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만화 속 주인공과 달리,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는 나약했다. 항상 흔들리고 방황하는 그를 보며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됐다.
가이낙스
자, 여기까지는 내 인생 한 토막에 대한 설명이면서 1995년에 일본에서 방영한 TV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아래 <에반게리온>)의 기본 정서이다. 스무 살 시절 세계여행도 마다하고 내가 빠져 있었던 사랑스러운 판타지이나 절절한 공감의 애니메이션이 그러쥔 핵심이다.
<에반게리온>은 그때까지 접했던 국산 만화영화에 비하면 작화와 연출 수준이 너무 뛰어났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준 건 그런 세련됨이나 멋짐 때문이 아니다. 그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볼 수 없던 '남주'였다. 그리도 흔들리고 그리도 나약하며 그리도 무력한 주인공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당시 유행했던 <북두신권>의 주인공은 물론이거니와 로봇물의 어느 주인공과 비교해도 결정 장애였다. 거기에 나밖에 모르는 애송이이기도 했다. 뚜벅뚜벅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툭하면 주저앉았다.
어른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렸고 영웅이 돼야 하는 매우 급한 순간인데 난데없이 도망쳐 쭈그려 앉아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있다니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남자가, 주인공이, 젊음이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다. 하지만 이카리 신지(남자 주인공)는 그랬고 나도 그랬다. 학교에서 풀려나 밝고 넓은 세상에 놓였고 자유를 얻었으며 무엇을 해도 박수받을 참인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오래 혼자가 되고 싶었고 사람들을 피해 골방으로 도망가고만 싶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무엇을 해야 할지는 궁금했지만, 너무 피곤했다.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이카리 신지가 못나 보이면서도 반가웠고 짠했다. 그렇게 동질감에 휩싸여 나는 <에반게리온>을 찾아다녔다. 말 그대로다. 학교 여기저기, 일본 애니메이션 입수 루트가 있는 친구의 자취방 문을 두드렸다. 당시에는 그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보통의 방법이기도 했다. 아직 디지털과 인터넷이 세상 빛을 못 보던 시절이라 일제 레이저디스크를 복사한 VHS 테이프가 귀한 물건이었던 시대였다. 그야말로 아날로그의 시대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마지막화까지 보긴 봤는데 솔직히 좀 난감했다. 좋게 말해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결말이라지만 이건 뭐 사도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래서 '남주'는 누구와 맺어졌다는 건지,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으니 갑갑했다.
AT 필드를 깨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각자의 AT 필드를 지니고 있고, 이것이 깨지지 않기를 바람과 동시에 깨고 관계 맺기를 소망한다.가이낙스
하지만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AT 필드의 정체. 건진 건 그거 하나뿐이었지만 난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내가 겪던 큰 고난을 너무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T 필드란 방어막이다. 사도(적)와 에반게리온 모두 상대의 AT 필드를 뚫고 들어가야 싸움이 끝이 난다. 그래서 AT 필드는 나를 지키는 것이고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 즉 정체성이다. 인간의 독립성과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무언가를 추구하고 갈망할 때 발현되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배제하고 거부할 때 역시 나타난다. 정체성과 개성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다.
역설적으로 사람 사이의 거리감, 이 방어막이 상대 때문에 훼손당하고 변형되면서 내 정체성이 된다. 당연히 나도 관계를 맺으려면 누군가의 방어막을 뚫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어막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나는 우리로 편입되지 않는다. 사도와 에반게리온의 AT 필드 깨기는 사람 사귐의 어려움과 그것을 통해 구체화 되는 '나'의 정체성 확장을 박진감 있게 보여준다.
당시 나는 사람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뒤늦은 정체성 찾기의 후과로 얻은 혼란에다가 내성적인 성격이 보태져 무리에서 겉돌았으며 만사 까칠했다. 상대의 AT 필드를 깨고 싶지 않았고 내 AT 필드를 건드리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러면서 외로운 건 또 싫어서 답답해했다. 그 답답함의 원인이 눈앞에서 시정되었고 이해되고 있으니 내가 <에반게리온>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건 당연했다.
폭압의 시대에 밀린 숙제를 하느라 괴로웠던 회색 청춘의 날, 맑은 5월의 하늘 아래서 홀로 음습한 지하방을 갈구하던 모순된 나날, 나를 위로해주는 건 쓰디쓴 소주 한 잔과 <에반게리온>이었으니 수 세월 지나서도 <에반게리온>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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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