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팔부: 교봉전 포스터
천룡팔부: 교봉전포스터 (주)팝엔터테인먼트
 
무협의 거장 김용의 대작 <천룡팔부>가 영화로 나왔다. 이소룡, 성룡, 이연걸의 시대 다음은 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자단의 영화다. 견자단이 직접 제작하고 연출이며 주연까지 맡은 이 영화의 제목은 <천룡팔부: 교봉전>이다.
 
<천룡팔부>는 김용의 작품 가운데서도 규모가 큰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북송과 요나라의 분쟁기인 11세기를 배경으로, 서하, 대리국, 토번, 여진, 연나라 등이 두루 등장하는 호쾌한 작품이다.

김용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소위 <영웅문> 3부작으로 불리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이지만 소설적 완성도로 치면 <녹정기>며 <소오강호>, 그리고 <천룡팔부>가 더 위라는 무협애호가들의 평가가 끊이지 않아 왔다. 마침내 수차례 영화화된 김용의 다른 작품들에 이어 <천룡팔부>까지 견자단의 작품으로 개봉되기에 이른 것이다.
 
방대한 설정 탓에 소설은 어느 한 인물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그렇듯 <천룡팔부>엔 소봉, 허죽, 단예가 의형제를 맺는데, 이번 영화는 이중 첫째인 소봉의 이야기다. 교봉은 소봉으로 개칭되기 전 김용이 처음 사용한 인물의 이름이다.
 
천룡팔부: 교봉전 스틸컷
천룡팔부: 교봉전스틸컷 (주)팝엔터테인먼트
 
쫓겨난 개방 방주 교봉의 이야기
 
영화는 송나라 여염집 문 앞에 버려진 한 아이로부터 시작한다. 아이를 주운 부부는 마침 아이가 없어 그를 거두기로 하고 제 아이처럼 아끼며 기른다. 어릴 적부터 특출난 몸놀림을 지녔던 아이는 전국적 조직망을 가진 거지들의 모임 개방에 입문해 형제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개방의 젊은 방주가 되니 그의 이름이 교봉(견자단 분)이다.
 
영화는 그가 모함을 쓰고 방주자리에서 쫓겨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 교봉이 저를 내쫓고 위기에 빠뜨린 이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 영화의 전반을 이루며, 그의 정체를 알고 복수를 하는 이야기가 후반이 된다. 제목 그대로 <천룡팔부> 가운데 교봉의 이야기만 따로 떼어낸 것으로, 다른 주인공들은 살짝 모습을 비추거나 아예 나오지 않거나 한다. 이번 작품이 성공할 경우 후속편을 연달아 내겠다는 견자단의 야심이 그대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야기는 무협에 정통한 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장대하고 복잡한 이야기가 끝이 없지만 두 시간을 조금 넘는 영화의 특성상 교봉의 이야기 중에서도 잘라낸 대목이 적지 않다. 선택과 집중은 장편소설의 영화화에 필수적 요건이고,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천룡팔부: 교봉전 스틸컷
천룡팔부: 교봉전스틸컷 (주)팝엔터테인먼트
 
견자단의 호쾌한 액션, 그러나
 
영화의 승부수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가 아니다. 무협 그 자체다. 당대 홍콩 최고의 액션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견자단이 몸을 내던져 액션을 소화한다. 간결하면서도 절도 있는 동작이 전 시대 거장들의 액션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개방 방주의 독문무공인 항룡이십사장을 펼치는 장면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호쾌한 감상을 일으킨다. 철기궁수대를 맞이하여 단신으로 혈전을 펼치는 신은 홍콩 액션의 멋을 분명하게 일깨운다.
 
그러나 영화엔 아쉬운 점도 적잖다. 무엇보다 <천룡팔부>의 다채로운 줄거리를 교봉이란 한 인물의 이야기로 요약하는 과정에서 그 전개가 다소 밋밋해진 점이 치명적이다. 누군지 모를 악당에게 귀한 것들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그를 추적한다는 전개는 이 영화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있는 흔한 설정인 것이다. 막상 드러나는 음모 역시 시시하고 무협의 세계와 현실의 정치구도가 얽히는 대목 역시 급작스럽다. 건질 건 결국 액션뿐으로, 김용의 원작을 고쳐 서사를 영화에 적합하게 수정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왕정에게 총감독이란 불분명한 직책을 맡기고 제가 직접 연출에 개입해 감독을 한 견자단의 선택도 실망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액션에 한해서는 흠잡을 구석이 많지 않으나 오로지 액션뿐이라면 두 시간을 채우기 버거운 탓이다.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견자단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고 말이다.
 
천룡팔부: 교봉전 스틸컷
천룡팔부: 교봉전스틸컷 (주)팝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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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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