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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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차세대 기대주 감독 미야케 쇼의 영화 <새벽의 모든(夜明けのすべて·All the Long Nights)>에는 사건이 없다. 남녀 두 주인공이 영화를 거의 끌어가는데 로맨스도 없다. 물론 보기에 따라 사건이 있고 로맨스가 있지만, 영화적 클리셰 목록에는 안 보이는 사건이자 로맨스이다. 남성과 여성인 인간의 관계 맺음과 소통, 그리고 상호 위로가 있다.
<새벽의 모든>은, 애매한 장르이지만 예술영화이다. 예술영화이기에 사건과 로맨스 없이 구성이 가능했을 것이다. 제목이 흥미롭다. 원제는 '새벽의 모든 것'으로 봐야 할 듯한데 한국어는 '새벽의 모든'으로 여백이 있게 번역했다. 새벽을 뜻하는 여러 일본어 단어 가운데 '夜明け(일본어 발음으로 요아케)'을 선택한 게 재미있다. '夜明け'은 새벽이란 뜻이지만 단어조성에 대조를 담았다. 즉 '夜(야)'와 '明(명)'은 개념상 반대이고 상극이다. '夜'가 있으면 '明'이 없고, '明'이 있으면 '夜'가 없다.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이 함께 있으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새벽은 가능성이다. 영화의 대사에 나오듯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새벽은 가능성의 영역이다. 가능성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따라서 한국어 제목은 "새벽의 모든 가능성"을 시사한다. 물론 관객은 '가능성' 자리에 원하는 다른 단어를 집어넣을 수 있다.
영어 제목은, 원래 제목의 감성을 살리지 못했다. 새벽이 오기 전, 혹은 아침이 오기 전의 밤에 집중했다. 영어 제목(All the Long Nights)은 원작의 정서를 담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긴 밤'이라는 시간적 구속에 집중하는 느낌을 준다. 동시에 이 제목은 나름의 초점으로 영화의 주제를 드러낸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이 마주한 긴 시간은 일종의 '어둠'을 상징하며, 그 어둠은 각자에게 존재하는 고립감을 반영한다.
어둠을 겹친다고 어둠이 더 깊어지지는 않는다. 두 사람의 어둠이 겹쳐짐으로써 어쩌면 각자의 몫이 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 하나의 어둠에 두 사람이 깃들였으니 그렇게 계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림자처럼 각자의 어둠을 겹치려면 두 사람이, 두 사람의 고통이, 그리고 두 사람의 마음이 겹쳐져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에는 사건과 로맨스가 없는 것처럼 해답도 없다. 모든 미묘한 순간에서 빚어지는 소통의 부재와 힘겨운 소통의 개시를 통해 관객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의미를 찾게 된다. 사건 없는 영화에서 스며 나오는 감성과 여운은, 관객에겐 그것이 하나의 사건이다. 스크린 내의 사건 부재는 스크린 밖에서 실현된다. 보이지 않은 사건 내부의 본질적 사건에 다가갈 것을 관객에게 요구한다.
<새벽의 모든>은 사건의 부재를 사건으로, 로맨스의 부재를 관계의 본질로 드러내며, '새벽'이라는 시간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실은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관계
<새벽의 모든>은 눈에 보이는 로맨스나 극적인 사건 없이 남녀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미야케 쇼 감독은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공유하며, 사랑이 아닌, 사랑이 아닌 것이 아닌, 우정 혹은 그 이상의 특별한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이 영화는 남녀 관계에 관한 영화적 상투성을 탈피하며, 그들이 함께 겪는 고통과 고통의 공감을 통해 새로운 관계의 지평을 제시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영화에서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없다. 대신 두 인물은 자신만의 고독과 불안 속에서 상대의 고독과 불안의 냄새를 맡고는 서로에게 다가간다. 삶에서 겪는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며 위로를 주고받는다. 표면적으로 우정이지만, 단순한 친구 이상의 감정이 깃들어 있다.
'사랑과 우정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포착한 것에 이 영화의 성과가 있지는 않다. 연인과 친구 사이라는 수없이 반복된 남녀관계의 기존 틀이 아닌, 인간 사이의 공감과 유대를 말한다. 따라서 한 달에 한 번 월경전증후군(PMS) 때문에 짜증을 억제할 수 없게 되는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 모네)와 공황장애를 겪는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 사이에 인간적인 접촉만이 표현되도록 감독이 애를 썼다.
'고통의 공감'은 이 영화의 중심 테마다.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겪는다. 그들이 함께하면서 각자의 고통이 비로소 서로의 언어로 번역된다. 말이 개입하지 않는 이 과정에서 서로의 상처를 바라보고 공감하기에, 로맨스의 등장이 오히려 거북할 수 있다. 사랑과 우정을 넘어서 인간적인 연대와 공감의 관계를 구축해 나간다.
<새벽의 모든>은 이처럼 전통적인 로맨스 영화나 사건 중심의 서사 구조와 다른 길을 택했다. 이해와 공감이 잔잔하게 영상언어로 그려진다. 해가 뜨기 전의 어둠이 가장 깊다고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가장 정직하게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극적인 만남과 아리는 이별이 없다. 새벽 전에 함께 경험한 어둠은 두 사람의 가슴에 나직하게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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