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1990년대 대중가요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장르 및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 명반을 현재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오늘날 명반이 가지는 의의를 되짚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신해철 < Myself > 앨범 이미지
신해철 < Myself > 앨범 이미지지구레코드
 
1991년 3월 20일, 대학가요제 출신 아이돌 신해철의 소포모어 앨범 < Myself >의 등장은 여러 면에서 대단했고 충격적이었다. 24세의 곱상한 젊은이가 모든 작업을 혼자서 다 해낸 것도 비범하지만, 무엇보다 국내 최초로 미디(MIDI)를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작법은 온전히 본인의 가치관과 철학에 따랐다. 앨범 이름 그대로, 모든 것은 '나홀로, 나 스스로, 내 힘으로' 이루어졌다.

신해철은 주체적이었다. 그것은 그가 꾸준히 지켜온 음악적 신념이자 삶의 태도였다. < Myself >는 그 철학의 시작점으로서 그의 음악관과 인생관을 동시에 말한다. 그에게 세상은 차가운 곳이었고, 그의 시선 또한 냉소적이었다. 그럼에도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연민 어린 온정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히트곡 '재즈 카페'는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화려한 신시사이저와 색소폰 사운드에 중저음의 랩으로 북적거리는 공간 속 고독하고 공허한 개인을 표현한다.

불안 속에서 되새기는 사랑과 연대

다른 20대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꼈던 그는 그 고민 또한 음악에 녹였다. '나에게 쓰는 편지'는 자기 자신을 다독인다. 안정적인 직장인이 아닌 불안정한 예술가가 된 그의 고민은 후반부의 랩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동화 속 이야기를 같이 꿈꿨으나 결국 각자의 길로 흩어진 친구들을 생각하고 물질주의적 행복에 대한 회의감을 말한다.

미래에 대한 문제로 흩어진 무한궤도를 생각하면 그가 느꼈을 불안이 더 크게 와 닿는다. 통통 튀는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인상적인 '50년 후의 내 모습'은 진지한 성찰과 위로 속에 약간의 장난기를 곁들였다. 노후연금, 사회보장으로 편하긴 할지라도 무료하게 살고 싶지는 않은 노년기의 불안을 재치있게 담아낸다.

이러한 불안 속에서 그는 사랑과 연대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미디로 리메이크해 더욱 화려해진 '그대에게'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순수하고 열렬한 감정을 고스란히 새긴 영원한 청춘의 송가이자 그의 이상주의다.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는 이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한다. 불확실한 꿈을 꾸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이를 함께하는 연인에 대한 미안함으로 이별을 고하지만, 다시 돌아올 것임을 기대하며 행복할 이상적인 미래를 그린다. 시간이 지나서야 과거 연인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고 그리워하는 '아주 오랜 후에야'는 자책의 연장선이다.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 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주오."
- 신해철 '길 위에서' 중에서.


신해철이 보여준 멋진 어른
 
 가수 신해철
가수 신해철KCA엔터테인먼트
 
꿈과 현실 사이의 고민, 차가운 사회에 대한 고찰, 그리고 따뜻한 마음씨가 합쳐진 마지막 트랙 '길 위에서'는 앨범의 정수다. 아쉬울지언정 후회는 없는 삶, 부끄럽지 않은 정직한 길, 그러한 삶을 함께 걸어갈 사람들과의 연대는 신해철이 제시하는 최선의 해답이자 그의 궁극적인 가치관이다.

신해철은 정말 그러한 길을 걸었다. 그는 자신의 소신에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었고 이를 당당하게 표현했다. 그는 계속 걸었다. 한 걸음씩 걸을수록 그를 응원하는 수많은 '그대'들이 생겼다. 그들은 그의 품에 안겨 위로받았고, 그는 기꺼이 그들을 안아주었다. 그렇게 젊은 아티스트의 패기로 만들어진 작품 하나가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위로받고 연대할 수 있는 작은 쉼터가 되었다.

2014년 10월 27일,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길의 끝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거대한 슬픔으로 기록되었다. 우리는 신해철을 음악가, 배우, DJ, 논객, 마왕 등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한다. 분명 그는 불안한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이해하고 주장하고 노래하는 멋진 어른이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 또한 불안했고 고민했던 20대였기 때문이다.

< Myself >는 그의 젊은 날에 대한 기록이자, 따스한 위로의 모음이다. 앨범을 들을 때마다, 지금도 그가 어딘가에서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다가와 진지하게 고민을 들어줄 것만 같다.
명반다시읽기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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