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봄> 스틸컷
오리언 픽처스
인간다움을 짓밟는 시대에 대하여
테레사는 행동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출장을 마치고 돌아간 토마스를 찾아 홀로 프라하로 떠난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테레사를 위해 토마스는 사비나에게 그녀를 도와달라 말하고, 사비나의 도움을 얻어 테레사는 전업 사진작가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씩 토마스와 두 여성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 간다.
영화는 더없이 자유롭고 솔직한 청춘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리는 한편, 당대 체코에 밀어닥친 역사의 물결이 이들의 일상을, 나아가 영혼을 어떻게 침탈하는지를 그린다. 체코는, 또 프라하는 더는 전과 같은 도시일 수 없고, 그곳에서 사는 이들 또한 전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다. 테레사와 사비나, 토마스의 삶 또한 그러해서 이들은 뿌리 채로 뽑혀나가 정처 없이 떠돌거나 짓밟히고 뭉개져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일류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필립 카우프만은 <프라하의 봄>을 영화에 맞게 변형하여 새로운 멋과 맛을 냈다. 원작의 서사를 따르면서도 영상만이 가질 수 있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무거움이며 가벼움, 키치 등에 대한 상징, 또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시각과 태도 등은 덜어내고 인물이 맞이하는 상황의 부조리함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이를테면 토마스의 차를 뒤지고 여권을 뺏어드는 소련 병사의 이미지는 그들이 도시를 떠나기 전으로부터 시대가 얼마만큼 냉엄하게 변하였는지를 글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내보이는 것이다. 뿐인가. 결말부 집으로 돌아오는 토마스와 테레사의 모습은 그들이 맞는 비극적 운명이 과연 비극이었는가 하는 물음을 관객에게 되묻도록 한다.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은 소설과 같이 영화는 소설과 다른 밀도와 질량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나는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