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8월 1일 오전 12시 1분, 24시간 음악방송국 MTV가 개국 첫 방송을 송출했다. 역사적인 첫 번째 송출 영상은 영국 뉴웨이브 그룹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뮤직비디오였다. 제목부터 너무나 상징적인 첫 방송 이후 팝 음악은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는 것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는 MTV의 대성공과 함께 음악산업 성공의 지렛대이자 대중문화 전반에 거대한 파급효과를 던지는 소재가 되었다. 버글스의 노래 제목은 무척 상징적이었지만 음악산업의 경향이 변화했을 뿐, 음악이 사라지진 않았다. 뮤직비디오의 짧은 시간 내에 시선을 잡아끌어야 하는 호소력은 당시에는 장편영화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 또한 컸지만, 영화 역시 영향을 받긴 했으되 사라지진 않았다. 그리고 1980-90년대 MTV 뮤직비디오 계의 기린아로 떠오른 일군의 감독들은 이후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 영화의 문을 두드렸다.
 
지금 우리에겐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횡단하며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숱한 거장 감독들이 그로부터 출발했다. <세븐>과 <패닉 룸>, <소셜 네트워크>의 데이빗 핀처는 '팝의 여왕' 마돈나의 전성기 뮤직비디오를 도맡았고, <존 말코비치 되기>와 <그녀>의 스파이크 존스 vs <이터널 선샤인>의 미셀 공드리는 1990년대 MTV 최고의 라이벌 관계로 무수한 걸작을 남겼다. 그리고 조나단 글레이저가 또 다른 봉우리의 하나로 존재했다. 라디오헤드나 블러, 매시브 어택 같은 당대 정상급 아티스트 뮤직비디오를 담당했던 그의 대표작은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한 그룹 자미로콰이의 대표곡 "Virtual Insanity"이다. 움직이는 벽과 상징적인 장치들, 사회비판 색채가 짙은 가사와 인공적인 실내공간에 설명 없이 등장하는 수수께끼 같은 배경들은 사반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 봐도 참신하고 새롭다.
 
그런 성공을 거둔 후 조나단 글레이저 역시 영화계로 전입한다. 그리고 2014년 선보인 <언더 더 스킨>으로 영화감독 경력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영화감독으로 상당한 비평적 성공을 거둔 뒤 10년간 그의 장편 신작은 아무 소식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어떤 이들은 비주얼 이미지를 뽑아내는데 탁월한 실력을 뽐내지만, 서사가 부족하다는 한계를 지적받곤 하던 여러 선례를 떠올리기도 했다. 좋은 시나리오 각본을 만나지 못하면 빈약한 이야기 때문에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그러던 중 10년만에 조나단 글레이저의 신작이 돌아왔다. 그리고 극찬과 호평을 독식하기 시작했다. 직접 확인한 영화는 형언하기 힘든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과연 대체 내가 본 게 무엇일까 자문자답하게 될 만큼.
 
희생자를 전시하지 않는 홀로코스트 영화의 탄생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온통 시커먼 화면이 한참동안 계속된다. 익숙한 로고 몇 개가 떠오른 뒤 화면은 성질 급한 이들이라면 영사사고 아니냐 의심할 정도로 오랫동안 암전 상태로 계속된다. 기다리고 있자니 희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귀를 쫑긋 세우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면을 응시하며 청각을 집중해본다. 단란한 가족들, 어린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노는 소리다. 한참 검은 화면에 그렇게 소리만 멀리서 전해진다. 마침내 참고 기다렸던 관객들에게 화면이 선명해진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살풍경할 만큼 깔끔하게 잘 관리된 근사한 저택과 정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그리고 자식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어른들이다.
 
이들이 거주하는 교외의 저택은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이 상상하는 이상형에 가깝다. 남편은 공무에 바쁘지만, 자녀들과 함께 시간이 나면 근처 강변으로 가 수영이나 낚시를 즐기고 밤에는 잠을 못 이루는 어린 딸을 위해 동화를 읽어주는 자상한 아빠다. 아들들에게도 책임감과 규칙을 일깨우고 말 타는 법을 가르치거나, 동식물에 대한 지식을 전수한다. 말끔한 복장을 늘 준수하며 직장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지만, 부하직원들에게도 칭송과 신뢰를 받는 모양새다. 아내는 가정부와 보모, 정원사를 데리고 정원과 온실을 돌보며 다섯 자녀 양육과 집안 살림에 열심이다. 갓 태어난 막내 외에는 다들 건강하고 씩씩하게 딱히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자라나는 중이다. 저택 내부는 물론 외부도 잘 관리되고 있는 데다 동네 날씨도 온화하다. '이상적인 가정생활'의 텔레비전 광고 같은 풍경인 셈이다.
 
