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에이리언' 시리즈에 속하는 작품이다. 1979년 리들리 스콧의 연출로 첫선을 보인 '에이리언'은 '에이리언 2'(1986년), '에이리언 3'(1992년), '에이리언 4'(1997년)로 이어지며 SF 생존 스릴러로 자리를 잡았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특별한 작품이 될까

'에이리언' 후속작은 편의상 2~4로 번호를 매겼을 뿐 원제에는 숫자가 들어가지 않고 미세하게 다른 표현을 썼다. 1~4편을 모두 시고니 위버가 주연한 반면 연출은 리들리 스콧, 제임스 카메론, 데이비드 핀처, 장 피에르 주네 순으로 각기 다른 감독이 맡았다. 한국어 표기법(에일리언)과 다른 '에이리언' 표기를 고수하는 등 여러모로 소문난 시리즈이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21세기 들어 프리퀄로 선회해 리들리 스콧이 다시 감독을 맡아 '프로메테우스'(2012년), '에이리언: 커버넌트'(2017년)'를 선보였고 2024년에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개봉했다. 21세기에 제작된 세 편은 '에이리언' 다음에 명기한 부제로 구분되는데, 모두 해당 편에 등장하는 우주선 명칭이다.

     '에이리언: 로물루스'
'에이리언: 로물루스'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1편의 시대배경인 2122년과 2편의 2179년 사이, 2142년을 다룬다.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 커버넌트'와 같은 프리퀄이 아니지만 극중 시점상 속편 또한 아니다. 굳이 따지면 '미드퀄'로 보아야 하는데, 시간이 흐른 뒤엔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에이리언 1.5'로 함께 적을지도 모르겠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시리즈에 속하지만, 나머지 6개 영화를 모르고 봐도 감상에 지장이 없다. 물론 전작들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긴 하겠다. 인간에게 친숙하지 않은 지구 밖의 낯설고 고립된 공간에 던져진 주인공이 무시무시한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여 맞서 싸운다는 게 '에이리언' 시리즈의 공통적 설정으로, '에이리언: 로물루스'에도 관철된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압도적 위력의 크리처에게 쫓기는 공포와 긴박이 기본설정이라면 캐릭터와 디테일의 차이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시리즈 전체를 관람한 관객을 꼭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제작진이 통일성을 유지한 채 차별성을 구현하려는 고민이 깊었을텐데,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 이런 내용을 찾아보는 게 부가적인 재미이지 싶다. 물론 전술하였듯, 그냥 이 한 편에만 집중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다.

공통의 전제, 신선한 아이디어?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팬인 페데 알바레즈 감독이 리들리 스콧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시작됐다. "'에이리언'에 신선한 관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는 리들리 스콧은 페데 알바레즈의 아이디어에서 가능성을 엿봤다. 그 아이디어가 리들리 스콧을 사로잡으며 각본 작업을 거쳐 영화로 결실을 보게 된다.

페데 알바레즈는 '에이리언 2' 중 식민지의 일꾼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본편에서는 삭제된 장면을 통해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 생각에서 출발해 1편과 2편 사이의 시점에서 이뤄지는 '에이리언'이 구상됐다. '에이리언: 로물루스'에는 시고니 위버가 보여준 강인한 여전사 리플리와 전혀 다른 면모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리플리나 프리퀄의 등장인물들과 같은 전문 지식을 갖춘 노련한 승무원들이 '에이리언: 로물루스'엔 안 나온다. 웨이랜드 유타니가 개척한 식민지 행성에서 자란 청년들이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식민지를 탈출한다는 설정이어서 얼개가 크게 달라진다.

이들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에이리언과 접촉한 경험이 없고 사전 지식이 없다. 평균적인 관객 수준의 인물이 영화에서 에이리언과 대결하며 극강의 공포를 넘어선다고 생각하면 된다. 페데 알바레즈 감독은 이러한 성격을 감안해 처음부터 케일리 스패니를 점찍었고 실제로 그가 레인 역을 잘 해낼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익숙한 크리처들이 다시 영화에 나온다. 시리즈가 모두 7개 편에 이르다 보니 크리처의 형상만으로 공포를 일으키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인지 인간 숙주에게 유충을 삽입하는 '페이스허거', 숙주의 몸속에서 자라나 가슴을 찢고 나오는 '체스트버스터', 압도적 피지컬과 파괴력을 지닌데다 지능이 높은 '제노모프' 등 기존 크리처가 아닌 인간 유전자가 섞여든 우발적으로 탄생한 새로운 괴물이 대미를 장식한다.

크리처들의 피가 산성인 것으로 돼 있다. 영화 초반에 이 설정을 복선으로 깔고 막판의 본격적 결투에서 복선을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활용한다. 시리즈 팬이라면 전작을 오마주한 장면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에어리언' 세계관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로물루스는 우주선의 이름이다. 로마의 건국 신화에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나오듯 극중 우주선 또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결합한 모양이다. 신화에서는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인다. 형제살해라는 신화소는 이 영화의 배면에 깔린다.

영화에서 형제는 남매로 변경된다. 레인과 앤디(데이비드 존슨) 남매는, 형제를 남매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살해를 구원으로 변용한다. 게다가 앤디는 붉은 피를 흘리는 인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이다. 레인을 그런 앤디를 친동생과 다름없이 대한다. 애초에 앤디에게 입력된 궁극의 명령은 '레인에게 최선인 행동을 하라'였지만, 중간의 우여곡절을 거쳐 '우리(앤디와 레인)에게 최선인 행동을 하라'로 바뀐다. 남매 사이에 기존에 존재한 희생제의적 성격이 사라지고 공존의 관계를 새로 맺는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신화의 뒤집기이다.

피의 색깔이 다른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에 혈연이 맺어지는 게 가능할까. 안드로이드의 합리적 판단과 인간의 비합리적 판단을 대비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결정을 안드로이드는 쉽게 내린다. 윤리학의 기본문제에 속하는 이런 질문에, 인간은 자기를 희생하는 것까지를 포함해 때로 비합리적인 답을 내놓곤 한다. 이 영화의 대미 또한 인간의 비합리성을 통한 구원이다.

     '에이리언: 로물루스'
'에이리언: 로물루스'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피가 아닌 기름이 흐르는 존재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다른 색깔 피의 형제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이후의 미래 윤리 문제를 다룬다. 정색하지 않고 극화의 형식으로 소화하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에이리언'의 대표격인 '제노모프'가 남근 형상이고, 시고니 위버 등 여성 주인공이 '제노모프'를 박살내는 스토리에서 페미니즘 해석을 내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보지 못한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없으나, 작위적 해석이 페미니즘 담론에 큰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도 그렇게 바라볼 장면이 많이 있다. 페미니즘보다는 '포스트 휴먼'의 관점이 더 유효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 세대가 당장 대면하지 않더라도 머지않은 미래에 직면할 문제. 인간이 언젠가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만나겠지만, 외계 생명체만이 에이리언인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에이리언이라는 사실은 그 만남에서 매우 중요한 전제이다. 외계의 에이리언보다 더 빨리 만나게 될 에이리언은 사실 AI로봇이다.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제기하는 우리 시대의 화두이다. 시고니 위버로 상징되는 아(我)와 '제노모프' 같은 비아(非我) 사이의 투쟁 외에 레인과 앤디 사이 같은 아(我)와 유사한 아(我) 사이의 관계 설정까지 포함했다는 측면에서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조금 달라진 작품이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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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미술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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