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여성인권영화제 메인 포스터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메인 포스터여성인권영화제
지난 9월 25일부터 28일까지 아리랑 시네미디어센터에서 개최된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가 그 막을 내렸다.

지난 2006년 한국여성의전화가 여성인권 침해의 현실과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들의 생존과 치유를 지지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시작한 이 영화제는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서울의 중소규모 영화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영화제는 '질주 Rush'라는 테마 아래 선별된 29편의 영화를 소개함은 물론 여성인권과 관련한 전시와 참여행사, 감독과의 대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꾸려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번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부터는 수상부문이 두 개로 늘었는데 경쟁부문 수상작에 주는 기존의 피움상에 더해 관객상이 신설되었다. 피움상에는 김신정 감독의 단편 <수지>가 선정되어 폐막작으로 상영되었고, 이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관객상을 차지했다.

통속적 관계의 호쾌한 전복을 그린 수상작

<수지>는 수지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종합격투기에 열심인 수지는 매일 술에 취해 있는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가는 고등학생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수지의 손목에 난 상처를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그녀가 평탄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어느날 봉사활동에 나선 수지는 낯익은 집과 그 앞에 버려진 물건을 보고 그곳이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했던 아버지의 집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수지는 아버지를 찾아 이제껏 배워온 무술실력을 발휘해 복수한다. 영화는 두 차례에 걸쳐 수지에게 성폭력을 자행하는 남성과 그에 복수하는 수지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일종의 대리만족적 통쾌함을 선사한다.

수지 손목의 상처를 내려다보는 수지(박소담 분)
수지손목의 상처를 내려다보는 수지(박소담 분)영화 <수지> 화면 갈무리

영화는 사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지는 작품은 아니다.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아버지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과 그에 대한 복수라는 단선적 에피소드일 뿐이고 이는 여성인권과 관련한 영화에서 더는 참신하지 못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자살시도를 암시하는 손목의 상처를 노골적으로 비추며 시작한 영화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되고, 마침내 그 복수까지 나아가는 구성이 단순한 표현방식과 맞물려 울림있고 참신한 인상을 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통속적인 권력관계를 호쾌하게 전복시킨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가 이미 2007년에 나왔으니 남성에 대한 여성의 폭력적 복수를 그려내는 방식엔 더욱 치열한 고민이 필요했을 테다.

물론 여성에 대한 일상화된 폭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 심각성에 대해 공감할 수도 있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대안이 새롭지 못하다는 점은 단편의 특성을 감안하고서라도 못내 아쉽다. 두 차례의 복수가 가져오는 통쾌함은 분명 흥미로웠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였다.

성폭력에 대한 주인공의 복수를 그 정당성의 측면에서라도 조금 더 구체화시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만나는 판타지적 설정이 메시지를 더욱 모호하게 한 탓에 그로부터 복수의 통쾌함이나 폭력에 대한 반성, 주인공의 내적 극복 등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작은 가능성들에 기회를 부여하는 영화제가 많아져야

아무튼 <수지>는 여성인권영화제의 경쟁부문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다른 영화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만큼 매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겠다. 기자 역시 그 결말부의 호쾌한 연출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고, 박소담이란 젊은 배우의 매력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성인권영화제는 바로 이런 가능성들에 작으나마 절실한 기회를 부여하는 장이 되어주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여성인권영화제가 존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하물며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바람직한 문제의식을 확산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에야.

다가오는 10월 2일부터 열흘 동안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다. 5월의 전주국제영화제, 7월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함께 국내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축제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같은 영화제의 성공은 국내외 문화콘텐츠 제작자에 기회의 장을 마련함은 물론, 대중의 문화적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는데도 기여해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여성인권영화제와 같은 작은 영화제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점이 못내 안타깝다. 크고 완성도 높은 영화를 위해선 작지만 새로운 영화들이 먼저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주변의 작은 영화제들은 언제나 당신의 관심이 절실하다.

여성인권영화제 한국여성의전화 피움 수지 반짝이는 박수 소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