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잠>은 몽유병을 소재로 한 영화다.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에게 느닷없이 시작된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과 그에 따르는 공포, 그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렸다. 맞는 설명이기는 하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뭔가 내용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왜일까. <잠>에서 연출과 각본을 맡은 유재선 감독이 이 작품에서 시종일관 영화적 줄타기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경계에서, 혹은 줄타기
영문학의 걸출한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년)는 대표작 <롤리타>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남겼다. "더러운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이 만나는 지점이 있는데, 나는 바로 그 경계선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전혀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왜 그럴까?" 나는 이 문장이 나보코프의 문학관을 압축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잠>에서 이 문장이 생각난 이유가 아마 "만나는 지점"과 "경계선"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좁은 공간에서 아주 적은 인물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므로 당연히 압축과 절제가 필요하고 영화에서 성공적으로 구현된다. 잔가지를 툭 툭 쳐내며 굵직하고 간결하게 끌어나가다가 필요한 지점에서 정교하게 치고 들어와 관객을 휘어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