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역> 포스터. '<부산행> 프리퀄'이라는 홍보 문구가 있지만 영화에는 반전이 있다. 영화의 반전을 극대화하고자 스토리나 등장인물을 다르게 소개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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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은 <부산행>과 달리 '구원'이 아닌 '파멸'에 충실하다. 또한 '반전'에 충실하다. 반전은 영화가 강조하는 대목을 위해 남겨둔 히든카드이다. <부산행>의 별 반전 없는 단선적인 스토리를 생각하면, <서울역>의 아우라는 <부산행>의 아우라를 이미 삼켜버린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여름 블록버스터 <부산행>의 1100만 관객을 넘는 호응과는 별개의 문제다. 애니메이션은 감독이 통제할 수 있는 세상이고 실사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감독의 본심은 <부산행>보다는 <서울역> 쪽에 가까운 게 아닐까.
결말에서 혜선이 마지막으로 탈출한 장소는 '모델하우스'다. 이미 안전한 곳이 한 뼘도 없는 한국 사회의 파멸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상징이다. 진정한 집도 아닌 이런 곳에서 혜선은 잠시 긴장을 놓고 잠자리에 든다. 그사이 연락을 받고 달려온 남자친구 기웅이 혜선을 흔들어 깨운다. 기웅은 혜선의 아빠와 같이 왔다고 말하고 혜선은 반가워한다. 반전은 혜선의 앞에선 석규(류승룡)가 아빠가 아니라 혜선이 도망치고자 했던 포주였다는 것이다.
반전 이후부터 좀비와 인간을 구분 짓던 명목상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세상이 망하는 상황에서도 돈을 갚으라고 쫓아오는 포주를 막으려던 기웅은 포주에게 죽고, 포주는 혜선에게 너희 아빠는 돈을 갚으라니까 이미 도망갔고 네가 돌아갈 집도 한참 전에 없어졌다며 폭력을 휘두른다. 혜선이 정신을 잃자 포주는 "내 돈 갚고 죽어야지!"라고 절규한다. 포주가 혜선의 다리에 좀비에게 살짝 긁힌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하는 찰나, 좀비로 변한 혜선이 포주를 물어뜯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로써 <부산행> KTX의 최초 좀비 감염자가(심은경) <서울역>의 여주인공 혜선(심은경)과 동일 인물이라는 속설이 깨진다. 두 영화는 단절을 선언한다. 따라서 두 영화 사이에 '개연성이 없다'는 평가들은 두 영화의 가치를 기각하지 않는다. 개연성이 없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서울역> 홍보 과정에서 석규를 아빠라고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포주였듯, <서울역>을 프리퀄이라고 소개했는데 실제로는 독립된 영화였다는 반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반전을 인정한다면 두 영화는 지금의 현실을 설명하는 각각의 독립적인 텍스트로 인정되어야 한다. 둘 중 어떤 설명이 더 현실에 가까운지 판단하는 건 관객의 몫이다.
영화를 잘 보면 혜선조차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단서들이 포착된다. 경찰에게 '아저씨 저 노숙자 아니에요!'라고 노숙자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거나, 자신이 위기에 빠졌을 때 한 청년이 자신을 도와주고 좀비에게 희생됐지만, 신경 쓰지 않고 도망을 가는 등. 그리고 바로 이 장면에서 혜선도 좀비에게 살짝 긁히게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영화 전체가 바로 이 장면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좀비로 만드는 건 너무 잔인한 것 아니냐는 불편함을 몇몇 관객은 느낄 수 있다. 관객이 등장인물에 이입해 답 없는 세상을 파멸시킨 뒤 새 삶을 시작하고픈 욕구를 대리 해소한다면, 혜선의 파멸은 '예외'를 두고 싶었던 이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대단한 악인으로 인해 붕괴한다기보다 오히려 소시민들의 작은 편견과 불신이 쌓일 때 붕괴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이미 의인(청년)조차 의의를 온당하게 인정받을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서울역>과 <부산행>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 나는 '내 세상은 잿빛' 3편에서 이 세상은 원래 부조리하고 인생은 무의미함의 연속이지만, 아주 간발의 순간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이 있다고 주장했다(관련 기사:
"이 언덕을 또 오르다니..." 흙수저의 '형벌'). 하지만 이제 그 주장이 현실과 거리가 있음을 인정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서울역>에 반박할 말이 딱히 안 떠올랐다. 이제 비관적으로 철학자 카뮈의 말을 다시 읊조린다.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적인 문제다."여기에 내가 아무리 긍정적인 답을 해도 약간의 가능성도 찾을 수 없었다면, 그것이 원래 나의 현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 좀비가 되어 죽어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