남편은 직장은 물론 자택에서도 종종 업무를 본다. 업무 회의를 하러 멀리서 손님들이 방문한다. 산뜻하고 정갈한 다과 준비를 마친 안주인에게 인사를 전한 손님과 남편은 긴요한 회의에 들어간다. 관객에게 전달되는 화면 속 내용은 충격적이다. 그제야 관객은 설마 했던 이곳의 실체를 확인하고 만다. 양복과 제복으로 잘 차려입은 그들은 새로 도입을 고려 중인 소각로 설비에 대해 의논하던 중이다. 24시간 가동할 수 있도록 한쪽에선 1000도가 넘는 고열을, 다른 한쪽에선 반대로 급속 냉각되어 40도까지 떨어져 인부가 들어가 작업할 수 있을 정도로 순환기능을 탑재한 장비다. 남편은 획기적인 신기술에 만족하며 특허 신청도 하고 즉시 예산과 소요물자를 챙기려 한다. 그 소각로는 '사람'을 태우기 위한 용도다.
 
반신반의하던 관객에게 확정판결처럼 화면 속 공간의 전모가 마침내 드러난다. 이곳은 바로 아우슈비츠 절멸수용소, 남편은 그곳을 설계하고 거의 전 기간 소장으로 재직한 루돌프 회스, 무장친위대(SS) 중령이다. 근사한 전원주택은 수용소장의 관사였고, 그의 단란한 가족들은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다 알고 있었다. 담 하나 사이로 수백만을 '처리'하는 학살공장과 이상적인 나치독일 가정이 이웃한 것이다. 회스의 아내는 정원사를 독려해 경계가 되는 담벼락이 눈에 덜 보이도록 포도 넝쿨과 장미꽃을 더 높고 촘촘하게 드리우라 지시한다. 처음엔 그저 생활 소음으로 들리던 배경음은 점점 윽박지르는 간수의 고성과 공포에 질려 신음하는 수용자들의 비명으로 분간되기 시작한다.
 
'악의 평범성'을 구현하기 위한 치밀한 장치가 진가를 발휘하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영화 속 회스 가족은 스스로 자화자찬하듯 이상화된 '동부 독일인' 가정으로 손색이 없다. 남편이 더 많은 수용자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학살하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맹활약한 아우슈비츠 '절멸'(강제노동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제거하는 게 목적이다) 수용소가 상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게 해준 것처럼, 아내 역시 허허벌판에 자녀들을 데리고 이사를 온 뒤 남편의 임기 내내 사택을 짓고 가꾸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상적인 '주부'의 전형이라 해도 좋을 법하다. 아내는 자부심이 넘친다. 정원에는 온갖 꽃과 화초가 무성하고, 온실까지 갖춰져 사시사철 채소와 과일, 심지어 양봉까지 해낸다. 작지 않은 저택 내부는 실용적으로 모든 동선과 설비가 잘 조성되어 있다. 오랜만에 딸을 찾아온 회스 중령의 장모는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부와 권력을 동원해 완성된 관사 저택에 경탄할 따름이다.
 
회스의 아내는 스스로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 칭한다. 그의 남편은 이곳에 수용된 수백만 수용자의 생명을 쥐도 새도 모르게 '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권력자이고, '여왕'인 자신 역시 그 권력을 나눠서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그가 자신의 모친과 나누는 정원에서의 대화는 정답고 평온해 보이지만 그 내용을 유심히 듣고 있자면 당시 나치독일의 이념과 권위주의에 맹종하던 평범한 독일인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재현한 모양새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다. 이웃이던 유대인의 흉을 보며 그 집 커튼이 탐이 났는데 다른 이웃에게 경매로 넘어가서 아쉬웠다며, 어쩌면 그 유대인 이웃이 지금 저 담장 너머에 있을지 모른다며 모녀는 킥킥 웃는다. 의좋은 형제가 이층침대가 있는 방에서 잠들기 전, 형은 손전등을 켜고 장난감을 만지작거린다. 그런데 형상이 좀 특이하다. 카메라가 그 장난감을 비춘다. 틀니 형상이다.
 
아우슈비츠의 실상을 아는 이들이라면 순간 오싹해질 테다. 가성비와 효율성에 극도로 집착하던 나치독일은 가스실에 들어갈 운명이던 유대인과 전쟁포로, 성적 소수자와 정치범들의 금품과 의복은 물론 그들의 신체 중 값이 나가는 금니 같은 것도 철저하게 분류 및 수거했던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 그저 지나가는 것 같은 몇 장면에서 바로 그 실체를 언뜻 비추는 것이다. 구김살 하나 없이 밝고 건강한 아이들은 얼마나 자세히 아는지는 몰라도 그들 부모가 저지르는 전쟁범죄에 대해 별다른 의심 한 점 없어 보인다. 온갖 인종차별 논리를 내세우지만 결국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한 선동과 자원 착취가 본질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셈이다.
 
