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에게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2023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명단이 베일을 벗었다. 조범현 기술위원장과 이강철 국가대표팀 감독은 1월 4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3월 열리는 5회 WBC에 출전한 대표팀 최종 30인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번 대표팀의 구성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국가대표 선발의 뉴노멀(New Normal)을 고민했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신구조화를 통하여 최상의 선수구성을 추진하면서 '순혈주의 탈피'로 유연한 개방성을 드러낸 반면, 한편으로는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논란이 있는 선수'는 과감히 배제하는 모습을 통하여 자격 기준에 대한 단호한 원칙도 동시에 보여줬다.
 
포지션별로 투수가 15명, 포수 2명, 내야수 8명, 외야수 5명이다. 투수 부문은 고우석(LG), 소형준(kt), 이용찬(NC), 원태인(삼성), 김원중-박세웅(이하 롯데), 곽빈-정철원(이하 두산) 총 8명이 우완이고, 정우영(LG)과 고영표(kt) 2명은 사이드암이다. 좌완은 김광현(SSG), 김윤식(LG), 양현종-이의리(이하 KIA), 구창모(NC)가 발탁됐다.
 
투수진의 기둥은 여전히 김광현과 양현종이다. 두 선수 모두 20대 초반부터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좌완선발 투수로 오랫동안 활약했고 다수의 국가대표와 메이저리그까지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광현과 양현종이 함께 태극마크를 단 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에 이어 세 번째이자 4년 만이다. 나이를 감안할 때 이번 WBC가 두 선수에게 마지막 태극마크가 될 가능성도 높다.
 
이강철 감독은 실력과 경험을 갖춘 두 선수에게 젊은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며 "중요할 때 마운드를 지킬 것"이라고 언급했다. 기본적으로 선발 자원으로 분류되지만 투구수제한(1라운드 65개, 2라운드 80개, 준결승과 결승 95개)이 있는 WBC에서는 굳이 보직에 얽매이지 않고 두 선수를 승부처에서 두 번째 투수 혹은 마무리로도 유연하게 활용할수 있음을 암시한 대목이다.
 
젊은 투수들도 모두 현재 KBO리그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선수들로, 대체로 납득할만한 선발이라는 평가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이어 다시 태극마크를 달게 된 고영표와 이의리 원태인, 고우석, 박세웅 등이 국제대회에서 얼마나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지가 관건이다. 첫 메이저대회에 출전하는 구창모와 소형준이 WBC에서도 KBO리그에서 만큼의 위력을 발휘할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경험과 안정감이 중시되는 필요한 포수는 베테랑 양의지(두산)와 이지영(키움)이 나선다. 여전히 현역 최고 포수로 꼽히는 양의지가 주전으로 나설 것이 유력하지만 리그에서의 활약에 비하여 국제대회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는 게 걱정거리다. 이지영은 지난 시즌 가을야구를 통해 PS 15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하며 키움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기여하면서, 타격능력이 강점인 박동원(LG)과의 국가대표 발탁 경쟁에서 승리했다.
 
내야진은 이름값에서 대표팀 각 포지션을 통틀어 가장 화려하다. 김하성(샌디에이고)과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최지만(피츠버그)의 메이저리거 3인방이 각각 유격수-2루수-1루를 책임진다. 여기에 국내 최고의 거포인 박병호(KT)와 최정(SSG)이 있고, 김혜성(키움), 오지환(LG), 강백호(KT)가 뒤를 받친다.
 
가장 관심을 끄는 선수는 역시 에드먼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인 에드먼은, 메이저리그 4시즌 통산 타율 0.269에 40홈런 175타점 274득점 79도루를 기록했고 2021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내셔널리그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을 정도로 탁월한 수비력을 자랑한다.
 
WBC는 해당 국적이 아니더라도 부모 혹은 조부모 혈통에 따라 출전국을 결정할 수 있다. 에드먼은 앞서 최근 KBO 사무국에 한국 대표로 WBC에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순혈주의를 유지해 온 국가대표팀에 해외 국적 선수가 발탁된 것은 에드먼이 처음이다. 해외파의 비중이 예년보다 줄어든 이번 대표팀에서 몇 안되는 메이저리거인 에드먼의 합류는 천군만마와도 같다. 김하성과 함께 구축할 키스톤콤비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기대되고 있다.
 
