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테베랜드> 오늘의 캐스트
연극 <테베랜드> 오늘의 캐스트 안정인
 
무대에는 거대한 철창이 설치되어 있다. 철창 안에는 농구 골대와 벤치가 있고 그곳을 비추는 스크린이 무대 위쪽에 달려 있다. 아직 관객이 입장하고 있는 동안 누군가 철창 안에서 농구를 시작한다. 탕, 탕 공을 튀기고 텅 하는 소리를 내며 공이 농구 골대를 가른다. 때 이른 배우의 등장에 관객들의 시선이 무대로 집중된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시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선을 즐기는 것 같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기어코 골이 들어가자 내 옆의 관객이 조심스레 박수를 쳤다. 이주승 배우의 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이자 교수인 S는 존속살인을 모티브로 연극을 구상하고 있다. 실제로 아버지를 죽이고 감옥에 있는 마르틴을 인터뷰하며 대본을 쓸 예정이다. 그 대본을 바탕으로 실제 마르틴이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한다면 예술적으로 완벽한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S의 마음은 바빠진다.

죄수를 연극 무대에 올리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이 따라붙는다. 관객과 분리시킬 수 있는 3M 이상의 철창을 무대 위에 설치하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S는 계획을 진행한다. 마르틴의 표정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지만 입으로는 '상관없어요'라고 계속 중얼거린다.

"아저씨가 여기 있는 건 그냥 아저씨 책 쓰려고 있는 거잖아요, 내 얘기 들으려고."

S의 마음과 달리 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게다가 철창만 설치하면 된다던 관리들은 마르틴의 연기를 불허하겠다고 통보한다.

할 수 없이 S는 마르틴의 역할을 할 배우 페데리코를 섭외한다. S는 마르틴과 이야기를 나눈 후 페데리코에게 이야기를 해주며 대본을 완성해 간다. 페데리코 역시 자신이 연기해야 하는 마르틴에게 관심이 많다. 페데리코는 마르틴에 대해 질문한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S는 깨닫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대본 안에 녹아든다.

자, 이제 연극이 완성됐다. 그런데 이것은 마르틴의 이야기일까?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일까? 이 작품이 실화를 옮긴 것이 아니라 연극이라면, 연극이 시작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이 작품은 '친부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모티브이다. '1+1=2이다'처럼 '아버지를 죽였다면 오이디푸스'라는 공식이 나온다. 이 연극의 제목도 그 지점에서 나왔다.
 
 극장 밖에는 처음으로 마르틴을 만나고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S가 썼다는 노트가 붙어 있다.
극장 밖에는 처음으로 마르틴을 만나고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S가 썼다는 노트가 붙어 있다.안정인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베의 왕이다.

오이디푸스 전임 왕인 라이오스와 그의 아내 이오카스테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고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어찌어찌 아이는 구조되어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으로 이웃나라 코린토스에서 자란다. 하지만 그곳의 신도 똑같은 신탁을 내린다. '저 아이는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다.

장성한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피해 달아난다. 코린토스에 살지 않으면, 아버지를 떠나버리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달아나던 오이디푸스는 어느 산길에서 늙은 남자와 그의 일행과 마주친다. 길을 비키라며 시비를 붙자 오이디푸스는 상대를 때려죽여 버린다.

오이디푸스는 테베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멋지게 풀고 그 보답으로 왕이 된다. 왕비는 부상품이다.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는 아이를 넷이나 낳으며 사이좋은 부부 생활을 한다. 그러다 테베에 역병이 번지고, 예언자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앞을 볼 수 없게 된 후 테베에서 추방된다.

오이디푸스가 추방된 곳인 테베가 이 연극의 제목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테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극 중 S가 관객들을 향해 말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다면 극장을 찾아야 한다. 아마 높은 확률로 그의 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이 연극에 출연하는 사람은 두 명이다. 마르틴과 페데리코는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 S는 교도소 안 철창이 둘러진 농구장에서 마르틴과 인터뷰하고, 관리들의 선제적 조치 때문에 이미 3M 철창이 설치된 무대 위에서 페데리코는 연습을 한다. 즉 마르틴와 페데리코 모두 철창 안에 있다.

S는 마르틴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간중간 페테리코와 대본을 연습한다. S가 마르틴을 만나고 있구나, S는 페데리코의 오디션을 보고 있구나 알 수 있던 장면은 점차 S가 누구와 대화를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작가가 만든 가상의 구조에 탄복하게 된다. 이 연극은 프랑스계 우루과이 출신 극작가인 세르히오 블랑코(Sergio Blanco)의 대본을 원작으로 한다.

마르틴은 아버지의 신체적, 정신적 폭력으로 인생이 망가졌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투르의 성인 마르틴 주교의 아버지는 기독교인이 된 아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고,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어린 자녀들을 대동하고 다닌 연주여행은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아동학대다. 폭압적이던 아버지 때문에 고통받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농부와 하인들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되자 이후 간질을 앓는다.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로든 부모를 극복하며 어른이 된다. S와 마르틴의 관계는 작가와 인터뷰 대상에서 멘토와 멘티로, 친구로, 또 다른 어떤 형태로 변화된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이.

연극이 끝난 후 두 배우에게 관객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엄청난 양의 대사를 소화한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두 배우 모두 섬세하게 그러나 극적으로 흔들리는 감정들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해 주었다. 지적이고 섬세한 S역으로 이석준 배우가 섰던 것은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상처받았지만 아직 삶의 에너지를 간직한 소년의 역할로 이주승 배우를 따라잡기는 힘들 것 같다. 재관람 관객에게 10% 밖에 할인을 안 해주는 것이 가슴 아플 뿐이다. 이 연극은 9월 24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지안의 브런치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테베랜드 충무아트센터 이석준 이주승 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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