영화의 제목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 역시 나치독일이 정권 수립 이전부터 내세웠던 '위대한 독일 민족'을 위한 '레벤스라움', 즉 '생활권'을 동방에 대한 침략으로 얻기 위한 국가이념의 발로와 연결된다. 마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북아메리카 선주민을 내쫓고 땅을 빼앗는 게 '백인의 의무'라 자처했던 것과 흡사하다. 중세에 무장기사단을 동원해 동방 슬라브와 발트 민족의 땅에 쳐들어가 '동방식민운동'을 했던 시대착오적 역사를 내세운 나치독일은 '열등 민족'의 동방을 정복해 그들을 노예화하고 독일인 이주를 통해 식민지 지배체제를 확립하려 했다. 유대인 수용자와 주변의 폴란드인들을 부려가며 저택에서 귀족 같은 생활을 누리는 회스 가족이 바로 그 이상적인 동부 독일인의 모델인 것이다. 열등하다고 규정한 이들을 짓밟고 학살하는 게 정당하고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 나눠주는 나치독일의 달콤한 떡고물이 회스 가족의 의식 속에 깊숙하게 주입되어 있음을 영화는 시종일관 증명해낸다.
 
관객은 주인공 가족과 얼마나 다르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그런데 이 가족의 영원무궁할 것 같은 행복에 위기가 닥친다. 유대인을 학살하고 폴란드 영토 한가운데를 차지해 세운 수용소는 광기의 산물인 동시에 착취와 생산의 기지다. 독일 유수의 대기업들이 군수산업에 필요한 자원과 노동력을 할당받아 아우슈비츠 주위에 공장을 운영하는 중이다. 전범 기업 문제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대목이다. 회스 중령은 너무나 그런 업무를 열심히 잘 처리하는 바람에 승진하면서 아우슈비츠 소장직에서 전보 발령을 받는다. 하지만 회스도, 아내도 아우슈비츠를 떠나고 싶지 않다. 자신들이 하나부터 끝까지 쌓아 올린 그들만의 '왕국'을 내놓기 싫은 것이다. 금슬이 좋던 부부는 거세게 언쟁을 벌이고 부부싸움을 치른다. 급기야 아내는 남편에게 '기러기 아빠'가 되길 종용한다. 자신과 아이들은 이곳 이상적인 환경과 집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풀 죽은 남편은 단신으로 부임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왕국을 되찾기 위해 부부가 일심동체처럼 노력한 끝에 결국 복귀하고 만다. 회스 같은 유능하고 부지런한 소장의 활약이 필요한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실력을 인정받아 거대한 프로젝트에 영광스럽게도 자신의 이름이 붙기까지 했다. 사명감에 불탄 회스는 이제 축하 연회장에서도 함께 어울려 즐기지 않고 연회장에 가스실을 설치하면 어떤 실무소요가 필요할지 측량하는 경지에 도달하고 만다. 정작 일상에선 수용소 담벼락 환경미화를 위해 심어둔 라일락 관목을 꽃을 따다가 훼손하지 말라는 세심한 훈령을 내리고 반려견과 애마에게 정겨운 말을 건네는 회스다. 그는 공공연히 더럽고 추한 것,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운 것에 질색하는 존재다. 그런데도 수백만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유능하고 헌신적인 중간관리자로서 최선을 다한다. 그런 모순적인 행태가 조금씩 인물과 주변에서 엇박자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공식적으로 단 1명의 수용자 죽음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회스 가족의 도란도란 화목한 일상이 도입부에서 시커먼 암전과 함께 오직 소리로 상상하게 했던 것처럼, 수용소장으로서 무수한 비명과 즉결처리는 회색의 안개 가득한 풍경으로만, 혹은 겉보기엔 그저 잘 정비된 공장 굴뚝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로만 추정해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이미 영화의 배경과 소재를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색다른 관점에서 홀로코스트와 나치독일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어려운 숙제를 더없이 효과적으로 성취해버린다.
 
