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트로덕션> 스틸컷영화 <인트로덕션> 스틸컷
(주)영화제작전원사
03.
2부. 방에서 한 여자(김민희 분)가 걸어 나온다. 여자의 집 아래에는 그녀를 만나러 온 모녀가 함께 서 있다. 앞서 1부에서 등장했던 남자 영호의 여자친구인 주원과 그녀의 어머니다. 주원의 엄마는 오래전, 여자와 친했던 사이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예전의 그 가느다란 인연을 붙잡고 여자의 집에 신세를 지려 한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딸이 독일에서 의상 공부를 하는 동안 머물 곳을 부탁하려는 것이다. 한국에서 공부도 잘했다는 여자는 느닷없이 그림을 그리겠다며 독일로 떠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단다. 여자를 아직 만나기도 전이지만 엄마는 딸이 여자의 말동무도 하면서 함께 지내면 외롭지 않을 거라며, 누구를 위로하는지도 모르는 말을 일단 뱉는다. 사실 그녀의 딸은 원래 의상 공부를 한 것도 아니면서 그냥 옷을 조금 좋아했다는 이유로 여기 독일까지 날아왔다.
"충동이 있어야 살아있는 거지."
어색한 세 사람의 만남이 정리되자, 주원은 남자친구인 영호가 자신을 따라 독일에 온 것 같다며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한다. 엄마는 이 상황을 황당해하며 부정적인 모습을 내비치고, 여자는 충동이 있어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게 아니냐며 좋아하는 눈치다. 영호는 여자 친구가 독일로 떠나버리자 마음이 아파서 무작정 따라왔다고 한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싫다며 자신도 독일로 건너와 공부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어머니는 돈이 없지만 아버지에게 부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단다. '아들이 유학을 간다고 하는데 당연히 도와 줘야지. 아니면 그게 사람이냐.' 별로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대화로 두 사람은 행복한 상상을 한다.
03.
이 영화의 1부와 2부는 기다림과 충동적 행위의 지점에서 만난다. 1부의 내용은 기다림이다. 아버지의 진료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아들과 두 사람이 만나기를 기다리는 간호사. 의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환자와 배우. 심지어는 앞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호를 기다리며 근처 카페에 있을 주원의 모습도 있다. 그 시간에 대응하는 각자의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인물들 모두는 자신이 놓인 자리에서 덩그러니 놓인 시간을 유영한다. 어떤 시간은 자신이 만들었고, 또 어떤 시간은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2부는 충동적인 행위들로 가득하다. 갑자기 한국을 떠나 독일로 향한 여자가 그랬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또 같은 나라로 떠나온 주원의 행동이 그렇다. 그녀를 따라 함께 떠나온 엄마는 물론, 남자친구 영호의 독일행에도 1부에서 지켜 본 기다림과는 전혀 반대의 행위들이 묻어난다. 충동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계획하는 그들의 미래 역시 마찬가지. 먼저 독일에 와 있던 여자의 성취를 증명할 대상이 무엇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거나, 아무런 준비도 없이 유학을 외치는 인물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어쩌면 여자는 그래서, 의상 공부를 하러 독일에 왔다는 주원에게 이렇게 딱 한 마디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힘들 텐데, 잘해 보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