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에도, 또 설정에도 수명이 있다. 한때 온 세상을 지배하는 듯했던 마블 시리즈가 좀처럼 흥행하지 못하는 것도, 매년 쏟아지듯 했던 좀비물이 불과 20여년 만에 크게 줄어든 것도 이를 반증한다. 대중은 무엇에든 금세 싫증을 느낀다. 아무리 잘 먹히는 공식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식상한 클리셰일 뿐이다.
흡혈귀, 즉 뱀파이어도 한때는 쌔끈한 소재였다. 브램 스토커가 15세기 루마니아 남부 왈라키아 공국의 잔인무도한 통치자 블라드 쩨페쉬에서 모티프를 얻어 드라큘라 백작을 창조했을 때, 이는 가히 혁신적인 캐릭터라 할 만 했다. 소설은 이내 영화가 되었다. 토드 브라우닝의 1931년 작 <드라큘라>는 창백한 얼굴, 붉은 입술을 가진 키 큰 사내가 순결한 처녀의 목덜미를 물어 피를 쫙쫙 뽑아 마시는 모습을 그려내 충격을 던졌다.
이후 드라큘라는 대중예술의 인기 소재로 떠올랐다. 21세기 초반 이어진 좀비물의 홍수처럼 말이다. 드라큘라가 신실하고 보수적인 삶을 살던 순결한 여성의 잠자리에 침투해서는 범해진 적 없는 새하얀 목덜미를 물고 도망치는 이야기가 수시로 영상화됐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새하얀 목덜미에 박히는 모습이 포르노그라피적 쾌감을 준다는 고백이 이어지기까지 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