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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달력도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기분 좋아야 할 연말 연시라지만, 나라 안팎이 모두 뒤숭숭해 이마저도 쉽지 않을 듯하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 식사를 계획한 분들이나 편안히 집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려는 분들이라면 가벼운 비디오 한 편이 오히려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바로 그래서, 이번 꼭지의 주제는 바로 '즐거운 크리스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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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집에> (크리스 콜럼버스 / 코미디)

'크리스마스'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눈 내리는 저녁. 루돌프가 이끄는 썰매를 타고 날아오르는 산타 클로스. 두 손 꼭 잡은 연인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그래도 한없이 부럽고, 정겨운 상상이다.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늘 혼자 집에서 지내야만 했거나 연인과 헤어지는 징크스를 가진 이들이 내 주변에는 의외로 많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현실과 가장 많이 닮아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영화 <나 홀로 집에>는 말썽만 피우던 케빈(맥컬리 컬킨 분)이 다락방에 홀로 남겨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휴가철 빈 집을 노리는 멍청한 두 도둑이 케빈의 집을 털기 위해 잠입하려 하지만, 어른보다 영특한 꼬마에게 웃지 못할 곤욕을 치르게 된다. 케빈은 홀로 크리스마스를 지내면서 차츰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가족애를 되찾는다.

크리스마스는 잊고 지냈던 가족애를 찾게 하는 힘이 있다. 무심한 성격 탓에 매일 보는 식구들의 얼굴을 찬찬히 돌아볼 겨를이 없기도 하겠지만, 추운 겨울이 되면 털실로 짠 스웨터같이 포근한 것이 바로 가족이다.

엄마가 형만 이뻐한다고 늘 투정만 부리던 케빈은 모두가 휴가를 떠나고 없는 현실을 마음껏 즐긴다. 밤새도록 TV를 보며 밤에는 먹지 말라던 아이스크림을 끼고 있기도 하고, 아빠 카드로 쇼핑을 즐기는 이 귀여운 꼬마를 보면서 관객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이 영화에서 악한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홀로 남겨진 케빈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려는 엄마를 도와주는 사람들과 항상 멍청한 행동을 일삼는 두 도둑도 이 영화가 지닌 따뜻한 마음의 행보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다. 비록 철지난 영화이긴 하지만, <나 홀로 집에>의 도둑들과 어린 꼬마가 엮는 한바탕 난장판에 같이 동참하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은 어떠하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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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레이몬드 브리그스 / 애니메이션)

<스노우맨>은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레이먼드 브릭스의 원작 동화를 토대로 하여 제작된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눈 내리는 어느 날, 밖에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사람처럼 움직이면서 자신을 만들어 준 소년과 함께 크리스마스의 하늘을 날아다니며 겪는 짧은 이야기다.

파스텔 톤의 색연필로 그려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전해 주는 <스노우맨>은 누구나 꿈꾸었던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어린 시절, 친구 손에 이끌려 한 번도 밟지 않았던 교회 문턱을 넘어서는 때가 바로 크리스마스였다.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아이들의 무용이 다 끝나고 성큼성큼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가 들어오면, 교회에 처음 온 것이 못내 부끄러워 자꾸만 밑으로 숨었던 일들이 생각난다.

<스노우맨>의 소년은 자신이 만든 눈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아이들이 만드는 순수한 판타지가 바로 이런 것일까. 햇빛을 받으면 녹아버리는 눈사람은 이 영화에서 소년이 꾸는 '백일몽'을 상징한다. 그동안 소년이 보지 못했던 상상의 건너편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눈사람도 있고, 북극에 살고 있는 산타 클로스도 있고, 하루 동안의 짧지만 긴 크리스마스를 간직했기 때문이다.

1984년 시카고 아동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스노우맨>은 뛰어난 작품성뿐만 아니라, 온갖 시름을 녹아내릴 형형한 교훈이 숨쉬는 애니메이션으로 손색이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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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힐> (로저 미첼 / 로맨틱 코미디)

웨스트 런던에 위치한 '노팅힐'에서 조그만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윌리엄 태커. 무료한 날들을 보내던 그의 앞에 나타난 할리우드의 인기 배우 안나 스콧을 보고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하지만 몇 분 뒤 그녀의 옷에 오렌지 주스를 흘리고 만 윌리엄은 자신의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안나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그녀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대형 스타. 자연스럽게 그도 언론의 주목을 받는 처지가 되어 버렸지만, 그 때마다 재치있게 위기를 모면하는 안나의 기지로 아슬아슬하게 사랑을 키워나간다.

<노팅힐>이 개봉되고 나서, 영화의 배경이 된 '노팅힐'이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이 영화가 남긴 인상이 꽤 컸다는 것을 말해 준다. 얼마 전 개봉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도 출연하고 있는 휴 그랜트는 전형적인 영국 신사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소심해 보이지만 강단 있는 영국 남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 많다.

굳이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 <노팅힐>을 고른 이유는 바로 휴 그랜트의 매력이 십분 발휘된 로맨틱 코미디의 전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른 들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소시민과 대중 스타가 만난다는 이 기막힌 설정이야말로 소박하게 꿈꿀 수 있는 영화의 맛이 아닐런지.

크리스마스를 뜻깊게 보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한해를 보내며 따뜻한 가족애와 어린 시절 품었던 소망들, 그리고 소박한 사랑 한 토막이면 누구보다 든든한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보는 비디오 한 편은 내게 있어서 서글프지만, 행복한 인생의 한 토막이다.
2003-12-22 18:4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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