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유어 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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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 Me By Your Name'은 영화 제목이자 대사다. 나를 부를 때 내 이름 말고 네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요청은 이름 부르기의 끝판왕이다. 이름 부르기는 사랑의 본질이다. 극 중 대사는 하나의 이름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나도 너를 내 이름으로 부를게(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는 특별한 방식의 상호 호명이다.
이 특별한 호명 방식에, 엘리오와 올리버(아미 해머)가 서로의 이름을 교환해 존재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됐다는 흔한 해석을 적용해선 안 된다. 너를 나로 호명하는 건 내가 나를 사랑하듯이 너를 사랑하겠다는 의미이다. 자기애만큼 강한 사랑이 없기에 관점에 따라 최고의 사랑 고백이지만, 동시에 자기 사랑을 잃어버리면 상대에 대한 사랑 또한 무너질 수 있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에 그치지 않고, "나도 너를 내 이름으로 부를게"에 이른 데에 유의해야 한다. 겉보기와 달리 자기중심적 관계 형성이다.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리면 이런 사랑의 위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엔딩에서 엘리오를 향한 올리버 사랑의 좌초는 "나도 너를 내 이름으로 부를게(I'll Call You By Mine)"에서 기인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변경인지,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손쉬운 타협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올리버인 엘리오를 올리버가 사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영화가 그렸듯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나도 너를 내 이름으로 부를게"가 매혹적인 사랑의 형식이긴 하다. 원론적으로 원래 더 나은 사랑이란 건 없다. 아마 더 진실한 사랑은 네 이름으로 너를 부르며, 내가 투영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바꾸려 들지 않고 사랑하는 방식에서 찾아질 가능성이 크다. 다른 종류의 사랑이긴 하나, 마지막에 어머니가 엘리오를 그의 이름으로 부르는 장면은 더 진실한 사랑의 예에 해당한다.
어머니가 엘리오의 이름을 부르며 영화를 끝낸 것에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좋은 감각을 엿볼 수 있다. 감정의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안정과 위로를 전하는 행위로, 엘리오의 정체성을 따뜻하게 상기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여전히 사랑받고 있으며, 그 자체로 충족적인 존재라는 걸 호명을 통해 알려준다.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해주었다면, 어머니의 호명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자기 삶과 정체성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운다. 엘리오가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상징적인 순간이다.
퀴어동화를 통한 보편적 사랑의 탐색
2017년 개봉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안드레 아치먼의 동명 소설을 구아다니노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으로, 사랑과 욕망, 인간 존재에 관한 탐구를 담았다. 1980년대 초반 태양이 내리쬐는 이탈리아 북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17세 소년 엘리오와 그곳을 연구 작업차 방문한 24살 대학원생 올리버 사이의 여름날 로맨스를 다뤘다. 서사의 감정적 깊이와 미묘한 사랑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동성 간의 사랑을 그리면서 금단의 영역을 설정하거나 비극으로 묘사하지 않고 감정의 진실성과 순수함에 초점을 맞추었다. 퀴어 로맨스에서 흔히 등장하는 외부적 갈등과 사회적 압력 대신 두 사람 내면의 갈등과 감정의 흐름에만 집중한 게 이 영화의 특징이다. 보편적 사랑의 경험을 탐색하면서도, 퀴어 로맨스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동화처럼 그렸다. 퀴어동화적 성격은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이자 현실성과 관련하여 비판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영화 엔딩에서 올리버에 의해 잠깐 언급되듯 엘리오의 부모를 현실에서 찾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배경인 1980년대 초반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사랑, 진리의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