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댓.구>에서 오태경을 연기한 배우 오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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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연기를 시작했으니 벌써 30년을 훌쩍 넘겼다. 드라마 <육남매>의 창희 역으로 당시 대중에게 크게 각인된 그는 성인이 된 후에도 상업, 독립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다만 2019년 이후 소식이 뜸하다 싶더니 본인 주연작인 영화를 네 편이나 들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이중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좋.댓.구>가 오는 12일 개봉한다.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좋아요, 댓글, 구독 설정의 줄임말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오태경'을 연기했다. <올드보이>의 최민식 아역, <알포인트> 등 중저예산 스릴러 영화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가, 갑상선 항진증을 앓고 난 이후 다소 역할의 비중이 줄게된 실제 그의 인생 일부를 차용한 캐릭터다.
6일 서울 성동구에서 만난 오태경은 사뭇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극장 개봉이어서일까. 무엇보다도 배우가 직접 본인을 연기해야만 하는 작품이 나름 부담일 수도 있었을 터. 우선 <좋.댓.구> 이야기로 운을 뗐다. 아역 배우 출신의 오태경이 유튜버가 된 이후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처음 그가 이 작품을 제안받은 건 2020년 초였다고 한다.
몸과 마음을 다바친 작업
"지금 제작사 대표님이 전활 주셨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일면식이 없던 사이였다. 작지만 의미있는 영화가 있는데 시나리오는 없고, 만나서 이야기해보자고 하시더라. 혹시 사기인가? 싶었다. 배우가 정해져야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라고 하셨는데 직접 뵙고 소재는 재밌을 것 같은데 어떻게 영화가 나올지 감이 안 잡힌다고 하니 영화 <서치>를 참고하라고 하셨다. 바로 다음날 트리트먼트를 보내주셨는데 재밌겠더라. 오태경으로 나와야 하는 게 부담이었지만, 거꾸로 생각해서 안 할 이유도 없었다."
오태경이 수락하자마자 시나리오 작업이 진행됐고, 지금의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 한 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딴 배역을 맡는다는 건 확률적으로도 드물다. 오태경은 "내 이름을 딴 캐릭터를 앞으로 또 해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며 "국내영화 중엔 황정민 선배 본인의 이름을 사용한 <인질>이 있는데 그건 아예 극영화고, 차인표 선배님의 <차인표>가 그나마 이 영화랑 비슷할 것 같은데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고 말했다.
"감독님께 물었다. 다른 아역 배우 출신들이 많은데 왜 나냐고. 첫 번째 이유가 비록 형식이 일반적이진 않지만 영화기에 그 매체와 결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솔직한데 제 출연작에 <올드보이>가 있잖나. 올해가 개봉 20주년이기도 하고, 홍보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거였다.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생전 처음 접하는 유튜버 연기. 게다가 <좋.댓.구>가 모바일 화면이나 PC 화면을 그대로 구현해 사건을 진행하는 '스크린 플레이' 방식이기에 감독이나 배우 입장에선 상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픽이나 특수효과가 어떻게 입혀질지 가늠이 안 돼서다. 게다가 유튜버라는 설정상 직접 카메라를 들고 실제로 촬영하면서 이곳저곳을 누벼야 하기도 했다.
"유튜버 오태경은 연기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지금이야 제작사에서 계속 압박(?)해서 SNS를 하고 있지만, 그다지 친숙하지 않거든. 날 것 그대로를 보여야 하는지 과장되게 해야 하는지 그 선을 찾는 게 힘들었다. 고민이 들 때마다 실제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까를 생각했다. 오태경이 연기한 오태경처럼 말이다. 감독님도 빈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보며 고민하는 모습이 종종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지만 내심 고민의 흔적이 영화에 많이 묻어 있어 보였다. 게다가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를 촬영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어 보였다. 2018년 9월 지금의 반려인을 만난 오태경은 육아와 연기를 병행하며 나름 강행군 아닌 강행군 중이었다.
"촬영 막판일 때 아내가 울었다. 내가 계속 넋이 나가서 집에 들어오고, 집에 오면 계속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이니 괜찮은 거 맞냐며 걱정하더라. 솔직히 많은 작품을 했지만 가장 지독하게 연기했던 것 같다. 거의 막바지일 땐 고문당하는 기분까지 들더라. 제 모습이 너무 많이 나오기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마흔살 오태경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그래서 더욱 무섭더라.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관객분들 절반 이상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다음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