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1990년대 대중가요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장르 및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 명반을 현재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오늘날 명반이 가지는 의의를 되짚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드렁큰 타이거 1집 앨범 이미지

드렁큰 타이거 1집 앨범 이미지 ⓒ 엔터원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1999년 미국으로부터의 전언이다. 이 한마디는 힙합을 모르던, 무시하던, 그리고 랩 좀 섞었다고 힙합이라 떠들어 대던 이들 모두에게 보내는 초대이자 경고였다. 싹이 튼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던 한국 힙합 신(scene)에 자아 성찰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 Year Of The Tiger >는 그렇게 꾸중 섞인 의문을 제기하며 20세기 마지막 열차에 연료를 주입했다.
 
드렁큰 타이거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란 한국인 교포 타이거JK와 DJ 샤인으로 구성된 듀오다. 덕분에 이들은 선진 대중문화를 실시간으로 보고 배웠으며, 래퍼 타이거JK는 1990년대 초부터 이미 현지에서 화제에 오르고 있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미국 토종 래퍼였다(2005년 5집 이후 DJ 샤인은 탈퇴했으며, 팀은 1인 체제를 유지하던 중 2018년 10집 발매와 함께 공식적으로 해체했다.)
 
드렁큰 타이거를, 그리고 < Year Of The Tiger >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5년에 먼저 나왔던 타이거JK의 데뷔작 < Enter The Tiger >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타이거JK가 미키 아이즈, 수크람이라는 친구들과 함께 만든 솔로 앨범으로 드렁큰 타이거의 1집은 사실상 이를 재구성해 만든 계승 작품이다. 같은 곡을 그대로 쓰거나, 특별 믹스 버전을 넣는 등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리패키지 앨범에 가깝다.
 
한국의 현실
 
< Enter The Dragon >으로 한국에 진정한 힙합을 보여주고 싶었던 한 마리의 호랑이는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로 힙합 쇼크를 선사했지만, 그 후 3년이 흘렀음에도 한국의 문화 의식은 빠르게 바뀌는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잘못된 인식이 박혀 있었다. 힙합을 단순하게 랩이 들어간 음악 정도로 치부하거나, 흑인들의 저급한 문화로밖에 보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 듀스, 현진영, 업타운, 김진표 등 여러 뮤지션이 힙합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랩 록, 뉴잭스윙 등으로 힙합에 대한 면역력을 길러 줬다. 타이거JK는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DJ 샤인과 의기투합해 < Year Of The Tiger >라는 제목처럼 호랑이의 해(음력 기준)에 다시 돌아왔다. 당시 한국 힙합에 등장했던 젊은이의 패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힙합이 탄생한 나라에서 힙합을 하던 뮤지션이었으니 당연한 얘기지만, 드렁큰 타이거는 진짜 힙합을 했다. 30살을 넘긴 국내 힙합 대표작으로도 손색이 없다.
 
앨범의 한계
 
 타이거JK 1집 앨범 이미지

타이거JK 1집 앨범 이미지 ⓒ 오아시스레코드 뮤직컴퍼니

 
< Year Of The Tiger >가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특별한 지점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무시 못 할 문제 역시 지니고 있었다. 먼저 무단 샘플링 문제다. '난 널 원해'는 캄포 로(Campo Lo)의 'Black Connection'을 베꼈다. 당시 국내 음악계에서 무단 샘플링이 팽배했다 하더라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영어 가사가 너무 많다. 미국 교포였기에 영어 버전을 따로 실었지만, 한국어 버전에서도 영어 노랫말이 상당히 많다. 물론, 영어 사용이 불법은 아니다.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불편을 줄 뿐이다. 외국 가사를 바로바로 해석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여기는 한국이다.
 
'리패키지 앨범'이라 표현했지만, < Enter The Tiger > 발매 후 4년이 지났음에도 노래 구성은 재탕에 가깝다. 때문에 앨범의 유기성이 부족하다. 왬!(Wham!)의 조지 마이클처럼 드렁큰 타이거임에도 팀의 정체성보다 타이거JK의 향이 더 짙게 느껴지는 이유다. 노력의 부재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21세기에도 유효한 물음
 
1999년 이후 약 25년이 흘러 K팝 속에서 힙합은 한국 대중음악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오버와 언더로 커가는 힙합 신, 수많은 힙합 크루, 아이돌 음악과 힙합, 랩의 보편화, 대중화를 견인한 Mnet <쇼 미 더 머니>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역사가 길어질수록 확실한 이정표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왔다. 21세기에도 시대를 돌아볼 물음이 필요하다.
 
시대적 상황, 앨범의 한계, 음악적 완성도 등 여러 시점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걸 떠나서 < Year Of The Tiger >는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이 노래 하나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 곡과 이 앨범으로 '드렁큰 타이거'는 한국 힙합사에 크나큰 각인을 새겼으며, '타이거JK'는 가장 큰 기둥을 세웠다. 대한민국 음악사에 힙합이 존재하는 한 '술 취한 호랑이'들의 넋두리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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