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포스터

<파우스트> 포스터 ⓒ 파우스트

 
이 작품의 원전은 독일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희곡이다. 괴테의 나이 23세인 1772년에 집필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고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1806년에 절반을 완성했다. 희곡 <파우스트>는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806년에 완성한 것이 1부이고, 이후 죽기 직전까지 2부를 써서 괴테가 죽은 후 발표되었다. 연극 <파우스트>는 이 작품의 1부를 무대에 올린 것이다.

이렇게 연도를 늘어놔도 얼마나 오래전 이야기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이렇게 말해보면 느낌이 올지도 모르겠다. 1772년이라면 영조가 왕이던 시절이고 손자인 이 산은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마음을 졸이는 시기였다. 정조께서 24년 밖에 왕위에 머물러 있지 못하셨기 때문에 <파우스트>가 완성된 시기는 그다음 왕인 순조 때였다.

이렇게 오래된 희곡이니 남성관이나 여성관, 걸핏하면 불러 대는 재미없는 노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독백체의 말투는 이해해 달라는 뜻이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즐기기는 어려우니 아무튼 이해하려고 노력은 해보자는 말이다. 1772년 당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여성에 관한 재판이 큰 화제가 되었고, 이 이야기는 1부의 주요 모티브로 사용된다. 즉 괴테는 당대의 현실을 반영했다. 한참 후 태어난 우리가 좀 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다.

연극은 원전에 거의 손대지 않았다. 대사와 장면을 조금 줄이고 배경을 바꾼 정도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이것은 스포가 아닌가 얼굴이 찌푸려진다면 건너뛰어도 좋지만, 배우들의 뭐라는지 알쏭달쏭한 독백체를 알아듣기 위해 현장에서 애쓰는 것보다는 미리 줄거리를 알고 가는 것을 권한다.

천사들과 신의 회의석상에서 메피스토는 말한다. 신이 인간에게 이성을 허락했기 때문에 인간들은 짐승보다 더 짐승처럼 사는 일에 이성을 이용한다며 험담한다. 신은 파우스트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메피스토는 파우스트를 악마의 길로 이끌 수 있다고 자신하고, 신은 그가 올바른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렇게 둘 사이에 파우스트를 건 내기가 시작된다.

파우스트는 과학, 인문, 신학 등 모든 학문에 통달한 인간이다. 심지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연금술을 바탕으로 약을 만들어 전염병을 잡은 전력도 있다. 이렇듯 그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교육자, 명사로 이미 이름이 높지만 그래봐야 한낱 인간. 절망한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독약을 마시려는 찰나 부활절 종소리와 노랫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조수와 산책을 하던 중 길 잃은 검은 푸들 한 마리가 따라오고, 파우스트의 연구실에서 푸들은 메피스토로 변신한다. 파우스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메피스토가 들어주는 대신 저 세상에서는 메피스토를 믿겠다는 계약을 제안한다. 파우스트의 입에서 "순간이여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말이 나온다면 신을 버리고 메피스토를 섬기는 것으로 피의 계약서를 작성한다.

메피스토는 마녀의 약을 이용해 파우스트를 젊어지게 만든다. 우연히 마주친 그레첸에게 반한 파우스트는 그녀를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메피스토에게 요구하고, 악마는 마르테 부인을 이용해 파우스트가 그레첸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한다. 파우스트는 그레첸을 유혹하고 잠귀가 밝은 그레첸의 어머니에게 수면제를 먹이도록 만든다.

그레첸과 파우스트는 함께 밤을 보내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깨어나지 못한다. 그레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오빠 발렌틴은 절망한다. 길에서 마주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 일행과 결투를 벌인 발렌틴은 파우스트의 칼에 죽고, 그레첸은 낳은 아이를 물에 집어넣어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

발렌틴을 죽인 후 마녀들의 산으로 도망쳤던 파우스트는 그레첸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찾아간다. 그레첸은 탈출을 거부하고 그곳에서 죽는다. 메피스토는 "그녀는 심판받았다"라고 말하지만 이때 신의 음성이 말한다. "그녀는 구원받았다" 메피스토와 파우스트는 함께 다른 곳으로 떠난다.
 
연극 <파우스트> Today's Cast

▲ 연극 <파우스트> Today's Cast ⓒ 안정인

 
신과 메피스토, 둘의 내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파우스트> 전체의 절반만 이번 무대에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정하게 손잡고 극장을 빠져나가는 메피스토와 파우스트의 뒷모습을 보며 '그래서 신이 이긴 거야? 메피스토가 이긴 거야?' 고민하지 말기 바란다.

대극장 공연인 만큼 화려한 무대를 자랑한다. 파우스트 박사의 책과 먼지로 뒤덮인 서재 위에는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켜져 있고 산을 오르는 악마와 박사의 동선은 울퉁불퉁한 암벽 위를 걷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레첸의 방은 거대한 스크린 안에 비치고 마녀들의 회합도 정신없이 화려하다. 무대뿐 아니라 극장 전체를 이용하고 있어서 관객석 통로를 통해 배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당신이 1층, 그것도 통로 옆에 앉아 있다면 배우들의 거친 호흡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이 연극의 백미는 박해수 배우다. 다른 배역들이 혼자만의 세계에서 독백을 늘어놓을 때 박해수 배우의 메피스토만 현대어를 구사한다는 착각이 든다. 그 정도로 그의 대사만 명징하게 이해된다. 그러니까 이 낡고 오래된 문체는 배우가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분명히 책에서 읽은 적 있는 힘없는 대사가 저런 뜻이었구나 허벅지를 치게 됐다. 이 연극은 분명 박해수의, 박해수에 의한, 박해수를 위한 작품이다. 그가 이 연극 전체를 살린다.

다시 파우스트의 줄거리로 돌아가자. 신학과 철학, 과학과 법학 등 인류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지식을 섭렵한 인간이 결국 원한 것인 젊음과 연애였다. 부와 명성과 명예 등 모든 것을 거머쥔 미국 실리콘벨리의 부자들이 항노화와 관련된 기업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을 보면 파우스트의 욕망은 매우 정상적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8세기 독일인과는 다르게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삶 이후 신의 품으로 간다고 믿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그런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에게 속삭이는 말들은 아직도 귀에 꽂힌다. "어디서나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고 마음에 들면 움켜쥐는" 삶은 상상만 해도 신난다. 우리는 신은 사라졌지만 사탄은 건재한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도취경 극히 고통스러운 쾌락, 사랑에 눈먼 증오를 느끼고 싶네"라고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에게 주문한다. 그럴까? 57세의 괴테가 원하는 삶은 그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당신의 욕망은 무엇인가? 이 작품은 4월 29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지안의 브런치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파우스트 연극감상 박해수 엘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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