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0만 구독자를 보유했던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찐따와 너드는 다르다 (수강생 : 뷰티풀너드)’ 썸네일.

약 300만 구독자를 보유했던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찐따와 너드는 다르다 (수강생 : 뷰티풀너드)’ 썸네일. ⓒ 피식대학


피식대학의 마지막 영상이 올라온 지도 약 한 달이 지났다. '영양군 비하' 논란 이후 일주일 만에 올린 사과문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 그간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피식대학의 코미디는 원래 좋은 코미디와 거리가 멀었다. <피식쇼> <나락퀴즈쇼> <메이드 인 경상도> 등 그들이 만드는 콘텐츠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존재했음에도 쇼는 끝나지 않았다. '너드(Nerd)'들의 음침한 사상을 양지로 꺼낸 콘텐츠 <너드학개론>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젠더의 관점에서 그러하다.

사회부적응 남성 내부에서 또다시 반복되는 서열화
 
'너드'는 미국에서 사용되는 별칭으로, 흔히 '지능이 뛰어나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어로는 '찐따'에 가까운 개념이다. 피식대학의 멤버 정재형은 남중, 남고를 졸업하고 컴퓨터공학과에서 공부했다며 자신을 진정한 '너드'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사회 부적응자 내에서도 계급을 나눈다. '너드'가 1위, '오타쿠'가 2위, '찐따'가 3위, '찌질이'가 4위라니 정재형은 그중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셈이다. 정재형은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것', '자존감이 낮은 것', '눈치가 없는 것'이 이 네 가지 부류의 공통점이라 소개한다.

이들은 남성 사회부적응자가 이러한 단점을 갖게 된 원인은 대부분 '학교폭력'에 있다고 말한다. <너드학개론>에 패널로 나왔던 코미디언 최제우는 "개그맨의 꿈을 갖게 된 건 어쩌다 한 번이 커요. 일진이 웃어줬던 그 순간만이 나의 도파민이에요"라고 말했다. 코미디언 전경민도 "그게 진짜 살아남기 위한 코미디 아니었나요? 못 웃기면 내가 맞는다"고 학교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놨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은 학교폭력의 핵심 원인인 '남성 서열 내 도태'에서 벗어나지 않고, 또다시 서열화를 반복한다. 그것도 이미 성인이 된 학교폭력의 피해자, 혹은 사회부적응자 내부에서 말이다.

'찐따' 남성을 이해해야 하는 여성 
 
<너드학개론>의 후속편인 <너드학개론: 사랑>에서는 사회부적응 남성들의 연애관을 다룬다. 이 콘텐츠에서 유튜버 곽튜브(곽준빈)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대학교 갈 때부터 사실은 간호대를 가려고 했어요. 순전히 연애를 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나란 사람이 연애를 할 수 있을까'란 감정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어떤 여자가 나한테 뽀뽀를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가지고 그렇다면 기회가 많은 여대를 갈 수는 없으니까 '그나마 좀 여자 비율이 높은 과를 갈까?'를, 대학교를 되게 그 비율을 고심해서 지원을 했어요."

대체 그에게 여성이란 어떤 존재일까. 자기 자신조차 자신을 사랑하지 않지만, 자신을 사랑할 여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심리가 기이하다. 이 콘텐츠에 나오는 자칭 사회부적응 남성들은 자신들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못난 자신을 사랑해 줄' 여성을 찾는다. 그들에게는 변화의 의지가 없어 보였다. 심지어 정재형은 "찐따는 내 몸에 새긴 문신 같은 것"이라며 남성 사회부적응자의 개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 버린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찐따가 사랑할 때 (수강생 : 빠니보틀, 곽튜브, 뷰티풀너드)’ 속 한 장면.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찐따가 사랑할 때 (수강생 : 빠니보틀, 곽튜브, 뷰티풀너드)’ 속 한 장면. ⓒ 피식대학


스토킹은 여자탓… 문제의식 없는 '찐따'들

콘텐츠 댓글에는 "피해 여성들 자리도 만들어주세요. 제가 피해자예요. 하나같이 안 당해본 게 없어서 소름이 돋았어요", "찐따 고백공격 안 받는 법 1. 웃지 않는다(냉소적인 표정 유지) 2. 답장 24시간 후에 하기 3. 'ㅋㅋ' 쓰지 않기 4. 이모티콘 쓰지 않기" 등의 반응이 달렸다. 원치 않는 집착을 받아본 이들이라면 이 댓글들을 웃으며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너드학개론: 사랑> 편은 남성 '찐따'들의 스토킹 자백 증거물에 가깝다.

이 콘텐츠에서 강사 정재형은 스토킹의 원인이 여성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평소에 애교가 많은 타입인 여성을 찐따가 만나면, 찐따는 '나무꾼 좀비'가 됩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의미의 '나무꾼'과 거절해도 거절해도 끈질기게 돌진하는 '좀비'가 합쳐진 게 바로 '나무꾼 좀비'예요." 사회부적응 남성이 상대 여성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그녀가 '애교스럽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열 번 찍는 나무꾼이 스토킹 범죄자로 정의된 지도 이미 오래다. 스토킹처벌법 제2조 1항에서 정의하는 '스토킹 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집착 등을 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거절해도 거절해도 계속해서 쫓아와 고백하는 행위가 어떻게 스릴러가 아닌 코미디로 표현될 수 있을까.

코미디언 최제우가 이어 "저 한 여자에게 10번 고백했었습니다. 진짜로"라며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자 그 옆에서 패널 곽튜브는 "근데 아직 안 늦었다"라며 재고백을 독려한다. 그들이 자신의 스토킹, 집착을 하나의 사랑 표현이라 말하며 웃을 수 있는 것은 사회부적응 남성이 모두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는 불쾌한 확신에서 나온다. 여성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댓글을 남겼더라도 이러한 콘텐츠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웃자고 하는 코미디인데 왜 죽자고 달려드냐"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칭 '코미디언'이라는 남성들이 가진 권력이다.

사회부적응 남성과, 스토킹 피해 여성 모두를 비하하는 이러한 콘텐츠가 그럼에도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찐따'들의 자기비하가 새로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인기를 끈 것이 아니라 논란을 이끈 것인데 피식대학이 조용히 넘어간 것일까. <너드학개론>은 '찐따'로 살아가기를 선택하고, 그 음침한 사상을 당연하다 여기는 남성들의 자기 위안에 가깝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자기 위안은 주위 여성들에게 현실적인 피해를 준다. 본래 피식대학의 추락은 예정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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