도 전편을 능가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주)쇼박스
 
속편에서 주인공이 바뀐 영화들

흔히 극장가에서 영화 한 편이 흥행에 성공하면 제작사에서는 속편제작을 고려하게 된다. 하지만 속편 제작이 현실로 이어지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흥행으로 주연배우들과 감독의 인지도와 몸값이 올라가면 속편에서 배우와 제작진을 그대로 캐스팅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전작에 출연한 배우와 감독의 캐스팅에 실패할 경우 속편 제작이 무산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적지 않은 영화들이 주인공을 바꿔 속편을 제작하기도 한다.

지난 1994년에 개봉한 얀 드 봉 감독, 키아누 리브스, 산드라 블록 주연의 범죄액션 스릴러 <스피드>는 3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3억5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리며 크게 성공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얀 드 봉 감독은 <스피드>의 속편을 기획했지만 1편의 주역 키아누 리브스가 <체인 리액션> 촬영 때문에 속편 출연을 고사했다. 결국 제이슨 패트리가 새로운 남자 주인공으로 발탁된 <스피드2>는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큰 실패를 맛봤다.

1993년 안성기와 박중훈을 앞세워 서울관객 86만을 동원했던 <투캅스> 시리즈는 주인공을 한 명씩 교체하면서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갔다. 1996년에 개봉한 <투캅스2>에서는 경찰을 그만두고 갈비집을 차린다는 설정의 조반장(안성기 분) 대신 김보성이 박중훈의 새로운 파트너로 투입됐다. 박중훈이 할리우드 영화 <아메리칸 드래곤> 출연을 위해 시리즈에서 빠진 <투캅스3>에서는 신인 여성배우 권민중이 김보성의 새 파트너로 가세했다.

윤제균 감독이 연출한 1편 <두사부일체>로 서울관객 122만, 2006년에 개봉한 속편 <투사부일체>로 전국 610만 관객을 동원한 <두사부일체>시리즈는 2007년 개봉한 3편 <상사부일체>에서 배우들을 전면 교체했다. 하지만 세계관 변화 없이 이성재가 계두식, 고 김성민이 김상두, 손창민이 상중을 연기한 <상사부일체>는 전국 94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 실패했고 <상사부일체>는 오늘날 이성재의 흑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 2018년 김다미라는 걸출한 신인을 배출했던 박훈정 감독의 액션 스릴러 <마녀>는 4년이 지난 2022년 속편 <마녀2>가 개봉했다. 하지만 <마녀2>는 투자 및 배급을 맡았던 워너 브러더스가 철수를 결정한 후 제작에 난항을 겪었고 결국 주인공 신시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배우가 교체됐다. 2022년 6월에 개봉한 <마녀2>는 전국 2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지만 세계관이 더욱 커지게 될 3편의 제작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신현준의 두 번째 전성기를 열게 해준 영화
 
 장인재는 현직검사와 교재하면서 낮에는 사회사업가,밤에는 폭력조직의 두목으로 이중생활을 이어갔다.
장인재는 현직검사와 교재하면서 낮에는 사회사업가,밤에는 폭력조직의 두목으로 이중생활을 이어갔다.(주)쇼박스
 
지난 2002년 추석시즌에 개봉한 <가문의 영광>은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주류였던 조폭 코미디에 멜로 요소와 가족애를 적절히 버무린 이야기로 전국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속편제작을 앞두고 정준호와 김정은, 유동근 등 전편의 주역들이 대거 하차하면서 스토리의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결국 <가문의 위기>는 신현준과 김원희, 김수미, 탁재훈 등을 캐스팅해 전편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의 속편을 제작했다. 

<가문의 위기>는 유서 깊은(?) 조직폭력배 가문 백호파의 장남 장인재(신현준 분)가 현직 강력계검사 김진경(김원희 분)과 사랑에 빠지면서 개과천선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 내용을 코믹하게 담은 영화다. 

<가문의 위기>는 전작 <가문의 영광>과는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1편을 본 관객들을 위한 장치도 많이 깔아 놓았다. <가문의 영광>의 '쓰리제이파'처럼 <가문의 위기>의 백호파 역시 전남 여수를 기반으로 하는 폭력조직이고 김정은과 김원희가 맡은 여주인공 이름도 '진경'으로 같다(물론 김정은은 '장진경'이었다). <가문의 영광>의 명장면이었던 김정은이 부른 <나 항상 그대를>은 <가문의 위기>에서 공형진이 코믹하게 패러디했다.
 
신현준은 2000년대 초반 <블루>와 <페이스>, <달마야,서울가자>가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하며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신현준은 '절친' 정준호가 출연을 고사한 <가문>시리즈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합류해 전편을 능가하는 흥행을 견인하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신현준이 출연한 세 편의 <가문> 시리즈는 모두 2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2006년에는 신현준의 '인생영화'로 꼽히는 <맨발의 기봉이>에서 열연을 펼쳤다.

김원희의 커리어 최고 흥행영화
 
 김원희가 연기한 김진경은 검사일을 그만두고 남자친구인 장인재의 변호를 맡았다.
김원희가 연기한 김진경은 검사일을 그만두고 남자친구인 장인재의 변호를 맡았다.(주)쇼박스
 
1992년 MBC 21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김원희는 2000년대 들어서 연기활동보다 MC로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렇게 연기활동이 뜸한 김원희에게 <가문의 위기>는 그녀의 영화 커리어에서 최고의 흥행성적을 올린 영화다. 2006년 <가문의 부활>까지 출연한 김원희는 2011년 <가문의 수난>에서는 히로인 자리를 현영에게 넘기고 시리즈에서 하차했다.

최근 유튜브 채널 <노빠꾸 탁재훈>을 통해 130만 구독자를 거느리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탁재훈은 2004년 솔로 앨범 S.Papa 앨범을 발표한 후 2005년 <가문의 위기>를 통해 본격적인 배우활동을 시작했다. 탁재훈은 <가문의 위기> 출연을 계기로 2006년 <맨발의 기봉이>에서도 기봉이를 괴롭히는 이장 아들로 출연하며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탁재훈은 21일에 개봉한 <가문의 영광 리턴즈>에서도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3년과 2004년 <코미디 하우스>의 <노브레인 서바이버>를 통해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은 정준하는 2004년 한 해에만 <그 놈은 멋있었다>,<누구나 비밀은 있다>,<슈퍼스타 감사용>,<키다리 아저씨>까지 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리고 2005년에는 <가문의 위기>에서 백호파 조직원 종면을 연기하며 코믹한 이미지를 이어갔다. 

<가문의 위기>는 코미디 영화답게 익숙한 얼굴들이 카메오로 대거 출연했다. 전편 <가문의 영광>의 주인공인 정준호는 사회사업단체 사랑나누리의 대표로 출연했고 김효진은 인재의 회상장면에서 카페 종업원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6년 후 <가문의 수난>에서 주연급으로 분량이 대폭 늘어나는 현영은 영화 초반 인재와 선을 보는 여성으로,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안성댁'으로 주가를 올리던 박희진은 비뇨기과 의사로 출연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가문의 위기 정용기 감독 신현준 김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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