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스틸컷
BIFAN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노년의 공포
요양원에서 하나둘 치워지는 노인들의 시신이며 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노인들의 비참함은 러닝타임이 끝나도록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강한 이미지로 남는다. 그건 이와 같은 풍경이 결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노년, 그리고 곧 노년이 될 관객들의 운명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탓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자신의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 가운데 맞이할 이는 생각만큼 많지 않을지 모른다.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오늘의 세상 가운데 이 영화 속 미숙과 같이 처량하고 쓸쓸한 말년을 맞이할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옆자리에 앉은 어느 할머니는 제 또래의 다른 할머니에게 낮에 아이들을 봐주고 월에 250만원을 받는 다른 할머니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제 쓰임을 그렇게 찾지 못한 수많은 할머니와 불우하다 해도 좋을 또 다른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그 뒤를 따라 나온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면 사람이 제 자리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사회로부터 밀려나 은퇴하고도 수년이 지난 노년이 될지라도 말이다.
자식이 없거나 자식에게 챙김을 받을 수 없는, 또는 안락한 노후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쓸쓸하고 처량한 노년은 공포에 가까운 무엇이다. 그리고 <탄생>은 바로 그 공포의 소재를 더욱 선명하게 오늘의 관객에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감독은 늙으면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왔다고 전한다. 쓸모 있고 제 자리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노년을 때때로 상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2025년 내외로 초고령화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한국의 관객들이 이 영화로부터 느끼는 공포는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아주 오래도록 지속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