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버셜
나는 내 주위에 있는 노처녀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여기서부터 노처녀를 ‘그들’이라고 표현하겠다) 대학교 때 만난 학교 선배들이다. 그들은 정확히 내가 군대에서 막 제대했을 무렵, 당당히 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그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들 사이에서도 공통분모가 사라질거라 믿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그들을 자주 볼 수 없었다(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때로 모든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기도 했으며, 급작스럽게 “나와라” 라는 문자 한 토막을 날리며 카우보이처럼 등장하기도 했다. 누구는 살이 빠졌고,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영어 공부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을 오랫동안 관찰해 온 나는 몇 가지 ‘그들’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우선 ‘그들’은 굉장히 무모하다. 특히, 여성인권에 대해 정말 무지했던 한 선배조차 ‘그들’의 대열에 들어서는 순간, “여자가 집에서 살림이나 할 것이지”라고 비아냥거리는 남성들을 그 자리에서 면박을 줄 정도였다.

또 있다. ‘그들’은 명절날 집에 내려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며, 이대 부근의 웨딩숍 근처를 종일 배회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당한 솔로’라고 말을 하면서도 그 본심은 영 딴판인 셈이 되는데 그 또한 ‘그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진실된 속성임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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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내 주위에 있는 노처녀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가끔 히스테리라는 것을 부리려고 하면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 되어버린 것인데, 이는 오랜 시간동안 단련하지 않으면 못 오를 ‘득도’(?)의 경지다. 그만큼 그들이 부리는 신경질은 대단히 맵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그들’과 같은 노처녀를 그린 영화이다. 칼로리와의 전쟁을 시작하고 완벽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 분). 어김없이 새해가 다가오고 부모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마크 다시(콜린 퍼스 분)라는 인권변호사를 소개받지만 그가 몰래 내뱉은 험담 때문에 못마땅해 한다.

그러던 중, 브리짓이 점찍게 된 상대는 바로 그녀가 다니는 출판회사의 편집장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 분). 그와 브리짓은 메신저를 주고 받으며 은밀한 데이트를 시작한다. 하지만, 마크가 브리짓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다니엘과 마크를 사이에 두고 이상한 삼각관계가 만들어진다.

이 영화는 영국의 작가인 헬렌 필딩이 신문에 정기적으로 실던 칼럼을 소설로 옮긴 <브리짓 존스의 일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소설은 전세계적으로 5백만부 이상이 팔려나가 소설 속에 그려진 브리짓 존스는 일약 30대 미혼 여성의 일반화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은 브리짓이 결국엔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끝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속 ‘노처녀’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는 단지 ‘이렇게 해서 브리짓은 남자를 만나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도식화된 ‘노처녀 탈출기’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은 그렇게 남자를 갈망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자신의 몸매가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마구 음식을 먹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다. 그 성공의 열쇠가 ‘남자’라는 설명은 로맨틱 코미디물에서나 있을법한 준비된 설정이라고 보는 게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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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자립 능력이 충분한 여성이 ‘남자’ 때문에 방황한다면 여과없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하게 녹아있다. 어느 특정한 그룹을 영화의 소재로 쓰게 된다면 이러한 조심스러운 반응 하나까지도 고려해야만 관객들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영화는 르네 젤위거의 평소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또, 모 CF 광고에서도 패러디할 만큼 애절하기까지 한 브리짓의 ‘립싱크’ 장면은 폭소를 자아낼만큼 너무 천연덕스럽다.
2003-07-11 17:3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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