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을 노리고 접근해 사람을 속이는 일을 종종 본다. 미인계 등 이성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부터 친구나 지인을 가장한 관계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익에 움직이는 건 자연의 섭리라 할 만하다. 종의 생존을 위하여 인간은 개체가 스스로를 가장 앞에 두도록 설계됐다. 종을 개체보다 우선하는 건 벌이나 개미 같은 종의 방식이다. 다른 개체를 희생시켜서라도 스스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인간이란 종의 생존방식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저 동물로 멈춰 있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걷고 생각하여 전보다 나은 존재로 스스로를 이끌어나갔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며, 되고 싶은 모양으로 걸어갔다. 도덕이며 가치 같은 단어는 그 오랜 노력으로부터 얻어낸 결과물이다.
 
누군가는 자기를 위하여 다른 이를 해하고, 또 누군가는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남을 속이며, 누군가는 겉과 속을 같아지게 살려 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겐 동물적 욕망이 남아 있는 법, 인간이 괴로운 이유가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를 일이다.
 
 <위선의 종말> 포스터
<위선의 종말> 포스터Jeonju IFF

호텔에서 총을 맞은 여자의 사연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프랑스 영화 <위선의 종말>은 욕망과 인간의 관계를 그린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야심 차게 소개한 이 영화는 피에르 니네이, 이자벨 아자니 등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 명성을 얻은 명배우들이 출연해 곱씹을 만한 연기를 선보인다.
 
이야기는 어느 호텔방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애인과 투숙해 있던 마고(마린 바크스 분)가 방을 찾은 중년 남성(프랑수아 클뤼제 분)의 총에 맞고 쓰러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영화는 법정과 과거 사건들을 오가며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경위를 흥미롭게 추적한다.

마고와 그의 애인 아드리앵(피에르 니네이 분)은 젊고 매력적인 남녀다. 이들은 다른 이들과 조금쯤 다른 관계인데, 그건 이들이 서로 다른 이들에게 매여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들은 소위 꽃뱀, 기생오래비로 불리는 이들로, 돈 많은 상류층의 애인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다.
 
 <위선의 종말> 스틸컷
<위선의 종말> 스틸컷Jeonju IFF
 
젊음을 탐하는 이들과 돈을 욕망하는 자들
 
아드리앵은 왕년의 명배우 마르타(이자벨 아자니 분)의 집에서 그녀의 애인노릇을 하며 산다. 엄마뻘인 그녀에게 불만족할 때도 적지 않지만, 그녀 앞에선 어떻게든 마음에 들려 노력한다. 한때는 잘 나가는 댄서였지만 사고로 춤을 추지 못하게 된 그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며 되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그런 그의 앞에 마고가 나타난다. 돈 잘 버는 늙은 남자들 사이를 전전하며 화려한 삶을 유지하는 마고는 아드리앵과 성별만 바꾼 것이나 다름없는 모양이다. 젊고 매력적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마침내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만 스스로 현재의 삶을 버릴 용기는 내지 못한다.
 
그 둘이 머리를 맞대고 짠 계획은 이들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다. 얼마씩 받고 애인 노릇을 하는 대신, 잘 나가는 사업가에게 접근해 목돈을 뜯어내자는 계획이 그것이다. 발 넓은 아드리앵이 마고에게 상류층을 잘 아는 옛 여자를 소개하고, 그녀가 다시 타깃이 될 만한 물주를 소개한다. 그렇게 골라진 사내가 현금이 많은 부동산 업자 시몬(프랑수아 클뤼제 분)이다.
 
 <위선의 종말> 스틸컷
<위선의 종말> 스틸컷Jeonju IFF
 
위선을 걷어낸 뒤 남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는 젊고 매력적인 육체에 욕망을 갖는 이들과 그들이 가진 부를 탐하는 이들, 또 서로를 속이고 이익을 독점하려는 이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여주며 함락되기 쉬운 인간의 본성을 살핀다. 옛 영화를 잊지 못하는 이, 현재 가진 것을 가벼이 여기는 이, 제가 갖지 못한 것을 우러러보는 이들이 묶여 삶을 추하고 괴롭게 만들어 간다.
 
반전과 반전이 거듭되는 영화는 범죄물로 나름의 흥미를 자아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보았을 싱싱한 육체에의 매혹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낸 부분들도 보는 이의 관심을 잡아끈다. 얼핏 막장영화 같은 줄거리는, 그러나 우리네 인간사가 죄다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니냐는 물음으로 이어지며, 인간이란 얼마나 나아지기 어렵고 무너지기 쉬운지를 일깨운다.
 
가만 보면 <위선의 종말>이 보이는 건 위선이 걷힌 인간의 진면목이며, 한없이 추락할 수 있는 어느 나락의 지점인 것도 같다. 영화를 보고 나와 위선이 인간을 더 나아지게 하는지, 혹은 못하게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일 게 분명하다. 막장이라 여겼던 곳에서 캐낼 것이 남았음을 아는 것, 그것 또한 영화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위선의 종말> 스틸컷
<위선의 종말> 스틸컷Jeonju IFF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위선의 종말 전주국제영화제 JIFF 피에르 니네이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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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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