너무나 평범하고 정이 돈독한 회스 가족의 시종일관 진행되는 일상 풍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실제 1943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이한 착시를 관객에게 던진다. 시나리오에 따른 이야기 전개라기보다는 일종의 '재연물' 성격으로, 회스 가족의 삶을 상당한 수준의 고증으로 되살려내지만, 굳이 루돌프 회스의 자서전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평범한 나치독일 국민'들의 의식과 일상을 동시대적으로 엿보게 만들려는 접근법이다. 실제로 우리가 오늘날 영화나 사진, 드라마로 접하는 나치독일 강제수용소 이미지는 그나마 '강제노동수용소'의 것이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한다. 이곳들은 죽을 때까지 노동력을 착취하는 게 주목적인 곳이라 그나마 사진이나 생존자가 남은 경우다. 아우슈비츠 같은 '절멸' 수용소는 애초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일체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회커 앨범'의 초현실적 기괴함을 고스란히 재현하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다른 유사한 절멸수용소는 모두 치밀하게 은폐되었지만, 아우슈비츠는 마지막까지 역할을 소화하던 중 전황의 급변으로 미처 다 파괴하지 못한 덕분에 극히 희귀한 증거와 사진이 남을 수 있었는데, '카를 회커 앨범 (Höcker Album)'이라 불리는 사진첩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간수 역할을 맡던 친위대 간부가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한 이 수백 장의 사진들에는 수용소 내부 참상이나 수용자들의 실상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전후 전범 재판 등으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려져 있다. 그런 생지옥 현장에서 나치독일 관계자들은 마치 MT라도 온 것처럼 화기애애하게 친목 행사를 벌이고, 들과 강변으로 야유회를 다니며 활짝 웃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가스실과 소각로는 24시간 밤낮 가리지 않은 채 가동되고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나치독일의 수많은 전범들이 마치 평범한 탁상행정 공무원처럼 그저 시켜서 했을 뿐이라는 증언으로 일관했던 것을 기억한다. 루돌프 회스는 그중에서도 성실하고 근면한 모범 공무원의 표본 같은 존재로 영화 속에서 그려진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잔인한 폭력이나 원초적 유혈에 눈살을 찌푸리는 존재였다고 한다. (이는 나치 친위대의 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힘러도 동일했다) 동물을 사랑하고 여성에게 친절하며 자연보호에 관심을 기울이던 이들 나치 관계자들은 그런 여린 심성으로 잘도 수백만을 학살해내고 말았다. 그릇된 이념과 권력에 대한 맹종, 타인의 것을 빼앗으려는 욕망이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내면의 괴물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명 높은 루돌프 회스 소장과 그의 가족을 지극히 평범한 모범가족으로 재현해버린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놀라운 도전과 성취는 이스라엘의 패악질로 인해 그 역사적 가치가 퇴색해버린 듯 이해되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새로운 단계의 성찰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위력을 선보이고 만다.
 
이 영화가 공개되고 수많은 수상의 명예를 안았지만, (자신도 유대계 혈통인)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지금 현재 가자 지역에서 유대인 국가가 행하는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 덕분에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지만, 감독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그저 현란한 뮤직비디오 명장으로 취급되던 조나단 글레이저는 자신의 장기를 사회적 발언에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결합시킨다. 더없이 화려하고 치밀한 영상 문법으로 서사를 펼쳐내고 선보이는 건 엄청난 결기의 덩어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초지일관 정교하게 '아우슈비츠의 평범한 일상'을 재연하는 공들인 장치들은 그저 몇몇 괴물들이 저지른 '예외'적 비극이 아니라 언제건,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하거나 평범한 소시민들이 광기에 물들 수 있다는 교훈을 깊숙이 관객의 폐부에 찔러넣는다. 그 정수는 근래 체험한 가장 정교하고 인상적인 마무리의 충격으로 완결된다. 과거를 흘려보내는 안일한 태도로 홀로코스트에서 우리는 결코 탈출할 수 없다.

<작품정보>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4│영국, 폴란드, 미국│드라마/역사/전쟁
2024.06.05. 개봉│105분│12세 관람가
연출 조나단 글레이저
출연 산드라 휠러(헤드비히 회스 역), 크리스티안 프리델(루돌프 회스 역),
다니엘 홀츠베르크(게르하르트 마우러 역), 사샤 마츠(아르투어 리베헨셸 역),
랄프 헤르포트(오스발트 폴 역)
원작 마틴 에이미스 <The Zone of interest>
수입 찬란
배급 TCO㈜더콘텐츠온
공동제공 소지섭, 51k
 
2023 7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2023 94회 미국비평가협회상 국제영화 톱5
2023 49회 LA비평가협회상 작품상/감독상/음악상
2023 36회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음향상
2023 44회 보스턴비평가협회상 감독상/각색상/외국어영화상
2023 36회 시카고비평가협회상 외국어영화상
2024 96회 아카데미시상식 음향상/국제장편영화상
2024 58회 전미비평가협회상 감독상
2024 28회 새틀라이트시상식 국제영화상
2024 44회 런던비평가협회상 작품상/감독상/기술공로상
2024 77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영국)/외국어영화상/음향상
2024 35회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FIPRESCI) 각본상
존오브인터레스트 조나단글레이저감독 산드라휠러 크리스티안프리델 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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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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