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마저 연출하는 선겸의 가족은 아버지 정도의 야망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JTBC
극 중 선겸의 누나인 은비(류아벨)가 종종 말하듯 선겸은 일명 '콩가루 집안'에서 성장했다. 현직 국회의원이자 대권을 꿈꾸는 아버지 정도(박영규)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가족들을 '활용'할 생각만 하는 인물이다. 창던지기를 하던 선겸이 어깨를 다쳤을 때 "어깨는 하자 생겨서 못 써먹겠네. 다리는 멀쩡하니까 축구로 전향하면 되겠네"(4회)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만큼 자식마저 도구화한다. 심지어 그는 이를 사랑이라 굳게 믿는다. 이런 아버지가 권위로 짓누르는 집안에서 선겸의 가족들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는커녕 각자가 숨 쉴 구멍을 찾는 것조차 버거웠을 것이다.
어머니 지우(차화연)는 배우로서의 일에 열정을 쏟으며 숨 쉬고자 하고, 선겸의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가족 구성원인 은비는 줄곧 해외에 머물며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쓴다. 이런 가족을 둔 선겸에게 늘 텅 비어 있는 집은 마음과 몸이 머무는 '집'이 아니라 그냥 '하우스'일 뿐이다. 선겸이 '집이 있는데도 집이 없다'고 여기며 호텔에 머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가족마저 '도구' 취급하는 정도가 타인을 어떻게 대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정도는 선겸의 통역을 맡기로 한 미주(신세경)에게도 너무나 당당하게 돈을 건네며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줄 것을 요구한다. 아마도 정도는 이런 식으로 늘상 사람들을 조종했을 것이고, 선겸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돈과 힘이 자신과 타인의 삶을 주무르는 모습을 목도하며 성장했을 것이다.
선겸이 추구하는 가치
이런 가정에서 자란 선겸은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게 됐을까? 부모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많은 경우 자녀들은 부모의 가치관을 내사하거나, 혹은 그 가치가 부당하게 느껴지더라도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모가 추구하는 가치가 자신에게 심한 불편감을 안겨주었을 때, 혹은 타인이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을 때, 부모의 가치와 반대되는 가치관을 형성하기도 한다.
선겸은 후자에 속한다. 스스로가 아버지의 권력과 부에 의해 착취당한 피해자이기도 한 그는 양심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돈과 권력으로 무엇이든 해결하는 아버지와 그로 인해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때문에 선겸은 아버지가 추구해온 것과는 반대인 '정의로움' 그리고 '원칙을 지키는 삶'을 가치로 설정한다. 또한, 자신처럼 짓눌린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키워간다. 2회 "제가 되고 싶은 것은 원칙을 지키는 지도자입니다"라는 선겸의 발언은 자신의 가치를 명료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심리학에서 '가치'는 한 개인이 평생토록 바람직하다고 여기고 추구하는 것으로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를 실천할 때 내가 '나답다'고 여기며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선겸이 간직한 연민에 기반을 둔 '정의'와 '원칙을 지키는 삶'이라는 가치는 지켜지지 않는다. 이런 가치들을 실천하려 할 때마다 자신의 가치와 완전히 반대되는 아버지의 가치가 이를 막아선다. 아버지는 선겸이 스스로 공정하게 노력해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뒷돈'과 '권력'으로 해결해버린다.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는 아버지의 힘 안에서 선겸은 자신의 가치를 실천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자신의 욕구도 가치도 마음대로 추구할 수 없게 된 선겸은 이제 스스로에게 무감각해지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 무엇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을 '인지'하고 '느끼는 것' 자체가 더 큰 무력감을 유발하기에 그는 자기 자신을 아예 바라보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킨 그는 4회 선수촌 구내식당서 만난 한 선수의 말대로 '노잼'으로 살아간다. 한때 선겸을 좋아했었다는 그 선수는 선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너를 좀 말해주고, 나눠주고 살아. 좋은 거 싫은 거 먹고 싶은 거 그래야 유잼되지." 자신에게 무감각해져 버린 선겸의 상태를 매우 잘 표현한 대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