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지> 포스터.
영화 <리지> 포스터.(주)팝엔터테인먼트

여성을 향한 외모지상주의 잣대를 벗어나자는 취지의 '탈코르셋 운동'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코르셋이 인간을 미치게 만든다고 주장하는 영화가 등장했다. 인간을 미치게 하는 건 물론이고 코르셋을 강요하는 자는 도끼질을 당하리라는 매서운 경고까지 던진다. 19세기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근친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리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10일 개봉한 <리지>는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 살던 보든 가(家)의 이야기다. 막대한 부를 가졌음에도 청빈과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 보든 집안은 주변에 명망이 자자하다. 이 집안의 가장 앤드류(제이미 쉐리던 분)에겐 아내 애비(피오나 쇼우 분)과 혼인할 나이를 넘긴 두 딸이 있다. 큰 딸은 엠마(킴 딕켄스 분), 작은 딸이 리지(클로에 세비니 분)다.

겉으로 볼 땐 멀쩡한 것처럼 보이지만 보든 집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엉망진창이 따로 없다. 낮에는 점잔을 빼며 권위를 세우는 아버지 앤드류는 밤마다 하녀 브리짓(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의 방에 몰래 숨어든다. 정작 본인은 부끄러운 행동을 저지르면서도 딸들에겐 명문가의 여식다운 태도를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리지는 불쾌감을 느낀다.

집안의 안주인인 애비는 두 딸 모두와 관계가 좋지 않다. 특히 리지는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 일쑤인데 리지에겐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의붓 어머니인 애비와 그의 동생 존 모스(데니스 오헤어 분)가 자신(리지)과 언니에게 상속될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부터 보든 가에는 정체불명의 편지가 배달돼왔다. 편지엔 저지른 죄와 받아야 할 벌에 대한 모호한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에 불안감을 느낀 앤드류는 존을 집으로 불러들여 두 딸의 보호와 재산관리를 부탁하는 내용의 유서를 작성하고 동의를 구한다. 그 무렵 리지는 존이 집 앞에 편지를 두고 가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커다란 불안을 느낀다. 리지는 욕심 많은 존이 자신과 언니의 재산을 차지하려 일을 꾸민 걸 깨닫고 그가 자매의 후견인이자 재산관리인이 되는 걸 막고자 한다. 하지만 앤드류는 리지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고 존에 대한 신뢰를 거두려 하지 않는다.

코르셋이 인간을 미치게 한다
 
 영화 <리지>의 한 장면. 재산을 노리는 외삼촌 존(데니스 오헤어 분)과 리지(클로에 세비니 분)의 대립은 영화의 긴장감을 일으키는 주요한 설정이다.
영화 <리지>의 한 장면. 재산을 노리는 외삼촌 존(데니스 오헤어 분)과 리지(클로에 세비니 분)의 대립은 영화의 긴장감을 일으키는 주요한 설정이다.(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첫 장면에서부터 결말을 꺼내놓는다. 잔혹하게 살해당한 보든 부부의 시체를 내보이고 어째서 이들이 죽음을 맞았는지 그 원인을 찾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므로 리지가 부모를 죽인 사실은 처음부터 확정돼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의 관심은 살인이란 결과가 아니라 그녀가 어째서 이런 범행을 벌였는지,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이유다.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도끼로 잔혹하게 살해한 여자의 이야기를 스릴러나 공포가 아닌 드라마의 문법으로 풀어낸 의도야말로 <리지>를 읽어내는 핵심이란 뜻이다.

감독 크레이그 맥닐을 비롯한 제작진은 이 같은 목적을 위해 장난감 블록처럼 정직하게 짠 설정을 펼쳐 보인다. 궁극적인 도착점은 앤드류가 본래 정상적인 인간이었던 리지를 미치게 했다는 것으로,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리지가 느꼈을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도록 한다.

앞서 언급했듯 앤드류는 위선적인 인간이다. 겉으론 누구보다 도덕적인 행세를 하지만 속은 옹졸함과 욕망, 편견으로 가득하다. 그가 하녀 브리짓의 방에 숨어들어 하는 행동은 아마도 처음이 아닌 듯 자연스럽다. 애비는 남편이 매일 밤 하녀의 방에 숨어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 화가 북받치는 순간에서도 조용히 돌아누워 "부끄럽지 않은가요" 하고 읊조리는 게 고작이다.

형편없는 내면을 가진 인간임에도 앤드류는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 모든 이를 억누른다. 그가 집안의 다른 구성원을 통제하는 모습은 하녀에게 매기라는 이름을 강요하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극중 애비의 말을 통해 보든 가에 들어온 모든 하녀가 매기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단 사실을 보여준다. 아마도 가장인 앤드류에 의해 정해졌을 이 규칙에 따라 새로 온 하녀 브리짓 역시 제 이름을 감추고 매기로 살기를 받아들인다.

