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성인 정체성을 숨기고 남자인 세자로 살아간다.
KBS
나는 그 이유가 다른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과 공감하는 마음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7회 휘는 위기에 처한 지운(로운)을 구하기 위해 이판대감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판께서 생각하는 이치와 도리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기준은 달라지겠지요. 적어도 제가 앞으로 이 나라에서 보고 싶은 정의에는 어긋나지 않는 곳이었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휘가 사람은 모두 다른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 부분이었다. 즉, 휘는 '정신화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이다. 정신화 능력은 사람은 저마다 다른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조망해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정신화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내 마음의 고유한 이유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때만이 나와는 다른 타인의 마음 또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화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휘는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그러니까 생명에 대한 존중-을 그토록 당당하게 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휘는 이를 타인의 진심을 알아차리고 공감과 연민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어간다. 때문에 8회 명나라 태감의 무례한 행동 속에서도 그의 속마음을 읽어내고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 의지와 다른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숨길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들이 너무 안타까워서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들
하지만 당당하게 불안과 직면하며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켜가며 사는 일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삶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성적 정체감을 숨기며 살아가는 일은 늘 자기 자신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갖게 했을 것이다. 12회 "저는 단 한 번도 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라는 휘의 외침은 이런 마음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런데도 휘가 그 긴 세월을 버텨내며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몇 명의 사람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진정으로 휘가 자유롭기를 바라는 현(남윤수), 현재에 충실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지닌 지운의 존재는 휘에겐 큰 위로였을 테다. 특히, 휘의 비밀을 모른 상태에서도 휘에 대한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지운의 편견없는 태도는 휘 역시 지금-여기에 충실하도록 도왔을 것이다. 휘의 소신있는 행동에 대해 "잘하셨습니다"라고 위로해주는 김상궁(백현주)과 그림자같이 곁을 지키는 홍내관(고규필)도 큰 지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들과 함께 자신의 가치를 지켜온 휘는 12회 마침내 자신을 폐세자시킨 아버지 혜종 앞에서 솔직한 마음을 이렇게 털어 놓는다.
"세자로서 아바마마를 원망한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 궐에서 태어난 한 사람으로서 원망하였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었던 평범한 아이였으니까요. 다시 제가 태어나던 그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이는 사랑받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저버려야 했던 현실 속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항변처럼 들렸다. 다행히도 휘는 자신의 비밀을 알면서도 끝까지 지켜준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다. 12회 은신처로 피해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휘는 눈물을 흘린다. 이는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았다는 기쁨과 그간의 서러움, 앞으로의 일에 대한 두려움이 범벅된 눈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정체감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을까. 휘는 12회 말미 마침내 용기를 내고, 지운에게 커밍아웃 한다. 이는 휘가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를 드러내기로 결심하고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로 다짐하는 매우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