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편집자말] |
해마다 연말이면 OTT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따라 추천목록으로 올라오는 시리즈들이 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보면 내내 서걱거리거나 어지러웠을 마음들을 다잡게 해 주는 그런 드라마들인데, 작년 이 맘 때쯤엔 '도깨비' 더니 올해는 '미생'이다.
바둑에 완전히 문외한인 데다, 저 놀라웠다던 원작 웹툰마저 접하지 못한 상태로 만나게 된 이 드라마는 어쩌면 생각보다 큰 생의 '모멘텀'을 내게 가져다준 드라마였다. 아니 결단코 그랬다.
재수하는 아이, 힘들었던 시간
기억을 되짚어 보니 '미생'이 한창 방영될 무렵 그 해 가을에서 겨울은 짧지 않은 삶 중에서도 가장 힘든 시간들이었다. 첫 해 입시에서 고배를 마신 아이는 서울로 올라가 재수를 하고 있었고, 아이가 대학에만 들어가면 일을 과감히 접고 하고 싶은 건 죄다 하며 살리라던 내 야심 찬 계획도 뜻하지 않게 미뤄졌다. 두겹 세 겹으로 헝클어진 실타래 같았다. 때로는 가위로 잘라서라도 당장 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기에 답답한 날들 속에 갇혀 숨 쉬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많았다.
"엄마 이번엔 왠지 느낌이 좋아, 모의고사 성적도 좋고, 컨디션도 괜찮은 거 같아."
"그래? 다행이다. 엄마는 우리 딸 믿으니까. 잘할 거야. 끝까지 컨디션 잘 유지하고"
아이는 가라앉고 있는 마음을 애써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전화 통화라도 하는 날이면 긍정의 신호들을 언어로 내뱉고 있었다. 재수생이라는 신분이 엄격히 따지자면 학생은 아니지만 또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 학생이었기에 운신의 폭도 좁고 견뎌내야 할 외부의 자극들도 많았을 텐데, 아이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자신의 날들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아이의 날들이 내 생각과 추측만으로 버무려진 분홍빛보다는 훨씬 더 잿빛에 가까웠음을 알게 됐을 때 그 미안함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음이다.
그렇게 서로를 안심시키는 가운데 어느덧 다시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각성한 어느 날, 드라마 '미생'이 하늘이 내린 축복처럼 내게 다가온 것이다. 삶은 뒤돌아보거나 머뭇거리기보다는 조금 미숙하고 어렵더라도 나아가는 것이라는 응축된 메시지는 어쩌면 그 당시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을지 모르겠다.
주변으로부터 너무나 벅찬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아이와, 그런 아이의 학부형으로 산 고등학교 3년의 세월이 막상 '실패'라는 불명예로 끝났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재수'가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회, 한 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좌절의 끝에는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는 용기가 생명수처럼 고여 있었다. 길지 않은 생이긴 하나, 바둑밖에 몰랐던 고졸 검정고시 출신의 인턴사원 장그래가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회사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차근차근 증명해 내는 모습에선 희열마저 느꼈다. 비록 이것이 원작 만화에 기반한 판타지라 할지라도, 어딘가에는 분명 장그래 같은 미생이 있어, 멋지게 완생으로 나아가는 날갯짓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장그래의 성장이 마치 내 것인 양 환호하고 응원했다. 그 열망은 드라마가 마무리될 무렵 주인공의 삶에 나의 어려움을, 그리고 아이의 시련을 대비해 완벽하게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