못난 남성과 억눌리는 여성들  
 
 영화 <리지>의 한 장면. 리지(클로에 세비니 분)에게 화가 나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비둘기들의 목을 자르는 앤드류(제이미 쉐리던 분).
영화 <리지>의 한 장면. 리지(클로에 세비니 분)에게 화가 나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비둘기들의 목을 자르는 앤드류(제이미 쉐리던 분).(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거듭 권위로 다른 이를 억누르는, 못난 남성상을 드러낸다. 하녀의 이름을 빼앗고 딸의 외출을 막으며 사치라는 이유로 집안에 불을 켜는 것조차 금지하는 앤드류의 모습이 그렇다. 또 자신에게 대드는 리지를 성적으로 제압하려 드는 존의 모습도 그렇다.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자인 리지는 변호사를 찾아 자문을 구하고 전당포에 물건을 파는 일조차 해낼 수 없는 무력한 존재다. 보든 가의 변호사는 오로지 아버지의 이익만 대변하며 전당포 주인에게 판 물건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손으로 전해진다. 리지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맥닐 감독은 보든 가의 저택을 불안하고 답답한 공간으로 연출해, 리지가 느끼는 고립감과 압박감을 표현한다. 어둠이 깔린 공간이 인물을 짓누르고 장작이 타는 소리조차 불편하게 거슬리는 공간이 리지의 집이다. 저택 본채에서 떨어져 있는 헛간이 리지에겐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안식처지만 극적 긴장이 고조되며 앤드류는 이곳까지 침입해서 리지가 기르던 비둘기들을 무참히 죽여버린다.

영화에서 리지가 집을 벗어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연극을 보러갔다가 발작을 일으켜 집으로 실려 오는 장면과 전당포와 변호사 사무실에 들러 일을 보는 장면. 모두 어둡고 침침하거나 불안하게 흔들리는 화면으로 그려진 건 우연이 아니다. 아버지의 질서가 살아있는 한 온 세상이 리지에겐 감옥과도 같단 사실을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리지가 실제로 감옥에 갇혔을 때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부모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재판을 앞두고 구속된 리지. 브리짓이 리지를 찾아온 장면에서 영화는 감옥 안을 파스텔 톤의 따스한 영상으로 그려낸다. 이곳에서 리지는 이전과는 달리 부드럽고 편안한 표정으로 브리짓을 맞이한다. 마치 주인이 제 방에서 손님을 맞이하듯 자연스럽다. 집 안에선 언제나 날 선 긴장 속에 살았던 리지가 어쩌면 처음으로 온전히 편안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이다. 리지에게 아버지도 그의 억압도 없는 감옥이 집보다 나은 공간인 것이다.

늘 수십 개의 단추로 바짝 잠긴 코르셋을 입고 있던 리지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던 장면 역시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그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이때 리지는 브리짓과 공모하여 코르셋을 벗은 채 알몸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살해한다. 코르셋을 벗고 알몸이 되어 자신을 억압한 자들을 향해 도끼를 치켜드는 리지와 브리짓은 그대로 현실 가운데 존재하는 어떤 주체를 노골적으로 상징하는 듯도 하다.

도끼를 치켜든 알몸의 여인을 만나기 전에
 
 영화 <리지>의 한 장면. 헛간에서 브리짓(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의 슬픔을 보듬는 리지(클로에 세비니 분). 영화는 기댈 곳 없는 여성들의 연대와 파국, 마침내 이뤄진 관계의 해체를 도식적으로 풀어낸다.
영화 <리지>의 한 장면. 헛간에서 브리짓(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의 슬픔을 보듬는 리지(클로에 세비니 분). 영화는 기댈 곳 없는 여성들의 연대와 파국, 마침내 이뤄진 관계의 해체를 도식적으로 풀어낸다.(주)팝엔터테인먼트
  
사실 브리짓과 보든 가의 세 여자는 도식적이라 할 만큼 선명한 역할을 가졌다. 리지가 억압에 맞서 직접 코르셋을 벗고 도끼를 치켜드는 존재라면, 브리짓은 그에게 동화되어 범죄를 공모했으나 끝내 도끼를 내리치지 못하는 현실적 인물이다. 극중 리지가 젖소라며 비난한 애비는 젖소와 같은 가축이 인간에게 그러하듯이, 앤드류의 세상에 기대어 살면서 그의 지배를 공고화하는 존재다. 리지로부터 재산을 노리는 존의 의도를 들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엠마는 애비의 전 단계나 다름없다. 리지가 노골적으로 애비를 경멸하고 엠마와 소통하지 않은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지배하는 집 안에서 정당한 제 권리조차 찾지 못하는 리지의 삶은, 그대로 남성의 세계에 억눌린 여성의 이야기가 된다. 영화 속 남성인 앤드류와 존은 오로지 성별과 신분으로 여성을 억압하고 제 것이 아닌 것을 탐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집 바깥의 이들은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임으로써 통용되는 어떤 질서를 빚어낸다. 영화는 '리지가 재판에서 무혐의로 풀려났으며 보든 가의 자제가 그런 흉악한 일을 저질렀을 리 없다는 배심원단의 판단이 이유였다'는 자막으로 끝을 맺는다. 이 역시도 남성들이 세운 질서가 진실을 억눌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엔딩으로, 영화의 지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선택이다.

지나치게 도식적이어서 촌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영화는 이처럼 명확하게 권력과 억압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부모까지 살해한 리지의 비인간적 행동 이면에는, 남성들이 만든 억압의 구조가 있었음을 말한다. 나아가 그와 같은 억압이 앤드류나 그에 동조하는 남성들의 안위마저 위협하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주장이다.

최근 우리 사회 뿌리 깊은 성 차별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러한 담론을 제기하는 집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보이기도 한다. 한 쪽에는 힘없는 이들에게 여전히 코르셋을 입히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코르셋을 벗고 도끼를 들어야 한다고 소리치는 자들도 있다.

'도끼를 든 리지'를 마주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애비와 엠마, 브리짓의 선택을 넘어 앤드류와 리지에게 손을 내미는 방법을 이 영화가 우리에게 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팟캐스트(http://www.podbbang.com/ch/7703)에서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리지 (주)팝엔터테인먼트 크레이그 맥닐 클로에 세비니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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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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