불안요소는 최지만의 합류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지만 지난 시즌을 마치고 트레이드 돼 팀을 옮겼고 부상으로 팔꿈치 수술까지 받았다. WBC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최지만의 새 소속팀인 피츠버그의 최종 동의가 필요한데 아직 확답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만일 최지만의 합류가 최종 불발될 경우에는 대표팀 타선의 무게감이 크게 반감될 수 있다.
 
현재 대표팀은 1루 자원만 박병호, 강백호, 최지만 등 세 명이나 되는데 모두 몸상태에 의문부호가 있다는 게 걱정거리다. 반면 3루는 베테랑인 최정 한 명을 제외하면 전문 3루수가 없다. 허경민의 부상 제외가 아쉬운 대목이다. 유사시에는 멀티플레이어인 김하성이나 에드먼을 3루로 돌리고. 수비가 좋은 오지환이나 김혜성을 이들의 자리에 대신 투입하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전원 국내파로 구성된 외야는 지난 시즌 KBO리그 MVP 이정후와 국제대회에서 가장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 베테랑 김현수, 파괴력있는 거포 나성범 등이 중심을 이룬 가운데, 수비와 작전수행능력이 뛰어난 박해민과 박건우가 백업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메이저리그 도전을 노리고 있는 이정후는 이번 WBC가 자신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증명할 중요한 쇼케이스이기도 하다.
 
이번 대표팀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안우진은 결국 명단에서 탈락했다. 안우진은 올시즌 국내 최고의 선발투수로 성장하며 2022시즌 15승 8패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 2.11 탈삼진 224개로 두 부문 타이틀과 투수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다. 하지만 그의 과거 학교폭력 이슈가 끝내 발목을 잡았다.
 
안우진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3년 자격정지 중징계를 받으며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상 영구히 국가대표로 뽑힐 수 없는 상태였다. 이로써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에는 출전할 수 없지만, WBC만큼은 대한체육회나 국가올림픽위원회(NOC) 규정에 구애받지 않는 대회이기에 안우진을 선발하려했다면 할수도 있었다. 국제대회에서 어떻게든 최상의 전력을 꾸려야하는 대표팀으로서는 안우진같이 실력이 검증된 선수를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은 고심끝에 안우진의 발탁을 포기했다. 최근 안우진의 국가대표 선발 자격과 관련하여 학폭 이슈가 다시 재조명되기도 했지만, 여론의 반응이 안우진에게 부정적이었다는 것을 무시할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우진은 학폭 이슈를 적극적으로 해명했지만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보다는 뒤늦은 자기 변명과 사실관계 부정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
 
조범현 기술위원장은 안우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선수 선발 기준은 기량과 함께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성, 책임감, 자긍심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선발했다"며 의미심장한 언급으로 답을 대신했다. 우회적이었지만 앞으로 국가대표의 자격을 논하는데 있어서 단지 야구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인성과 사회적 평가도 반영된다는 것을 암시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야구보다 중요한 가치들이 많이 있다. 국가대표의 자격 역시 그 중 하나다. 예전에는 야구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인식이 통하던 시절도 있었다. 애석하게도 야구대표팀은 그동안 선수선발을 놓고 크고 작은 잡음이 많았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국민들의 눈에 자랑스럽지 못한 국가대표라면 아무리 좋은 성적을 올린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안우진이 없는 이번 대표팀이 WBC에서 어떤 성적을 올리든, 그것을 안우진을 배제한 이번 선택과 향후 국가대표 선발의 원칙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은 2023 WBC 본선 1라운드에서 일본, 중국, 호주, 체코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이강철 감독이 지휘하는 대표팀은 3월 9일 호주와 1차전을 시작으로 10일 일본, 12일 체코, 13일 중국과 차례로 격돌한다. 지난 두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었던 한국은 이번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으로 명예회복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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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진 토미애드먼 WBC대표팀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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