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훔쳐서 연습실을 만든 '밀레니얼 걸즈'
마인드마크
영화 <빅토리>는 얼핏 보면 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비슷하다. 고난에 처한 미성년이 춤을 통해 자기 세계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더 먼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추는 춤은 다르다. 빌리는 발레를 췄다. 그는 홀로 고고하게 무대를 거닐었다. 관객은 천재적인 빌리의 모습을 감상하고 끝내 박수를 보낸다. 춤추는 빌리는 한 폭의 그림이다. 만질 수도, 가까이 갈 수도 없다.
하지만 <빅토리>의 소녀들은 치어리딩을 춘다. 치어리딩의 목적은 응원이다. 타인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춤이지만, 소녀들의 세계에는 '타인'이 부재하다. 그들은 온통 '지' 생각뿐이다. '필선(이혜리 분)'은 힙합을 연습할 공간이 필요해서 명목상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들었다. '세현(조아람 분)'은 '필선'과 '미나(박세완 분)'의 협박에 마지못해 동아리에 가입했다. 뒤따라 가입한 소녀들은 필선의 멋있는 공연에 끌렸을 뿐, 누군가를 응원하기 위해서 '치어리딩'에 뛰어든 건 아니다.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치어리딩이 통할 리가 없다. 그들은 축구부 경기에서 첫 공연을 제대로 망친다. 연습 부족은 핑계다. 누군가를 간절히 응원하는 마음이 없다면 치어리딩은 화려한 기교에 불과하다. 그들은 경험을 쌓고자 이곳저곳에서 치어리딩을 시작한다. 시장판, 회사 야유회, 아는 지인이 불러준 자리라면 어디든 팔을 곧게 뻗는 '밀레니얼 걸즈'다.
여러 무대를 거치며 그들은 관객의 눈을 바라보게 된다. 자신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신나 하며 에너지를 얻는 관객을 보자 치어리딩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춤추는 나를 보며 당신은 에너지를 얻고, 그런 당신에 내가 다시 에너지를 얻는 알쏭달쏭한 물리학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러자 소녀들은 점점 힘차게 치어리딩을 했고 관객과 경계 없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조선소. 그곳에선 필선과 '소희(최지수 분)'의 아버지가 일하고 있다. 현장은 삭막하다. 더 나은 노동환경을 요구하고자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에 띠 두른 어른들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소녀들은 주특기를 꺼냈다. 신나는 치어리딩으로 분위기를 엎고 노동자들과 어울려 춤판을 벌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위자들은 밝았지만, 필선의 아버지 '우용(현봉식 분)'만은 그렇지 못하다.
그는 현장 반장으로서 노동자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역할이다. 어쩔 수 없이 시위를 막지만, 참가자 명단을 넘기지 않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우용은 먹고 살기 위해 동료들을 저버렸다. 하지만 딸은 그렇지 않다. 그는 춤을 추면서 동료를 찾았다. 치어리딩을 통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필선을 보며 우용도 변화한다. 어느새 그는 시위장에 찾아가 "나도 하나 달라"며 띠를 두른다.
<빌리 엘리어트>에선 빌리가 계속 춤출 수 있도록 아버지와 형이 파업을 접고 탄광에 나간다. 하지만 <빅토리>에선 소녀들의 춤이 아버지들을 다시 시위장으로 돌린다. 그들은 부당한 회사에 맞서고, 시위하며 아버지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치어리딩'을 통해 말한다. 철학자 니체는 '중력의 악령'에게 지배받지 않고 나다운 삶을 살려면 춤을 춰야 한다고 말했다. <빅토리>의 치어리딩은 니체가 말하는 '춤'과 같다. 나를 끌어내리는 세상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춤을 춰야 한다.
필선은 시대와 불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